2004년 9월5일 낮 1시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조아무개씨는 친구를 만나러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끼이익… 쿠웅. 조씨는 승용차 왼쪽 앞부분에 부딪혀 공중에 붕 뜬 뒤 털썩하며 콘크리트 도로에 머리를 부딪쳤다. 옆에 있던 조씨의 친구는 “그의 귀에서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피가 콸콸 쏟아졌다”고 말했다.
곧바로 가까운 병원으로 후송된 조씨는 17시간 동안 뇌에 가득 찬 혈액을 빼내는 수술을 받았다. 입원한 기간만 4개월. 얼굴과 몸 왼쪽에는 마비 증세도 왔다. 그해 12월 퇴원한 뒤 1년 동안 매일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사고 뒤 1년 동안은 휴학을 해야 했다.
사고 뒤 “미안하다” 전화 한 통 못 받아
가해자는 서울 강남에 사는 남자였다. 승용차로 아이를 데려다주고 가던 길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찾아왔다고는 하지만, 조씨는 얼굴 한번 보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전화 한 통 받지 못했다.
조씨는 퇴원 직후인 2005년 1월 “종합보험에 가입한 운전자는 큰 사고를 내도 아예 기소도 못하게 한 것은 피해자의 평등권과 재판 절차 진술권 등을 침해한다”며 ‘교통사고처리특례법(교특법) 4조 1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이 조항의 핵심은 가해자가 보험이나 공제에 가입돼 있을 경우 중앙선 침범이나 음주운전 등 교특법이 규정한 10대 중과실과 사망사고가 아니면 아무리 인적·물적 손해를 일으켰어도 형사처벌을 면제한다는 것이다. 조씨는 “교특법 면책 조항 탓에 피해자가 사과를 받거나 피해자와 가해자가 화해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그게 이해하기 힘들었고 답답했다”고 말했다.
4년 동안 치열한 법리 공방이 이어졌다. 사실 이 조항은 1997년 합헌 결정이 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정부 쪽은 “과실의 경중을 따져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입법자의 재량에 속하므로, 면책 조항이 기본권 침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된 문한식 변호사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사고와 식물인간의 사례를 들어 반박 논리를 내세웠다. 문 변호사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사망사고 이상으로 고통이 심하다. 사망 피해자와 식물인간이 된 피해자 간에 차별을 두는 건 정당한 것인가. 이런 차별은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4년 뒤인 2009년 2월26일 헌재 전원재판부는 “피해자를 중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도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한 교특법 조항은 헌법에 위반된다”며 재판관 7 대 2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헌재는 “교통사고로 중상해를 입은 결과 식물인간이 되거나 평생 심각한 불구 또는 난치의 질병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의 경우 그 결과의 불법성이 사망사고보다 결코 작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교특법의 면책 조항은 중상해 피해자들의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한식 변호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우리 헌법의 이념이다. 이러 이념에 반하는 교특법 조항에 위헌 결정이 내려진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교통사고 비범죄화 추세에 역행” 비판도이번 헌재 결정은 우리 사회에 또 다른 화두를 던졌다. 피해자 권리는 강화됐지만 전과자 양산 등 부작용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김제완 ‘올해의 판결’ 심사위원(고려대 법대 교수)은 “트럭 사고 등 중상해를 입힐만한 경우는 가해자 가운데 상대적으로 서민이 많아, 자칫하면 전과자를 양산할 수도 있을 뿐더러 교통사고 비범죄화 추세와도 어긋나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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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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