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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살은 돼야 진짜를 안다


마지막회-관계가 성숙되고 믿음이 넘쳐나는 나이 든 부부일수록 만족한 성생활을 즐겨
등록 2008-10-09 06:03 수정 2020-05-02 19:25

요즘 ‘황혼의 로맨스’가 큰 인기다.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최근 종영한 한국방송 주말드라마 에서 80이 넘은 나충복 할아버지(이순재)와 안영숙 할머니(전양자) 사이의 뜨거운 연애는 황혼의 로맨스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다. 그들은 극중에서 청춘남녀 못지않게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며 뜨거운 키스를 하는 장면까지 선보였다.
‘황혼의 로맨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70대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만화가 강풀의 가 연극으로 공연되는가 하면, ‘본격 노인 개그만화’를 표방하며 노인들의 성생활을 재기발랄하게 그려낸 만화가 윤태호의 도 신문 연재로 큰 인기를 끌었다. 출연진 평균 나이가 61살인 뮤지컬 도 노인의 사랑을 그려 인기몰이를 한 바 있다.

영화 〈죽어도 좋아〉는 노인도 젊은이 못지않은 성욕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함으로써 노인의 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성에는 정년이 없다.

영화 〈죽어도 좋아〉는 노인도 젊은이 못지않은 성욕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함으로써 노인의 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성에는 정년이 없다.

기혼여성 90% “섹스리스는 남자 책임”

‘황혼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 중 걸작은 단연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Something’s Gotta Give)이다. 노인들의 사랑을 이처럼 아름답고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그린 작품이 또 있을까? 60대의 음반 사업가인 해리(잭 니컬슨)는 젊은 여성만을 골라 사랑을 나누는 희대의 바람둥이다. 그가 어느 날 자신에겐 더 이상 사랑의 열정이 없다며 집필에만 몰두하는 극작가 에리카(다이앤 키튼)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에서 애틋한 장면 중 하나는 그들의 힘겨운 섹스 장면. 섹스 도중 심박수가 너무 늘어나 심장마비에 걸릴까봐 걱정하고, 혈압 측정 장치의 매뉴얼이 잘 안 보여 안경을 찾는 그들의 모습은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다. 안쓰럽지만 아름다운 그들의 사랑은 훼방꾼 키아누 리브스도 막을 수 없다!

‘황혼의 로맨스’에 대해 의사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그들의 사랑이 결코 젊은이들의 사랑 못지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노인들이 사랑에 빠졌을 때 그들의 뇌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며 몸에선 어떤 변화들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노인들의 뇌가 사랑에 빠졌을 때 도파민의 분비량이 젊은이들에 비해 어느 정도 되는지, 성적 욕망을 자아내는 아드레날린과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아직 진지하게 그들의 ‘사랑’을 연구한 적이 없는 것이다.

노인들의 ‘사랑’에 대해 연구가 크게 부족한 반면, 노인들의 성생활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지속돼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인들은 성관계 횟수가 젊은이들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거나 성생활을 아예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1970년대에 실시된, 60살 이상의 고령자 남녀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편과 아내가 함께 생활하는 경우 54%의 부부가 성적 접촉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으며 독신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7%만이 성적 접촉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배우자가 성관계에 대한 관심이나 능력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남성이 1%, 여성은 14%였으며, 자신이 성관계에 대한 관심이나 능력이 없어졌다고 응답한 경우는 남성이 15%, 여성은 10%였다. 또 자신이 성적으로 무능해졌다고 대답한 것은 남성이 29%인 데 비해, 여성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고령자 부부가 성교를 그만두게 되는 나이는 언제일까? 미국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은 평균 68살, 여성은 60살이라고 한다. 또한 기혼남성의 약 60%, 기혼여성의 90%가 ‘성교를 하지 않게 된 책임은 남자에게 있다’고 응답했다.

이런 추세는 최근 삶의 질이 향상되고 비아그라 등 발기부전 치료제가 등장하면서 크게 개선되고 있다. 최근 스웨덴 고센버그대학의 닐스 베크만 박사 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생활을 하는 70대 독신 남성은 지난 30년 사이 30%에서 54%로, 여성은 0.8%에서 12%로 급증했다.

미 시카고대학이 여성 1550명과 남성 14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57∼85살 남성 중 68%는 최근 1년 사이 최소 1번 이상의 섹스를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42%. 재미있는 것은 이 수치가 여성 쪽에서 더 많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인데, 특히 나이 든 여성들 중에 성관계를 원하는 이의 수는 늘고 있으나, 성관계가 가능한 같은 나이대의 남성을 찾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노인 성생활의 증가 추세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한양대학교 대학원 간호학과 대학원생 이창근씨가 서울에 거주하는 65살 이상 노인 1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 중 19.5%가 현재 성생활을 지속하고 있으며, 빈도는 월평균 1.37회인 것으로 조사됐다. 빈도는 한 달에 1번인 경우가 10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두 달에 1번(4명), 한 달에 2번(4명), 한 달에 3번(2명), 일주일에 1번(1명), 1년에 2번(1명) 순이었다. 현재 성생활을 하지 않는 노인의 경우, 마지막으로 성관계를 가진 평균연령이 남성의 경우 63.1살, 여성의 경우 57.4살로, 전체 평균이 61.3살이었다.

마지막 성관계 나이 61.3살

흥미로운 것은 ‘멋있는 이성을 보면 여전히 좋고 흥분되는가’라는 질문에 남자 노인의 84%, 여자 노인의 14.3% 가 ‘그렇다’라고 응답했다는 사실이다. 여성은 덜한 반면 남성은 아직도 멋있는 이성에 반응했다.

성생활을 하는 노인들이 그렇지 않은 노인들보다 삶의 만족도가 더 높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 통계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는데, 성생활에 대한 전체적 인지도를 나타내는 ‘성생활 인식도’의 경우, 남자 노인은 자아 존중감과 자아 성취감에, 여자 노인은 자아 성취감과 현실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02년 70대 노인들의 ‘왕성한’ 성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화 가 개봉돼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당시 영화는 노인도 젊은이 못지않은 성욕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함으로써 노인의 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성에는 정년이 없다’는 것이다.

미 텍사스주립대학의 교수진들은 ‘왜 당신은 섹스를 하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 조사에 참가한 2천 명은 ‘당신은 성생활에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에 남성 56%와 여성 57%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질문의 내용을 약간 바꿔 ‘당신은 성관계를 충분히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56%의 여성과 68%의 남성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 연구를 수행한 텍사스대의 파이퍼 슈월츠 박사는 “55살에 이혼하고 난 뒤 가장 훌륭한 성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55살 이후에 섹스를 진짜로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현명한 젊은 여성이라 할지라도 성관계를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배우자와의 관계가 성숙되고 믿음이 넘쳐나는 나이 든 부부일수록 만족한 성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최근 칠레 노인들은 매우 행복한 시절을 맞았다. 칠레의 로프라도시에서는 노인들에게 ‘비아그라’를 공짜로 나눠주고 있기 때문이다. 로프라도시장 곤잘로 나바렛은 ‘삶의 질 향상에 활발한 성생활이 필수’라는 취지로 시민들에게 비아그라를 나눠주겠다고 발표하고, 1500명 노인들에게 한 달에 4정 정도 발기부전 치료제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칠레는 앞으로 다른 지역에도 같은 조처를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시민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우리나라도 지지율을 50%쯤으로 올릴 수 있는 정책으로 ‘보건소에서 비아그라 나눠주기’를 권하는 바이다). 성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나라마다 다른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황혼의 로맨스’를 끝으로, 지난 1년6개월 동안 연재됐던 사랑학 실험실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되었다.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서부터 80대 노인들의 ‘황혼의 로맨스’에 이르기까지, 이 연재 칼럼은 사랑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때론 노골적으로, 때론 냉정하게 전했다. 사랑에 보편적인 법칙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노력을 열정적으로 수행해온 과학자들 덕분에 이 칼럼은 탄생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노력은 우리의 사랑을 더욱 현명하게 만들어줄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특별한 사랑

지난 30년 동안 사랑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은 간결하다. 우리는 영혼만이 아니라 ‘육체와 뇌’라는 생물학적 기관을 통해 온몸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를 제대로 이해할 때, 우리는 현명한 사랑에 눈을 뜰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내 사랑은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사랑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보편적인 사랑의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임에도 온 인생을 통해 매번 남다른 색깔의 사랑을 펼친다는 점에서 우리의 사랑은 무엇보다 특별하다.

정재승 카아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정재승의 사랑학 실험실’은 이번호로 막을 내립니다. 정재승 교수는 곧 새로운 프로젝트로 다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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