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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아넷 바그다드 제5신] 누가 이라크의 진실을 두려워하나 베트남전에서 2차 걸프전까지 종군 취재 40년… 끝내 숨길 수 없는 일상적 파괴와 살육의 현장
로켓포탄과 차량 폭탄이 며칠 동안 잇따라 바그다드의 명물 알 라시드 호텔과 세곳의 경찰서 그리고 국제적십자사 본부를 공격했을 때 나는 “이라크 보도에서 언론이 나쁜 면만을 강조하고 비관론을 퍼뜨리고 있다”는 부시 대통령의 계속된 주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폐허가 된 적십자사 건물 밖에서 내가 본, 부상당한 아들에 넋을 잃은 어머니는 분명히 부시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또 부상으로 피범벅이 된 머리 전체를 몇겹의 붕대로 감은 오메르 사디 경감 역시 (부시 대통령 같은) 낙관론자들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북서 바그다드에 있는 소속 경찰서에서 일어난 차량 폭탄테러로 부상을 당했고, 그가 새로 마련한 소형 트럭까지도 못쓰게 되어버렸다.
비관론 퍼뜨린다는 전쟁론자들의 비난
유혈이 낭자한 사고현장에서 내가 만난 모든 미군들은 호기심으로 근처에 온 이들의 현장 접근을 막기 위해 도로에 철조망을 치면서 매우 긴장한 채 사람들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전쟁 중에 사망한 미군 수보다, 부시 대통령이 승전을 선언한 5월1일 이후 죽은 군인 수가 더 많아져 100명을 넘은 상황이다보니 군인들의 사기가 떨어져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바그다드에서 압도적인 현실은 치안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학교 수업부터 상업 행위에까지 모든 분야의 활동에 지장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언론이 지나치게 부정적인 점만을 부각시킨다고 비판하려는 부시 정권의 시도는 옳지 않다. 이런 시도는 진실을 은폐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전쟁을 하는 정권들 사이에서 종종 일어나는 이런 행태는 미국인들이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믿는 나라들의 지도자도 잘 저지르는 일이다. 내가 이 점에 대해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지난 50여년 동안 미국이 개입한 가장 중요한 두 전쟁,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을 최전선에서 취재했기 때문이다.
나는 베트남 전쟁에서 기자들만의 독특한 통찰력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전장에서 본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도하려는 의지가 있었을 뿐이다. 베트남전은 ‘정당한 전쟁’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있었다. 그 전쟁은 시작부터 소련과의 정치적 대결에서 연습경기 성격이 강했다. 시간이 지나 미국에서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면서 점점 이 전쟁에는 도덕적 정당성도 지리적·시기적 필연성도 없다는 증거가 쏟아졌으나, 미국은 그 경기를 계속했다.
베트남 전쟁 내막 살핀 씁쓸한 대가
미 국방부와 백악관은 우리 기자들을 훼방꾼이라고 모함했다. 그들은 우리의 진실된 보도가 국익을 위협한다고 했다. 당대 주류 이익을 대변하는 칼럼니스트 중 대표적인 조셉 알솝조차 1967년에 쓴 글에서 베트남 종군기자들이 “바위와 딱딱한 곳 사이에 있다”고 우리의 어려움을 표현한 바 있다. 미국이 전쟁에서 이긴다면 기자들은 전쟁에 반대하는 보도를 했다고 비판받을 것이고, 질 경우에도 우리의 비애국적 보도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미국은 전쟁에서 졌고 베트남 종군기자단뿐만 아니라 정부의 군사 정책에 반대한 모든 기자들에게 비애국적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선거로 선출된 고위 관료들과 언론이 벌인 이 투쟁에서 국민들은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국민들이 수많은 사상자와 엄청난 재정 부담으로 피해를 입고 나서야, 정부는 현실을 깨닫고 전쟁을 종료했다.
바그다드에서 모든 일은 분유공장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당시 나는
현장에 있던 이라크 공무원들은 그 공장이 날마다 수도의 어린이들이 섭취할 20t의 분유를 생산하는 곳이었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들은 플라스틱 수저를 만드는 기계가 완성품과 함께 바닥에 나뒹구는 것도 보여주었다. 나는 발목까지 차오르는 하얀 분말 사이를 걸었는데, 근처의 문서들은 그 생산품이 맥아와 설탕 추출물과 우유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는 분말 몇 봉지를 내가 머무는 호텔의 어린이들에게 나눠주려고 한아름 챙겼다. 내 눈에 그 공장은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는 분유제조 공장이었다.
그날 밤 나는 위성 전화를 통한
진실을 감추기 위한 ‘언어의 전쟁’
그렇게 시작된 ‘언어의 전쟁’은 이라크 땅 위에서 일어나는 실제 전쟁만큼이나 치열했다. 전 세계 사람들의 거실에 놓인 텔레비전을 타고 말이다. 분유공장 사건은 미 국방부가 계속 그들의 최신형 무기가 거의 오차가 없다고 뽐내며 주장한 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려준 수많은 사건들 중 첫 번째였을 뿐이다. 8일째 되는 날 바그다드에서 세채의 민가가 그 안의 거주자들과 함께 폭탄에 파괴되었고, 9일째에는 바그다드 북쪽에 있는 알 도우르시의 몇몇 구획이 폭격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수십명이 사망했다. 10일째에는 나자프에 있는 민간 가옥들이 피해를 입었다.
연합군 사령관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은 이 도덕적 딜레마를 그의 사령부 벙커 안에서
나를 비난하는 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내가 보았다고 주장한 것은 명백한 허위이고, 만약 나의 보도를 뒷받침하는 화상 자료가 있다면 그 자료는 이라크 정보기관이 날조한 것이었다. 그들은 사담 후세인이 프로파간다를 위해서 자국의 도시들을 폐허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주장도 반복되다보면 믿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는 거였고, 사실 전쟁 처음 몇주 동안 부시 정권은 심각한 비판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2월13일이 왔고 ‘네 탓하기 게임’은 종지부를 찍었다.
오폭의 정당화… 국방부의 정보 통제
그날 새벽 4시50분 미국의 폭격기가 두발의 정밀유도미사일을 바그다드 중산층 지역인 아마리야의 민간 대공대피소에 떨어뜨렸다. 대피소에는 여성들과 아이들, 노약자들이 꽉 차 있었고 폭발이 야기한 화염에 400명 가까이 사망했다. 수많은 기자들이 그곳으로 갔고 전쟁에서 나왔던 가장 참혹한 사진은 전 세계의 독자와 시청자들을 경악시켰다. 미 국방부는 그 대피소에 라디오 안테나가 있었고 군사적 용도를 가질 수도 있었기에 정당한 목표물이라고 항변하려 했다. 그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며칠 뒤 도착한 러시아 외교장관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이런 살육은 끝내야 한다”며 그를 바그다드로 보냈다고 내게 말했다.
그러나 이후 언론은 전쟁의 끔찍한 이미지를 계속 내보냄으로써 미국 정책 입안자들에게 부담이 되었다. 그리하여 클린턴 정부는 코소보 전쟁 당시 방송사 기자들이 저녁 뉴스를 마감하고 나서야 베오그라드의 텔레비전센터 공습 허가를 내렸다. ‘아랍의
미국 정부는 올해 제2차 걸프전에서 베트남전 이후 가장 적극적인 정보통제 노력을 했다. 이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보도하던 언론의 도움으로 나름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1991년 첫 걸프전을 취재했기에 2003년 2차 걸프전도 취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68살이라는 나이 때문에 기자로서 나의 역할도 바뀌었다. 나는 1999년 18년 동안 최전선에서 수행하던 종군기자 역할을 마감하고
나는 아프가니스탄 ‘테러와의 전쟁’ 현장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또 고화질 텔레비전 방송용으로 30분짜리 프로그램 7개를 만들었다. 2002년 몇달을 바그다드에서 머물며 미국 시장을 겨냥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특히 전쟁 가능성이 임박하자 사담 후세인 정권을 논하고 분석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고위 바드다드 관료들과 여러 번에 걸쳐 인터뷰를 했고, 유엔 무기사찰단은 점점 더 많은 증거를 내놓았다. 이를 통해 사담 정권이 대량살상무기와 그것을 생산해내는 프로그램을 포기했다는 견해를 갖게 됐다.
바트당은 게릴라전 수행 능력 있었다
명백히 처음부터 부시정권이 이라크를 공격하기로 한 결정에는 현실보다는 역사적 요인이 더 많이 작용하였다.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은 중동 지역에서 미국에게 눈엣가시인 한 정권을 제거하는 데 좋은 구실을 제공했다. 바그다드에서 한 일련의 인터뷰에서 나는 사담 정권이 그들의 군사적 약점뿐만 아니라 정치적 강점 역시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특히 바트당은 미국에게 복수할 전후 게릴라전을 수행할 능력이 있었다. “우리는 이라크 사람들의 마음을 30년 동안 지배해 왔다”고 올해 2월 당시 부총리 타리크 아지즈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내게 자랑했다. “미국은 우리를 침략할 수 있지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2500만명의 이라크인들을 세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보도를 계속하면서 논평가와 분석가로서의 일도 병행하였다. 나는 전쟁을 취재하려 남아 있던 많은 다른 나라 기자들에게 인터뷰 대상이 되었다. 그 기자들은 1차 걸프전 동안 바그다드에 남아서 취재했던 나의 활동이 하나의 전례가 됐다고 이야기했다. 이전에 존재했던 전쟁 중 의사소통의 벽 역시 낮아지고 있었다.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아> 텔레비전 네트워크는 미국 당국에 의해 기본적으로 반미 성향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지만, 부시 정권 고위 당국자들은 그 채널들에 정기적으로 출연해 자신들의 정책을 알리고는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는 전쟁이 시작된 지 며칠 뒤 이라크 방송국과 인터뷰를 했다. 이라크 공보장관 알 사하프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나서 이라크인 프로듀서가 내게 인터뷰 요청을 했고,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를 받아들였다. 나는 인터뷰에서 바그다드 폭격과 민간인 피해가 더 증가할 경우 이것이 미국 정책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고, 미군 사령부가 전쟁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서 직면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내가 한 말은 이라크가 아닌 다른 나라의 언론과 한 인터뷰의 내용과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시청자가 가장 많은
가장 능숙한 정치 컨설턴트라도 현재 이라크 상황이 미국에게 재앙을 안겨주는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다는 것을 다른 모습으로 포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텔레비전과 신문에 나오는 잔혹한 이미지가 보여주는 이라크의 일상적인 파괴와 살육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고, 이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전쟁의 현장
그렇기 때문에 우익 언론에서조차 점점 많은 비난의 화살을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에게 쏟고 있는 것이다. 그의 통찰력 결여는 조속한 군사적 승리는 이뤘을지 몰라도 평화의 가능성을 얻는 부분에서는 패배를 기록했다. 그리고 미국 국민들이 이 전쟁이 야기한 인명 손실과 재정 부담에 참을성을 잃고 있다는 점은 대통령의 추락하는 지지도가 방증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현 이라크 문제에 지금보다 더 나은 답을 원하고 있다.
종군기자는 그가 생각한 최악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거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기자는 그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따름이고, 역시 있는 그대로 보도할 뿐이다. 나는 기자생활에서 진실은 종종 삼키기에 너무나 쓰디쓴 약과 같다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당국자들은 종종 그들이 야기한 현실보다 그것을 예견한 전달자를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했다면 나는 다른 일을 찾았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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