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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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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유대인을 말살하다

등록 2002-07-03 15:00 수정 2020-05-02 19:22

이스라엘 단일민족의 유령은 어떻게 ‘아슈케나지’와 ‘세파르디’를 부정했는가

현재 일각에서 비판적으로 재인식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화기 때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단일민족’이라는 용어는 거의 성역 그 자체였다. 고대의 고구려·백제·신라의 언어와 문화가 대단히 달랐음에도, 50년 전만 해도 제주도에 피난간 함경도 출신들이 제주 사투리를 도저히 이해 못해 일본말로 대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단일성/동질성’이 ‘우리 민족’의 변치않는 신성한 속성으로 간주되어 왔다. 단일민족이란 말이 아이누족·오키나와 주민의 독자성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한국인까지도 “우리 일본인과 단일한 존재”로 취급하여 황민화하려는 일제의 프로파간다로부터 이입·이식됐다는 사실을 아는 역사학자들은 냉소적 웃음을 참고 단일민족을 들먹이는 교과서의 어용 민족주의적 궤변을 여태까지 그냥 받아들여야 했다. 이제 관제 민족주의의 마취가 풀려 ‘단일성’ 신화가 상당히 후퇴한 것은 크나큰 다행이다.

교회의 언어에 불과했던 히브리어

그러나 문제는 ‘단일성’ 신화의 조작이 한국·일본 관제 민족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데 있다. 권좌에 앉아 있는 민족주의자들이 ‘일체 단결’·총동원의 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명분이 없는 권력을 공고화하는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자주 쓰는 수법이다. 몇백만명이나 되는 쿠르드족의 존재를 부정하여 ‘일체 터키 국민의 영원한 민족적 단일성’을 외치는 터키의 어용 민족주의나,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바스크족의 독자성을 전면 부인하여 일체 바스크인들을 단순히 ‘스페인 사람’으로 봤던- 그러다가 테러까지 불사하는 바스크인의 극단적인 민족운동을 초래한- 스페인의 관용 민족주의나, 이 차원에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유럽·중동·극동권의 어용 민족주의들보다 ‘단일성’의 신화를 훨씬 더 무리하게 추진해 결국 미증유의 끔찍한 문화적 파괴와 억압·배제의 구조를 낳은 것은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시온주의)이라는 관제 민족주의다. 이스라엘 건국(1947년) 이전부터 아랍인의 대량학살·추방 등을 주도해 수많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지금도 아랍인들에 대한 차별·억압·학살의 선봉에 서 있는 이스라엘의 경력이야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유대인 사회 내부에서도 ‘단일성’ 신화를 바탕으로 한 억압·배제·차별의 구조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대족의 문화적·종교적 다양성과 아랍권·아프리카 등 출신 유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범죄도 결코 만만치 않다.

유럽의 19세기 말 민족주의·인종주의 이데올로기들을 모방해서 시오니즘을 생산한 것은, 유럽의 유대인인 이른바 아슈케나지(Ashkenazi)족이었다. 이 용어의 근원이 히브리어의 독일 명칭인 ‘아슈케나즈’인 만큼, 아슈케나지들과 독일과의 관계는 그야말로 각별한 것이었다. 15세기 폴란드·우크라이나·러시아 등의 동구지역으로 진출하기 전 주로 독일에서 살았던 그들은, 언어마저도 독일 어휘·문법을 골간으로 하는 이디시(Yiddish)어를 썼다. 지금 이스라엘의 ‘국어’의 위치에 오른 히브리어는 당시만 해도 일반인들이 잘 구사하지도 못하는 교회의 언어였다. 언어 생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슈케나지들의 성씨도 독일식으로 만들어지고, 복장·일상 습관도 상당부분은 독일의 도시민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19세기 사회주의 혁명운동가 입장에서는 독일 노동자와의 연대를 쉬운 것으로 만들어주었던 이디시어가 유대인 프롤레타리아들의 ‘국제성’을 보장하는 ‘진보에 유리한’ 것이었다. 유대인 국제 사회주의자 정당이었던 ‘분드’(Bund)를 비롯한 일체 유대인 진보단체들은 이디시어를 공식 언어로 썼다.

황민화 캠페인과 시오니즘화 캠페인

그러나 ‘이민족과의 연대’라는 발상 자체를 거부했던 부유층 민족주의자인 시온주의자들에게는 ‘이민족의 언어’를 일상에서 쓴다는 것은 ‘민족 타락’의 징조일 뿐이었다. 이디시어로 된 유대인 세속 문학의 전통이 오래됐다는 점이나, 수많은 민요·동화·전설 등이 이디시어로 구비 전승됐다는 점 등은 ‘민족의 순수성’을 주장했던 그들에게 하등의 관심사도 아니었다. 그들은 교회의 사어(死語)인 히브리어를 다시 인위적으로 뜯어고쳐 현대화한 다음 ‘민족의 언어’로 설정했다. 바로 히브리어는 지금 이스라엘의 국어다. 이디시어를 모국어로 했던 사람들이 마르크스나 로자 룩셈부르크(1879∼1919), 칼 카우츠키(1854∼1938) 등의 유럽의 저명한 사회주의자들의 독문 저서를 쉽게 읽을 수 있었던 반면, 히브리어밖에 몰랐던 팔레스타인 거주 2세의 유대인들에게 유럽의 혁명적·국제주의적·반전(反戰)적 전통은 이미 완전히 ‘남의 것’이 돼버렸다. ‘유대인의 탈혁명화’라는 시오니즘의 한 과제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실행된 셈이었다.

이스라엘은 건국 직후부터 아랍 세계와의 외전(外戰)과 동시에 이디시어를 기반으로 하는 아슈케나지들과 내전(內戰)을 시작했다. 이것은 전통문화와의 내전이었다. ‘비국민’적인 이디시어 신문·잡지들의 발행이 금지되고, 이디시어 학교·극장 설립도 불허됐다. 이디시어를 금지하는 건국 초기의 법령이 몇년 전까지만 해도 자칭 ‘민주국가’ 이스라엘에서 유효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길거리에서 이디시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욕설과 물리적인 공격을 당하기 일쑤였다. 유럽 유대인들의 1천년의 역사를 전면 말살하려고 했던 그 관제 민족주의적 광란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는가? 차이가 없지는 않지만, 성황당들을 파괴하고 전통 굿 등을 ‘미신’으로 치부했던 새마을운동의 광풍과 일면 상통하기도 한다. 구체적인 역사적 문맥이 달라도 통치자들이 원한 획일적 ‘민족’을 만들어내는 의미에서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회 상류·중류층을 이룬 아슈케나지들의 유럽적 유산이 이 정도로 무자비하게 부정됐지만, 이슬람권 출신의 유대인인 ‘세파르디’(Sephardi)들에 대한 단일화 정책은 인종주의적인 문화유산의 말살 그 자체였다. 건국 초기부터 권력을 잡은 유럽 출신의 시온주의자들은, 시온주의에 무관심한 반면 1천년 이상 같이 한 땅에서 살았던 아랍인들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졌던 ‘세파르디’에 대한 잔혹한 세뇌적 ‘단일민족화’ 작전을 폈다. ‘동양화되어 후진적인 세파르디’들을 시오니즘화·근대화시켜 아랍인들을 광적으로 증오하는 ‘이스라엘의 정상적인 국민’으로 만든다는 목적이었다. 일제 말기의 황민화 캠페인을 방불케 하는 ‘시오니즘화 캠페인’의 일환으로 아랍어를 기반으로 하는 ‘세파르디’들의 고유 일상언어가 이디시어보다 훨씬 철저한 금지와 배제를 당했다.

“평화공존의 기억을 지워버려라”

더불어 세파르디의 역사는 이스라엘 교육과정에서 말살되고 말았다. 이스라엘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400쪽 중에서 이스라엘 인구의 절반을 이루는 세파르디의 역사에 할애된 것은 고작 9쪽(!)이다. ‘동양’에 대한 이스라엘 지배층의 오리엔탈리즘적 멸시의 깊이도 느껴지지만, 이 역사 말살의 또 하나 주된 목표는 세파르디와 아랍인들의 평화적 공존에 대한 일체의 기억을 말살해버리는 것이었다. 아랍인에 대한 증오의 이데올로기를 국민 통합의 바탕으로 삼는 이스라엘 지배층에는, 아랍권에서 유럽과 달리 반유대주의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만큼 껄끄러운 사실이 없었다. 시오니즘이 팔레스타인을 정복하기 이전에 유대인들을 언제나 반기고 관대하게 대해주었던 아랍인들에 대한 그들의 ‘배은망덕’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세파르디들에 대한 파시스트적 ‘동화’ 캠페인의 가장 반인륜적인 요소는 ‘가장 악질적인 후진 분자’로 분류된 일부 종교적인 세파르디들로부터 갓난아이들을 강요와 기만으로 빼앗아가 ‘선진적인’ 유럽 출신의 시온주의자의에게 입양시키는 ‘2세 동화 작전’이었다. 부와 권력이 없는, 그리고 ‘동양인’으로서 서구 언론의 주목도 받기 힘든 세파르디에게, 오스트레일리아의 백인들이 원주민을 다루었던 수법을 그대로 적용한 셈이었다.

아슈케나지들의 이디시어와 그 언어와 관련된 풍부한 문학·문화 유산, 세파르디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여 법적 조치와 불법적 폭력 등의 각종의 가혹한 수단으로 ‘시오니즘적 단일민족’의 허구를 실현하려고 혈안이 된 이스라엘은, 말 그대로 문화와 언어들의 묘지다. 아랍인들에게 폭력으로 빼앗은 땅에서 허구적인 시오니즘 위주의 ‘국사’를 진실로 알고, 인위적인 히브리어를 쓰고, 3년간의 군복무 경험을 주요 ‘동질성’의 근거로 삼는 이스라엘의 ‘단일화된 국민’들이 살고 있다. 그들의 진지한 과거- 아랍권에서의 아랍인과의 조화로운 공존과 문화적 교류의 역사나, 유럽에서의 국제주의적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 등- 는 시오니즘으로 세뇌된 그들에게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지한 과거 대신에 증오와 배제의 단세포적인 시오니즘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그들에게 미래가 있는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시오니즘에 대한 철저한 해체작업으로 억압과 배제의 ‘업장’이 소멸되지 않는 한, 이스라엘은 아랍인에 대한 적대적 행위를 멈추지 못하고 진정한 평화를 찾지 못할 것이다. 요즘 인기를 얻은 임지현 교수의 책 주제대로, 시오니즘은 유대인의 문화와 인류 보편성의 원칙에 대한 반역이요 배신이다.

박노자 ㅣ 오슬로국립대 교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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