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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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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올해의 판결] 도박장에도 도의는 세워라

생활 속의 권리 부문②
출입 금지 요청한 중독자 끌어들인 강원랜드에 손해배상 책임 인정한 서울동부지법 판결
등록 2009-12-23 11:33 수정 2020-05-03 04:25

‘도박’은 중독성 질환이다. 중독성 질환의 특성은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자극에 길들여진 사람은 스스로 거기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2월9일 감사원은 국내 유일의 내국인용 카지노를 운영하는 강원랜드에 대한 기관 운영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감사보고서에서 “영업장에서 불법 행위를 하거나 본인 또는 가족의 요청이 있는 고객에 대해선 출입을 제한하고, 이를 해제하려면 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며 “그럼에도 2006년 이후 모두 71명에 대한 출입 제한을 임의로 해제해 고객의 재산 상실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카지노에서 손님들이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카지노에서 손님들이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200억 탕진할 동안 출입 금지 4번 요청

카지노 출입 제한을 요청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지난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소속 송훈석 의원(무소속)이 강원랜드 쪽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출입 금지자 현황’을 보면, 지난 2000년부터 올 8월까지 본인 또는 가족이 카지노 영업장 출입 금지를 요청한 건수는 무려 1만3313건에 이른다. 대부분 도박 중독 고위험군이었다. 귀금속 가공업자인 50대 김아무개씨도 그중 한 명이다.

강원랜드 카지노는 크게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영업장과 회원 고객(VIP)을 대상으로 한 회원용 영업장으로 나뉜다. 하지만 바깥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영업장이 있다. 이른바 ‘우대회원’(V-VIP) 전용 영업장이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게임에 참여하려면 2억원 이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단다. 김씨는 주로 이곳에서 도박을 했다.

카지노업 약관 7조는 카지노 고객 본인이나 직계혈족·배우자 등이 도박 중독 등을 이유로 출입 제한을 요청하면, 담당 부서에서 피요청자의 영업장 출입을 제한해야 한다고 정해놨다. 또 8조에선 출입이 제한된 사람은 해제 요청을 하더라도 일정한 ‘냉각 기간’을 두도록 했다. 첫 번째 출입 제한 요청을 풀 때까지는 최소 3개월, 두 번 이상 출입 제한을 요청했을 때는 6개월 이상이 지난 뒤 심의를 통해 출입 제한을 풀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씨는 2003년 4월1일부터 2007년 4월22일까지 모두 181차례 우대회원 전용 영업장에서 도박을 즐겼다. 잃은 판돈은 무려 208억1149만9971원에 이른다. 30여 년 모은 재산을 다 날리고 사채를 끌어다 도박을 할 정도로 중독 상태였다. 이 기간에 김씨 스스로 한 차례, 김씨 부인이 세 차례 강원랜드 쪽에 출입 제한을 요청했다. 하지만 강원랜드 쪽은 네 차례 모두 규정을 저버리고 김씨의 출입 제한 조처를 풀어줬다.

‘냉각 기간’ 무시, 고객 보호 나몰라라

김씨는 뒤늦게 ‘고객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강원랜드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 동부지법 민사14부(재판장 이우재, 배석판사 이상헌·배온실)는 지난 7월8일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강원랜드는) 김씨의 병적 도박 중독 상태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도박을 제한하는 어떤 조치도 하지 않고, 규정을 위반해 출입 제한을 해제해준 것은 최소한의 고객 보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강원랜드 쪽은 김씨가 잃은 판돈 중 15억518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강원랜드는 2000년 10월 카지노를 개장했다. 발행 주식의 51%를 한국광해관리공단 등 공공 부문이 소유하고 있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명실상부한 공공기관이다. 국가는 국민이 도박에 빠지는 걸 막아야 할 의무가 있다. 강원랜드는 2008년에만 309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 심사위원 20자평
김승환 도박업으로 돈벌이 하더라도 상도(商道)는 지켜야지
최강욱 도박 중독을 능가하는 강원랜드의 수익 중독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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