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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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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권력이다

등록 2008-04-17 15:00 수정 2020-05-02 19:25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의 뽀뽀를 많이 받더니, 권력도 부도 사랑도 모두 아름다운 자들에게로…

▣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1975년 미국 조지아주립대 제임스 뎁스 주니어박사와 닐 스톡스 박사는 사회학 저널에 흥미로운 실험 논문 하나를 발표했다. 그들은 두 사람이 좁은 인도에서 마주쳐 지나갈 때 어떤 사람이 먼저 피하는지, 또 얼마나 떨어져 지나가려고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보행자 470명을 관찰했다.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보행자들은 지나가는 사람이 남자일 때 더 멀리 떨어져 피해주었으며(아마도 낯선 남자와 마주친 보행자들은 심리적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아름다운 여성을 마주쳤을 때 평범한 외모의 여성 때보다 더 멀리 피해서 상대가 편히 지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더라는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그들은 성별이나 외모에 따라 공간 지배력이 달라지게 된다고 주장했는데, 그들이 쓴 논문의 제목은 ‘아름다움은 힘이다’였다. 힘센 남성과 아름다운 여성은 세상을 살면서 더 넓은 영역을 확보한다는 얘기다. 왜 사람들은 아름다운 여성이 다가오면 먼저 자리를 양보해주고 그가 편히 지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일까?

예쁜 여성 앞에서 오버하는 남자들

아름다움은 때론 권력이 된다. 문화방송 인기 프로그램 을 보면, 평소 지나치게 겁없이 행동하던 멤버들도 김태희나 이효리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주눅들고 나약한 존재로 전락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땀을 줄기차게 흘리고 말도 제대로 못 건네다가 가벼운 터치만으로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뒤집어지는 그들을 보면서 시청자도 공감한다. 인기가 많고 적음을 떠나, 아름다움이 주는 강한 파워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여성이 아름다움을 발산할 때 남자는 예외 없이 오버한다. 경제학자 에른스트 로이들은 실험 참가자들을 모집해 얼음물에 손을 담그게 한 뒤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희한한 실험을 한 적이 있는데, 결과는 더욱 요상했다. 시간을 재는 실험자가 아름다운 여성일 경우 남자 피험자들은 두 배 가까이 더 길게 얼음물의 고통을 참아내더라는 것이다(어리석은 남자들이여!). 심한 경우에는 실험 참가자들이 너무 ‘오버’해서 동상에 걸릴 때까지 참아낼 정도였다(여자들은 얼음물 속에서 무식하게 오래 참는 남자, 안 좋아해요!). 아름다움 앞에서 남성들은 지나칠 정도로 배려하고, 어리석을 정도로 헌신하며, 바보처럼 유치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아름다움은 항상 좋은 것이며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행복한 꿈이지만, 때론 그 이상이다. 독일 정신과 의사이자 과학저술가인 울리히 렌츠 박사가 쓴 (프로네시스·2008)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지나칠 정도로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인간을 그저 ‘아름다움에 한없이 종속된 존재’로만 그리고 있는 렌츠의 주장에 사람들은 불편해하겠지만, 그 어떤 권력도 아름다움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그들을 각별히 우대하며 좋은 평가를 서슴없이 내린다는 사실에는 동의할 것이다.

예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대우가 다르다. 텍사스대 심리학과 주디 랭루와 교수에 따르면, 산부인과 병동이나 산후조리원에서 첫 아이를 출산한 임산부 144명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 예쁜 아기를 낳은 엄마가 다른 엄마들보다 훨씬 더 많이 아기를 안아주고 키스를 했다. 예쁜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에게 받는 키스 횟수가 다르다니, 무조건적인 엄마의 사랑도 아름다움 앞에서는 공정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성적 매길 때도 통하는 ‘미인계’

뉴욕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데이비드 랜디와 해럴드 시걸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여고생들이 쓴 에세이에 점수를 매기게 했다. 에세이 앞에 사진을 첨부하지 않았을 때는 학생들이 에세이 내용에 따라 충실하게 점수를 매겼으며, 10점 만점 중 6.6점에서부터 4.7점까지 좁은 점수 분포를 가졌다. 글 자체의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에세이 앞에 사진을 첨부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예쁜 여학생의 경우 평균 1.5점 이상 점수가 올랐으며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의 소유자들은 오히려 0.7점 정도 점수가 떨어졌다. 심지어 2.7점이나 떨어진 학생도 있었다. 사진 때문에 학생들의 점수 분포가 훨씬 넓어진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지만, ‘선생님들이 성적을 매길 때 외모에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는 불행히도 여러 번 반복 실험을 해도 일관되게 나왔다.

텍사스 휴스턴대 학자들이 텍사스 법원의 판결 2235건을 분석한 연구 결과는 좀더 알려진 예다. 같은 죄를 저질렀더라도 판사들은 피의자의 외모에 따라 많게는 벌금 400달러에서 1400달러까지 차이가 나는 판결을 했으며, 형량도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특히 성범죄와 사기죄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서, 혐오감을 주는 외모를 지닌 남성 용의자들은 더 엄한 처벌을 받았으며, 같은 사기죄를 저질렀더라도 예쁜 외모를 가진 여성들은 형량이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근사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국회위원이 되는 데에도 유리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번 총선 때에도 확인한 바 있다. ‘중구의 얼짱’ ‘노원의 얼짱’ 같은 표현이 공공연히 사용될 정도로 외모는 사람들에게 깊은 호감과 신뢰를 준다. 캐나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의회선거에 입후보한 후보들의 매력을 세 등급으로 나눠 득표 수와 비교했을 때 잘생긴 외모의 후보들이 그렇지 않은 후보들보다 거의 세 배 이상 더 많은 표를 얻었다. ‘존 F. 케네디 효과’라고도 불리는 이런 현상은 우리로 하여금 ‘아름다움은 권력’이라는 사실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하게 만든다.

잘생기고 예쁜 것도 타고난 자산이어서 그들은 상류층과 결혼할 확률이 높으며, 수입 또한 10% 이상 차이가 난다. 그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훨씬 더 주목받고 선호되며 인기가 높다는 것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직장이나 학교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을 만큼 능력 면에서도 뛰어날까? 지적 능력이 더 뛰어나진 않더라도, 미남미녀들은 자신의 미모를 활용해 더 뛰어난 작업 능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여러 번 반복된 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능력 면에서 외모는 아무런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근사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신뢰감을 주고 뛰어난 능력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됐지만(그래서 그들의 연봉은 다른 사람들보다 평균 15% 이상 높았지만), 실제로 작업량이나 성과 면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못했다.

실력 차는 없지만 연봉은 15% 차이

이렇게 실제적인 차이가 별로 없음에도 아름다움이 선호와 동경의 대상을 넘어 인간 사회에서 권력으로 행사되는 현상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아름다운 외모는 전생에 덕을 베푼 응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남들에게 미적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이런 혜택을 받는다는 주장도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이라면 아름다움이 생존과 종족 번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해석할 것이 틀림없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시대와 민족에 따라 다르지만, 진화생물학자들에겐 아름다움이 ‘건강하고 자기 관리가 확실하며 좋은 유전자를 가졌다’는 신호로 보일 것이다. 반면 심리학자들이라면 타인을 판단할 때 성격이나 능력 등 내면과 외모를 조화롭게 인식하기 위해 ‘외모가 아름다우면 내면도 근사할 것’이라고 추정한다고 인지부조화 이론을 내세울 것이다.

아마도 진실은 여러 가설들 사이에 존재하겠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우리 뇌는 이런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데 기민하고 예민한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타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의 외모를 단 0.15초 만에 판단한다. 다시 말해 0.15초의 시간을 주나, 원하는 만큼 충분한 시간을 주나 외모에 대한 판단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그 짧은 순간 사람들은 눈에서 시작해 코와 입, 얼굴 형태를 차례로 관찰하고, 심지어 동공 크기나 속눈썹 길이, 좌우 대칭까지 순식간에 파악한 뒤 결론을 내린다. “이 사람, 내 타입이야!”

버나드 쇼가 말했던가. “미인은 처음으로 볼 때는 매우 좋다. 그러나 사흘만 계속 집안에서 상대해보면 더 보고 싶지가 않게 된다.” 이런 훌륭한 교훈은 미인과 사흘 이상 살아본 사람만이 얻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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