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루피아이던 1달러가 지금은 9천루피아로… 97년 맞았던 경제 위기에서 아직도 허우적
▣ 자카르타= 글 · 사진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
자카르타 한복판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생 에어랑가(9)에게 1만루피아(1달러는 9천루피아)를 주었더니, 놈은 달려가서 공책을 샀다. 문방구 주인이 10개들이 한 묶음을 1만7500루피아라고 하자, 돈이 모자란 에어랑가는 1천루피아짜리 낱권을 하나 집어들었다. 에어랑가가 산 공책은 내가 초등학생 때 쓰던 것과 똑같은데, 그 시절에는 100루피아였다. 그 무렵 미국돈 1달러는 800루피아쯤 했다. 내 초등학교 시절 하루 용돈이 40~50루피아였다면, 요즘 에어랑가는 부모에게서 하루 2천루피아를 받는다.
2002년 아시아 최대부패국가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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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면과 콜라, 공책, 비누를 살 수 있고 삼발이택시 '베모'를 탈 수 있는 1달러. 물가가 너무 올라 1달러의 가치가 상실됐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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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를 키우는 산티(37)에게는 1달러꼴인 9천루피아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휴, 1달러가 있으면 비누도 사고 양념도 사고, 살 게 너무 많지.”
청소부인 그는 허리가 끊어져라 하루 5km 거리를 쓰는 대가로 겨우 1만3천루피아를 얻는다며 한숨부터 지었다. 그의 말로는 10년 전엔 1만루피아만 있으면 가족들이 2주 동안 먹을 수 있는 쌀이 나왔단다. 지금 그 돈은 하루 거리밖에 안 된다.
오늘날 1달러에 해당하는 9천루피아는 그렇게 가치를 상실했다. 말할 것도 없이 물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사기 치지 않는 한, 인도네시아 시민증을 지닌 이라면 모두 고통을 겪고 있다고 보면 정확하다. 물론 하루 4만루피아(약 5달러)를 벌어 아내와 단둘이 먹고사는 데 까딱없다는 삼발이 택시 ‘베모’ 운전사 삼수딘(35) 같은 이는 “신이 가호를 내린” 경우고. 또 온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는 옆집 쿠마이디(50)처럼 코리아-인도네시아 정부 합작 인성자원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들이 한국에서 번 달러를 보내오는 경우야 대박이 터진, 그야말로 선택받은 이들일 뿐이고.
인도네시아 경제 문제는 1997년 위기가 왔을 때 잘 드러났다. 그 전에 1달러당 2500루피아이던 환율이 단 두어달 만에 1만6천루피아까지 떨어졌으니, 굳이 더 설명하고 말고 할 일도 없다. 그 무렵 함께 위기를 맞았던 아시아의 ‘파탄동지 국가들’이 비교적 재빨리 손을 썼던 것과 달리 인도네시아는 대책이 없었다. 정치위기가 함께 휘몰아쳤던 탓이다. 그 인도네시아판 경제위기와 정치위기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부패다.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는 사이 좋게 2002년 아시아에서 최대 부패국가로 선정되었다. 인도네시아는 그 분야에서만은 국제적으로도 공인을 받았다. 악명 높은 부패국가 세네갈, 에티오피아, 말라위, 파키스탄, 잠비아를 모두 거뜬히 물리치면서. 지난 2년 동안 외국 투자자들이 인도네시아 정치 엘리트들에게 부패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라고 경고해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어떤 놈이 부패로 시민을 괴롭히는지는 신만이 알지도 모른다. 시민들은 그 신의 품에 안겨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질 달러를 기다리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