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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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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속엔 양이 없다

등록 2003-01-29 15:00 수정 2020-05-02 19:23

과자 이름이 왜 ‘양고기 국’이 됐을까…‘램랜드’에서 맛보는 양고기의 맛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이 끝난 지 몇해 되지 않은 1950년대 후반은 그야말로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다. 1940년대에 태어나 60년대에 대학을 다닌 우리 50대들, 이른바 ‘564세대’는 그즈음에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도시와 농촌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서민의 자식들은 일상적인 물자 부족과 식량난 속에서 헐벗고 굶주리기는 대개 엇비슷했다.

춘삼월 버들가지에 물이 오르고, 새 학년 새 선생님을 맞이하고는 5월 보리꽃이 필 무렵 봄소풍을 간다. 초등학교 봄·가을 소풍 12번 가운데 근 10번을 간 원천저수지건만, 소풍가기 전날 밤은 설레는 가슴으로 언제나 잠을 못 이루었다. 소풍가는 날 아침, 어머니는 작은 광 모퉁이 항아리에서 흰쌀을 한 사발 퍼내어 고들고들 밥을 해서는 깨소금·소금 뿌려 참기름에 비빈 다음 시금치 길게 놓고 김밥을 싼다. 그러고는 삶은 달걀 두개와 지난 장날 사오셨는지 깊이 감춰둔 밥풀과자 몇개, 늘어붙어 종이까지 함께 씹어야 하는 캐러멜 1갑, ‘요오깡’ 1개를 김밥과 함께 보자기에 싸주신다.

어린 나이에 원천저수지까지 가는 길 4km는 길고도 멀다. 친구들 몰래 과자 한개, 캐러멜 한개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이번에는 오래도록 녹여 먹어야지’ 하고 결심하지만 곧 우둑우둑 씹어버린다. 마지막 ‘요오깡’만이 남아 있지만 돌아올 때 생각 못하고 포장을 뜯어 살며시 입에 베어 문다. 아! 혀 위에서 사르르 녹아드는 달콤한 ‘요오깡’의 맛! ‘요오깡’은 한자어 양갱(羊羹)의 일본어 발음이다. 곧 일본에서 팥앙금으로 만든 과자가 양갱인데, 양갱은 ‘양고기(羊)를 넣어 끓인 국(羹)’이라는 뜻이니 참으로 과자 이름이 수상쩍다.

고대 중국 귀족의 집에서는 선조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서 조상의 영혼을 위로하고 자손의 번영을 빌기 위해 자주 성대한 제사를 올렸는데, 그때에는 동물을 희생으로 바쳤다. 그 동물은 제사의 중요도에 따라 달랐는데 가장 중요한 제사에는 소를 썼다. 그러나 소는 크고 농경의 역축으로 중요했기 때문에 일상적 제사에서는 양을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신이나 조상에게 바치는 희생으로서의 양은 잘생기고 큰 것이 바람직했다. 신이나 조상들이 큰 것을 더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제사 뒤 음복물도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될 수 있는 한 큰 양을 골라 희생으로 바쳤다. 여기에서 양(羊)과 크다(大)는 글자가 합쳐져 훌륭한 것, 아름다운 것이라는 뜻의 미(美)자가 나왔다. 양은 제사드리는 희생물이면서 맛도 좋고 털과 가죽도 귀중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한자에서 羊을 부수로 하는 글자들은 대개 제사와 관련된 용어나 맛있는 음식, 상서로움, 경건함을 상징하는 뜻이 있다.

양갱은 고대 중국에서는 대단한 음식이었다. 국을 뜻하는 갱(羹)이라는 글자를 파자해보더라도 “양(羊)을 불(火)에 올려놓으니 아주 훌륭하다(美)”니 최초의 국 자체가 이미 양고기로 만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중산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전국시대에 지금의 허베이성에 있는 중산국(中山國) 왕이 신하를 모아놓고 연회를 베풀었다. 그때 사마자기(司馬子期)라는 신하도 연회에 참가했는데, 연회석상에 나온 양갱 분량이 적어 그에게는 돌아가지 않았다. 이 일로 화가 난 사마자기는 그 길로 남방의 대국인 초나라로 달려가 초왕에게 중산국을 정벌하도록 호소하였다. 이렇게 해서 중산국은 초나라에게 멸망당했다.

이처럼 양갱은 고대 중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중국 내 회족들은 양의 피를 이용해 수프를 만들어 즐기면서 이것을 또한 양갱이라고 했다. 16세기에 일본인들이 팥앙금으로 달콤한 과자를 만들었는데, 색깔이 수프와 비슷하고 양고기 국처럼 그 과자의 맛 또한 최고라고 해 과자 이름을 양갱, 곧 요오깡이라고 했다. 그러나 붕어빵 속에 붕어가 없는 것처럼 양갱 속에는 양이 들어 있지 않다.

올해는 양의 해. 우리 입맛에는 좀 낯설지만 1991년 양의 해에 문을 열어 2003년 양의 해까지 12년째 양고기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음식점이 있다. 마포에서 서강가는 길로 버스 두 정류장째 있는 ‘램랜드’(02-704-0223)가 그 집인데, 수입육 무역회사에 다니던 양띠 임현순(47)씨가 어느 날 우연히 회사 회식자리에서 양고기를 맛보고는 반해서 차린 전문점이다. 양고기는 쇠고기와 닭고기의 중간 정도의 맛을 보이는데 세간의 소문처럼 특별한 냄새가 나지는 않는다. 제대로 양고기 맛을 보려면 살점이 넉넉한 삼각갈비(1인분 1만6천원)를 시키면 좋다. 양고기찜(3만2천원), 전골(3만원)도 있고, 중국 고대의 양갱과 같은지 모르지만 양고기곰탕(5천원)도 한끼 식사로 포만감을 준다.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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