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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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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비정규직 차별 해소

[청년배당] 청년복지 가장 미흡… 돈이 아니라 ‘시간’을 주는 것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도 순수혜자로 만드는 정책
등록 2016-05-22 11:05 수정 2020-05-03 04:28
이재명 성남시장이 2015년 10월1일 성남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청년배당’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성남시장이 2015년 10월1일 성남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청년배당’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1월20일 경기도 성남에 사는 24살 청년들은 12만5천원의 지역화폐를 지급받았다. 중앙정부에서 방해하지 않았다면 25만원을 받았을 것이다. 앞으로는 19살부터 받게 된다.

청년배당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기회균등이다. 대상자들은 대부분 대학에 다닌다. 대학생들의 ‘시간’은 소득에 따라 차이가 크다. ‘금수저’ 학생은 자기계발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많다. 해외연수 등의 기회도 충분하다. ‘흙수저’ 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므로, 자기계발에 쓸 시간이 부족하다. 수저 색깔에 따라 시간과 기회가 불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이다. 청년배당은 청년들에게 귀중한 시간을 평등하게 제공한다는 목적이 있다. 단순하게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생애주기별로 볼 때 청년복지가 가장 미흡하다. 아이들은 출산수당, 무상보육의 혜택을 누리고, 노인이 되면 기초연금이 나온다. 그러나 청년들은 아무런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질 낮은 대학교육을 받는다. 청년배당은 적은 혜택을 받으면서 큰 부담을 져야 하는 계층을 지원함으로써 세대 간 형평성을 추구한다.

소상공인들 가장 열렬히 환영

대학에 다니지 않는 청년들은 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고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이하다. 심각한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다. 청년배당은 대학생뿐만 아니라 불안정 노동자에게도 지급하고 있다.

청년배당을 가장 열렬히 환영하는 사람들은 소상공인이다. 청년배당은 지역화폐의 일종인 ‘성남사랑상품권’으로 지급된다. 소상공인들만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청년들의 손을 떠난 청년배당은 결국 소상공인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올해 편성된 청년배당 예산이 113억원이다. 1단계로 청년들의 소득이 이만큼 증가하고, 2단계로 소상공인의 수입도 이만큼 증가한다. 그다음 단계, 또 그다음 단계로…. 이것만큼 확실한 경제 활성화 정책은 거의 없다.

청년배당에 대한 첫 번째 질문은 왜 부자에게도 주느냐일 것이다. 를 보면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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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계층이 있고, 계층별 소득은 각각 0원, 200만원, 800만원이다. 선별복지 정책은 1계층에게만 10만원을 보조하는 것이다. 필요한 예산은 10만원이다. 이 예산을 확보하려면 총소득 1천만원에 대해 1%의 세율로 과세를 해야 한다. 2계층은 2만원을 내고 3계층은 8만원을 낸다. 배당에서 소득을 뺀 것을 순수혜라고 정의하자. 1계층의 순수혜는 10만원이고, 2계층은 -2만원, 3계층은 -8만원이다. 이것이 선별복지의 재분배 효과다.

동일한 재분배 효과는 기본소득을 통해서도 달성할 수 있다. 에서 중간의 기본소득(역진세) 정책은 모든 계층에 10만원씩 지급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혜는 선별복지와 동일하다. 2계층으로부터 12만원을 세금으로 걷고 3계층으로부터 18만원의 세금을 걷었기 때문이다. 선별복지냐 기본소득이냐 논쟁할 필요가 없다. 두 개는 같은 정책이 될 수 있다. 똑같은 두 개를 가지고 하나는 좋아하고 다른 하나는 싫어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이 기본소득(역진세) 정책에는 문제가 있다. 중산층의 세율이 고소득층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이제 2계층과 3계층을 동일한 세율로 과세하면 오른쪽의 기본소득(비례세) 정책이 된다. 30만원의 예산을 확보하려면 3%의 세율로 과세해야 한다. 중산층은 6만원을 내고 고소득층은 24만원을 내게 된다. 저소득층의 순수혜는 10만원으로 마찬가지이지만, 중산층의 순수혜는 +4만원으로 바뀌게 된다. 기본소득(비례세)은 중산층을 순수혜 계층으로 만드는 정책이다. 부자에게까지 기본소득을 주는 이유는 중산층을 위한 정책이다. 부자에게까지 줄 때 부자에게 가장 불리하다.

스웨덴의 경제학자 발테르 코르피와 올로프 팔메는 선진국들의 복지제도를 조사해 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에서 가로축은 복지 지출에서 저소득층에 집중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왼쪽으로 갈수록 저소득층에 몰아주는 나라이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고소득층까지 나누어주는 나라다. 세로축은 재분배 규모를 나타낸다. 위로 갈수록 저소득층에게 더 많이 재분배되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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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확산되는 기본소득 정책

을 보면 저소득층에 집중하는 나라일수록(왼쪽으로 갈수록) 저소득층에게 적은 금액이 재분배(내려간다)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몰아줄수록 가난한 사람에게 불리한 것이다. 발테르 코르피와 올로프 팔메는 이것을 ‘재분배의 역설’이라고 불렀다. 재분배의 역설이 나타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저소득층에게 재분배되는 금액
= 저소득층 집중지수 × 복지 규모

위의 식에서 복지 규모가 일정하다면 저소득층 집중지수가 클수록 저소득층에게 더 많이 재분배된다. 그러나 저소득층에게 집중하면 중산층이 복지 규모를 키우는 것에 반대한다. 복지 규모가 작아지면 저소득층에게 재분배되는 금액이 줄어들게 된다. 반대로 보편적으로 나누어주면 중산층이 복지 규모 확대에 찬성해서 규모가 커진다. 그러면 저소득층에게 재분배되는 금액이 커진다.

우리나라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실시된 지 20년 가까이 되지만 수혜자는 여전히 3% 수준이다. 이에 반해 기본소득 정책은 훨씬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009년 당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시작한 무상급식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무상급식은 부자에게까지 조건 없이 지급되므로 현물기본소득에 속한다. 다음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기초연금과 무상보육을 공약했다. 올해부터 이재명 성남시장은 청년배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4월 총선에서는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공약이 등장했다. 기본소득이 이렇게 빠르게 확산되는 것은 중산층을 순수혜자로 만드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혁신더하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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