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협동조합의 나라이다. 전세계에서 최초로 성공을 거둔 소비자협동조합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은 1844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시작됐다. 산업혁명으로 사회가 급변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빈부 격차와 공급자 주도의 부당한 가격 횡포로부터 소비자의 권리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 소비자가 주인이 되어 공동구매력으로 저렴한 가격의 생활물자를 공급할 수 있었다. 소비자협동조합이 계속 성장하면서 1955년엔 식료품 시장점유율이 20%로 높아졌다.
하지만 정점을 찍은 뒤 급격한 하락의 길로 들어섰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대량생산 및 대량소비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부터 자동차와 냉장고가 대중적으로 보급되었고 사람들은 집에서 거리가 먼 대형 마트를 이용했다. 영국에서 식품점 매장은 1950년 25만6천 개에서 2000년에 1만4500개로 줄어들었다.소비자협동조합의 시장점유율 역시 2005년 5%로 하락했고, 1962년 1314만 명에 이르던 조합원 수도 1990년 820만 명으로 감소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 100인’ 뽑혀
오랜 침체기를 겪은 영국의 협동조합이 재도약을 한 시기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온 2008년이다. 영국 전체 소매판매액 증가율이 2008~2010년 3년 동안 6.4%에 그쳤지만, 소비자협동조합은22.4%의 성장을 기록했다. 또한 2010년 정권 교체로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의 연립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을 감축하는 대신, 민간의 활력을 활용할 수 있는 전략과 비전으로서 협동조합을 주요 대안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부의 영향만은 아니다. 영국 협동조합 내부의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새로운 변화의 중심에 에드 메이오(52)가 있다. 메이오는 2009년부터 영국협동조합연합회(Co-operatives UK) 사무총장을 맡아오며 영국 협동조합이 재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에드 메이오
메이오는 소비자운동단체 컨슈머포커스의 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공정무역 운동 출범에 기여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빈곤퇴치 캠페인 ‘희년 2000’을 기획하기도 했다. ‘희년 2000’은 유태인들이 50년마다 빚을 탕감해주고 노예를 풀어주는 ‘희년’(禧年)에 착안해 제3세계 채무국의 상환 불가능한 채무를 2000년까지 탕감하자는 운동이었다.
2003년엔 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었으며, 2005년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차세대 지도자’로 꼽혔다. 대기업 위주의 성장이 아닌 지역상권의 동반성장을 모색하며 협동조합을 통해 ‘더불어 행복한 경제’를 모색하는 한국에서 영국 협동조합의 지나온 과정과 새로운 변화가 주는 시사점은 뭘까? 지난 4월초, 메이오와 전자우편으로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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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오랜 침체기를 이겨내고 새롭게 도약한 영국 협동조합의 변화상을 물었다. 메이오는 기존 협동조합만이 아닌 새로운 분야에서 다양한 협동조합 설립을 강조했다. “새롭게 등장하는 협동조합은 경제적·사회적 변화에 따른 새로운 필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규모가 작고, 역동적이며 혁신적이다. 거의 매일 새로운 협동조합이 생겨나고 있다.” 메이오는 공저 (The Co-operative Advantage)에서 이러한 혁신 분야로 에너지, 정보기반 산업, 여행, 교육 등을 꼽았다. 새로운 협동조합이 많이 늘어나면서 현재 6796개가 운영되고 있으며, 2015년 매출은 370억파운드(약 61조원)로 2010년보다 15% 증가했다. 메이오는 “협동조합이 사회적 문제에 대한 혁신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혁신과 함께 정부와 전략적 제휴 강화메이오는 새로운 분야에서의 혁신 이외에도, 영국협동조합연합회의 전략적 변화를 들었다. 메이오는 사무총장에 오른 뒤 협동조합의 혁신과 함께 정부와 전략적 제휴를 강화했다. 메이오는 “연합회가 다양한 자원과 역량을 결합하여 전국 협동조합 발전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개별 협동조합에 대한 지원과 네트워크 활성화, 정보 공유 이외에 개별 협동조합이 하기 힘든 정책 전략 설계에 많은 힘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영국협동조합연합회가 협동조합 주관부처를 기존 영국 재무부에서 기업혁신기술부(BIS)로 바꾸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오랫동안 재무부가 협동조합의 주무부처를 담당해온 데는 금융협동조합을 관할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현재 금융 이외에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협동조합이 생겨나고 있기에 한계가 드러났다. 특히 정보기술 등 기존에는 협동조합이 전혀 없었던 분야에서 새로운 협동조합 모델이 생겨나고 있다. 주식회사 중심으로 법과 제도가 형성되어왔기에 새로운 영역에서의 협동조합들은 각종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메이오가 주목한 것이 기업혁신기술부로 관할 부처를 바꾸는 것이다.
기업혁신기술부는 2009년 비효율적인 정부 정책 문제를 해결하고 과학기술 혁신과 기업 지원을 위한 국가 성장동력을 위해 발족한 정부 부처이다. 그간 영국 정부 내에서 여러 부처로 분산되어 있던 과학기술 및 기업 진흥, 경제성장 관련 기능을 결합한 통합정책부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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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오는 협동조합 내부의 혁신을 사회적인 성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책적 환경 변화의 조성이 중요하며, 그러한 점에서 기업혁신기술부로의 주무부처 이동이 혁신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정치인과 정책 입안자들이 새로운 협동조합 혁신 전략과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협동조합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존재가치를 입증하면서 성장해왔다. 산업혁명 시대의 필요에 대응해 영국 협동조합이 발전해왔다면,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발전 등 새로운 상황에 영국 협동조합은 또다시 혁신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주수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socialeco@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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