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팀에서 정치팀으로 옮기며 사회팀 기자와 정치팀 기자의 차이를 깨달았다. 사회팀 기자는 아무 때나 청바지를 입어도 되지만, 정치팀 기자에게 청바지는 가끔씩만 허용된다는 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야 날아오른다’고 어떤 독일 철학자가 말했다. 어떤 사회적 사건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학자의 지혜는 그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한참 뒤에야 생긴다는 의미다. 기자도 비슷하다(다만, 학자보다 기자의 지적수준이 낮으니 기자는 아마 ‘미네르바의 오리’쯤 되지 않을까. 실제 그런 이름의 블로그도 있다). 사건을 예측하기보다 사건이 벌어진 뒤 그것을 해석하는 일이 더 많다. 어떤 독자도 사회팀 기자에게 “내년 ○월에 토막살인 사건이 벌어질까?”라거나 “대형 재난이 두 달 뒤 일어날까?”라고 묻지 않는다. 선거를 코앞에 둔 정치팀 기자에게는 예외적인 일이 벌어진다. 회사 동료, 주말에 만난 아버지, 간만에 뵌 삼촌 모두 “누가 되겠냐. 정치 담당 기자가 제일 잘 알지 않느냐”고 묻는다. 난감한 일이다. 이럴 땐 내가 목도한 인상비평을 적당히 버무려 눙치는 게 제일 좋다. ‘~할 확률을 고려해야 한다’ 따위의 마무리가 가장 좋다.
기자란 어차피 ‘미네르바의 오리’이니 이번 대선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크게 타박하지 마시라. 그런데도 나는 아직 허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지하는 후보가 떨어져서 그런 것 아니냐고 오해 마시라. 기자는 ‘내일 비가 온다’고 말하지는 못해도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있다’ 정도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정도 능력도 없다면 3천원을 받고 을 팔기 미안하지 않겠나. 돌이켜 보건대, 정치팀 기자로서 나는 먹구름이 끼는지 하늘을 살피기는커녕 늘 바라보던 웅덩이와 초가집만 쳐다본 것 같다. 그 점이, 대선이 끝나고 12일이 지난 오늘까지 나를 아프게 한다.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반성이 나온다. ‘뱅뱅이론’은 그중 하나다. 패션에 관심 있는 블로거 ‘춘심애비’는 30대 초반 야당 성향 남성이다. 그는 4·11 총선 결과를 아프게 돌아보다 한 가지 팩트를 상기했다. ‘청바지 브랜드 가운데 1위가 어딜까?’라고 자문한 적이 있다. 나름대로 패션에 관심있던 그는 ‘리바이스’ ‘GUESS’ ‘캘빈클라인’ ‘NIX’ 따위를 떠올렸다. 친구들 답도 비슷했다. 웬걸. 1위 브랜드는 ‘뱅뱅’이었다. 2011년 보도를 보면, 2010년 청바지 단일 브랜드로 ‘뱅뱅’이 매출 2050억원을 올려 1위였다.
‘30대 초반에 패션과 트렌드에 관심 있으며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젊은이’인 이 블로거는 충격을 받고 다음과 같이 반성했다. “오해 없길 바란다. 필자는 ‘뱅뱅’과 ‘잔디로’를 구매하는 분들을 폄하하거나 촌스럽다고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앞서 필자가 굳이 청바지에 관한 필자의 패션 정체성을 얘기한 건, 이런 특징을 가진 필자는 ‘뱅뱅’과 ‘잔디로’가 부동의 1위 브랜드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패션 성향이 다른 소비자 집단을 상상조차 못한 자신의 좁은 시각을 반성했다.
그 시각을 4·11 총선에 갖다댔다. 진보적인 젊은 유권자들의 외침이 ‘트위터’로 전파되고 그 메아리가 다시 젊은 유권자들에게 현실로 인식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취지다. ‘트위터’가 트위터를 쓰지 않는 세대를 이해하는 걸 가로막는 ‘폐쇄회로’가 돼버렸다는 반성이다. ‘뱅뱅이론’이다.
정치팀 기자로서 나의 폐쇄회로는 무엇이었을까? ‘캠프 대변인이 전하는 정치 메시지-캠프 관계자가 흘려주는 ‘비공식’ 정치 메시지-후보 선거운동-그 운동에 관한 정치 기사-그 정치 기사에 대한 캠프의 반응-다시, 캠프 대변인의 정치 메시지’라는 회로에 갇혀 정작 중요한 유권자 집단 자체에서 멀어진 게 아닐까 되돌아봐도,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하루 뒤 폭우가 쏟아지는데 먹구름이 끼어 있는지도 보지 못했다는 결과는 변함이 없다. 폐쇄회로가 무엇이었을까. 질문은 오래 지속될 것 같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이번호로 ‘대선캠핑’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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