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칭찬과 아쉬움 ] 청소년 보호론자들의 우려대로, 청소년들은 동성애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동성애 표현물은 청소년에게 유해한가’라는 주제의 예컨대 논술에 학생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글이 들어왔다. 역시 청소년 보호론자들의 우려대로, 청소년들은 동성애에 우호적이었다. 학생들은 한결같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혁, 손지윤, 이슬기 등 뉴페이스와 유성민, 최진헌 등 올드페이스 모두 ‘예컨대’로 뽑혀도 손색 없는 글을 보내왔다. 다만 단연 빼어난 글 하나가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전혁, 손지윤 학생의 글 사이에서 오락가락한 끝에 결국 전혁의 글을 예컨대로 뽑았다. 전혁 학생의 글이 상대적으로 주제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대전외고 전혁 학생은 법으로 동성애 표현물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성교육을 통해 동성애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는 일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법 앞의 평등을 보장할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다른 학생들의 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주장이었다. 이처럼 그의 글은 ‘동성애 표현물’을 중심으로 논술을 풀어가 글이 구체적이고 주제 충실도가 높았다. 다만 논리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고 문장이 늘어지는 점이 아쉬웠다.
대원외고 손지윤 학생은 최근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시정부가 동성 커플에게 결혼증명서를 발부한 이야기로 글을 끌어갔다. 첫 단락이 매력적이고, 단정한 문장이 빛나는 글이었다. 광주여고 이슬기 학생은 “동성애가 유해하지 않다면 그 표현물 또한 유해할 리 없(다)”고 주장했다. 역시 치밀한 논리와 날카로운 비유가 훌륭했다. 그러나 두 학생의 글은 ‘동성애 표현물’보다는 ‘동성애’의 유해성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글 주제가 동성애에 대한 판단과 겹쳐 있지만, 동성애 표현물이 청소년에게 유해한지를 따져보는 것인 만큼 주제에서 조금 떨어진 감이 있다. 이 점에서 두 글은 전혁 학생의 ‘정공법’에 밀렸다.
예컨대 모범생, 유성민 학생과 최진헌 학생의 글도 ‘수준’을 잃지 않았다. 대전 보문고 유성민 학생은 동성애 반대론자들을 비판하며 “변태 눈에는 변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인천고 최진헌 학생도 최근의 관련 설문조사 등을 인용해 논리적인 글을 써주었다. 이 밖에 울산 신정중 졸업생인 김영경 학생의 글에도 “‘동성애 표현물’에 관한 찬반으로 쓸모없이 에너지를 소비할 것이 아니라 ‘동성애’라는 가치관을 어떤 방법을 통해 전달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날카로운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학생들의 글에서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모든 학생의 글에 과연 청소년은 유해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이 빠져 있었다. 또 청소년 보호 논리의 저변에 깔린 ‘동성애는 전염된다’는 인식에 대한 비판도 없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이 만만치 않음을 확인할 수 있는 행복한 한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