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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아넷 바그다드 제4신] ‘에덴동산의 뱀’은 누구인가 피터 아넷의 이라크 제4신… 등돌린 페쉬칸 민심의 분노 “1억달러 준다 해도 사담 보호하겠다”
미색의 사암 벽돌로 지어진 이 마을의 풍광에서는 풍성함과 아름다움이 흘러나온다. 이곳에 온 중세 유럽 여행객들이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가 창조된 에덴동산에 도달했다고 믿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른 가을의 페쉬칸은 빛나는 곳이다.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에 빨간 석류가 익어가고, 우뚝 선 대추야자나무의 가지는 알알이 맺힌 금빛 열매의 무게에 휘청거린다. 과수원에서는 감귤나무의 주홍빛이 사과의 연두빛과 대조를 이루며 서로 자태를 겨루고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천생의 팔레트가 이곳에서 화가를 기다리고 있다. 강둑을 따라 페쉬칸과 이웃한 마을들이 줄지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흐르는 푸른 물이 중부 이라크를 가로지르는 티그리스강이다. 언뜻 보면 이 동네는 이라크의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위기 상황과는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은 배에 탄 낚시꾼들은 참을성 있게 강을 훑는다. 형형색색의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이슬람 아낙네들이 이끄는 당나귀 마차는 먼지를 내며 골목길을 활보한다.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남정네들은 뒷마당 양탄자에 모여 앉아 빈둥거리며 과일이 익어가는 것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과수원에 대한 미군의 무차별 보복
그러나 이런 겉모습은 진실을 감추고 있다. 강둑길에 떠오른 짙은 먼지구름은 당나귀 마차가 아니라 무장한 군인을 가득 실은 미국의 무장 트럭과 수송차량 행렬이 만든 것이다. 험상궂은 얼굴을 한 미군들은 지나가는 행인과 사물을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쏘아본다. 인근에 있는 이 지역의 수도 알 오다임시 한구석에서는 대추야자와 과일나무들이 짓이겨진 곳으로부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거대한 과수원은 근처 도로에서 현지인들에게 매복 공격을 당한 미군의 보복으로 초토화해버렸다. 이 사건은 지역 사람들을 엄청 분노하게 만들었고, 그들은 근처에 외국인 한명이 들르기라도 하면 이에 대한 불만을 말하기 위해 무리를 지어 오곤 했다. “나는 이곳에서 번 돈으로 내 생계를 꾸렸다. 그들이 한 짓을 보라”며 과수원 주인 아야드 알리는 비틀어 짓이겨진 야자나무와 널브러진 나무로 가득 차 있는 넓디넓은 과수원 대지를 가리켰다. “누군지 모를 몇몇 사람이 내 과수원을 통과해 들어와 미군에 총을 쐈다는 이유만으로 대추야자 800그루가 뽑혔다. 왜 내가 처벌받아야 하는가?” 이라크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과수원 파괴 행위에도 비슷한 분노가 촉발됐다.
이곳은 분명히 에덴동산이 아니다. 비록 내가 본 것이 재앙의 몇 가지 표면적 징후에 불과하지만, 나는 이 목가적 분위기의 마을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곳 사람들은 그 문제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이야기한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미국이 이라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리고 애초 이 전쟁 발발을 합리화하기 위해 들인 모든 노력이 헛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페쉬칸 마을은 바그다드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두 시간 넘게 가야 나온다. 우리가 갔던 현대적인 티그리트 고속도로는 미국 수송차와 순찰차가 종종 매복 공격을 받은 바로 그 도로다. 우리를 실은 차량이 천천히 움직이는 미 군용 차량 대열을 앞질러가자, 후미의 트럭에 타고 있던 한 미군 병사가 위협적으로 자신의 M16 라이플의 총구를 우리를 향해 돌리며, 떠나버리라는 몸짓을 계속했다.
체포된 500명의 젊은이들은 어디로 갔나
우리는 페쉬칸까지 가기 위해 간이 비포장도로에 올랐고, 바그다드에서 95km가량 떨어진 곳에서 이번 여행의 첫 검문소를 만났다. 이라크 방위경찰은 친절했고 손을 흔들며 우리를 통과시켰다. 우리 곁에 쏜살같이 지나가는 미국의 순찰차가 보였고, 그 차는 ‘파란모자’라고 불리는 이라크 특별 경찰이 탄 트럭의 엄호를 받고 있었다. 내가 이야기를 나누었던 이라크 주민들, 아부 모하메드와 그의 아들, 두명의 남자형제들은 이 특별 경찰들에 대해 특히 부정적이었다. “몇몇 질 안 좋은 사람들이 미국인 편이 돼 음해성 정보를 제공했다”고 그들은 불평했다. 아부 모하메드는 지난 7월 미군들이 그 지역을 봉쇄하고 500명의 젊은 남성들을 체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그들의 소식도 듣지 못했다.” 아부 모하메드 일가는 수니파 이슬람 교도로서 작은 과수원을 운영하고 상대적으로 부유한 편이다. 그들은 애초 미국이 전쟁을 시작하며 내건, 전쟁이 이라크에 민주주의와 부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주장에 기꺼이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이전 정권처럼 행동한다”고 모하메드는 불평했다. “그들은 별 이유도 없이 가택을 수색하고 가족 구성원들에게 보여야 할 존경심 역시 표시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수색활동 중에도 사람들을 죽인다. 며칠 전에도 그들은 강 건너 마을의 한 퇴역 준장을 사형시킨 다음, 그에게 제대로 된 매장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장군의 아들을 체포해 가족이 보는 앞에서 쇠사슬로 묶고는 짐승처럼 끌고 갔다.” 맏아들 아부 오마르 역시 “미국인들은 이런 식으로 모든 이라크인들의 증오를 사고 있다”고 불평했다. 미국 관료들은 그들이 이라크 경찰을 모집하는 것은 이 나라의 안보와 미래를 준비하는 데 필수적인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부 모하메드의 가족들은 미국 관료들이 그 일을 하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반박한다. “미국 중앙정보부(CIA)는 공동묘지 근처에 사무소를 열고는 정보의 대가로 돈을 주곤 한다. 아무 이야기나 하고서 5달러를 달라고 하면 그들은 50달러를 주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을 불안감에 빠뜨린다. 누가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할지 모르지 않는가?” 미국기관이 정보를 수집하는 주목적은 이라크 전 지도자인 사담 후세인을 생포하거나 암살하는 것이다. 바그다드 서쪽과 북쪽의 넓은 지역을 포함하는 ‘수니 삼각지대’(이는 페쉬칸 지역까지 포함한다)는 계속 피해다니는 것으로 보이는 사담이 도피처로 쓸 가능성이 높다. 이곳의 많은 주민들은 사담과의 종교적 또는 지리적 연줄을 가지고 있고, 이전 정권에서 안보나 정보 관련 관료로 고용되곤 하였다. 나와 대화를 나눈 이 지역 주민은 하나같이 전 정권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들은 사담은 절대 복종을 강요하고 그의 가족의 안위에만 신경썼을 뿐 국민들의 복지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그들은 미군 주둔에 대한 반발심 때문인지 사담이 체포되지 않게 보호하고 싶다는 단호한 각오 역시 드러내 보였다. “만약 어느 날 사담이 우리 집을 피난처로 삼고 싶다고 문을 두드리면 나는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절대로 그를 신고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교사이자 지역의원인 아부 함단은 선언하듯 말했다. 나는 그에게 미국이 생사 여부에 관계없이 2500만달러를 건 사담의 몸값을 언급했다. “설사 1억달러라도 나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돈을 얻기 위해 손님을 배반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위엄을 가진 자라고 할 수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게릴라는 공격할 권리가 있다”
이런 선언이 얼마나 믿을 만한지 가늠할 기준은 없다. 사담의 두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는 모술에서 먼 친척에 의해 밀고되었고 둘 다 들이닥치는 미군들과의 총격전에서 사망했다. 그러나 이 학교 선생이나 다른 페쉬칸 사람들이 사담을 보호하겠노라고 거리낌 없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이런 상황은 쫓기는 사담 지지자들에게 어느 정도 안도감을 줄 만하다. 이 지역의 오래된 이라크 대공대대 기지에 자리잡은 미군들은 페쉬칸 사람들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지역의회와 만나 발전 계획을 논의한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은 그들의 새로운 통치자에 대해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2~3주 전 미군은 한 개발업자에게 학교를 신축할 자금을 건넸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 학교는 아직 어디에도 없고 우리는 계약서조차 본 적이 없다”며 지역의원인 아부 함단이 불평했다. 그는 이 일에 부패가 관련돼 있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인들은 자신이 뇌물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페쉬칸에 머무는 하루 동안 미국에 대한 칭찬 한마디도 듣기 어려울 정도로 만나는 사람마다 잇따라 미국에 대한 비판을 퍼부었다. 수줍게 서 있는 쌍둥이 딸 둘을 옆에 두고 아부 오마르는 미군의 행동이 그들이 이라크에서 목적으로 내세운 민주주의, 해방,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고 단언했다. “우리는 그들을 믿지 않는다. 그들의 태도는 전쟁 전에 말한 것과 반대다.”
어떤 이들은 미군이 주둔을 계속한다면 갈등은 더욱 증폭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들은 이곳을 떠날 날을 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점령군이 되었다”고 아부 오마르는 단언했다. “나는 그들은 외곽 지역으로 이동해 우리의 국경을 수비했으면 한다. 그들이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모든 이라크인들이 총을 들고 일어날 것이다.” “미군을 대체할 타국의 군인들은 어떤가. 예를 들어 이웃 요르단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에서 온 군인 혹은 이라크 안정화 사업에 기여하도록 요청받은 한국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 온 병력 말이다”라고 나는 물어봤다. “결코 그럴 수 없다”고 아부 모하메드는 힘을 주어 말했다. “이라크군이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다.” 나는 이 ‘에덴동산’에서의 하루를 마감하며 지역 사람들이 정말로 미군정의 임무에 극렬히 반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이라크에서 막 싹트는 민주주의로 인해 난생처음 누리는 발언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인지 혼돈되었다. 이 사람들은 지난 30년 동안 사담 후세인과 그의 바트당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견뎌오지 않았는가. 우리가 만난 모든 이들은 사담 무리들의 학대에 대해 씁쓸한 기억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미국이 임명한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가 제대로 굴러가는 정부를 수립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역시 마찬가지로 냉소적이고 비관적이었다. “농가에서 사용하는 주요 공산품 가격이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고 아부 오마르는 말했다. 그는 몇년 전 대학을 졸업했지만 다른 직업을 구하지 못해 몇년째 농장에서 아버지와 일하고 있다. “전쟁 전에 시멘트가 1t당 15달러였지만 지금은 70달러다. 이전에 5만디나르이던 종자는 이제 15만디나르다.”
과도통치위원회를 향한 냉소
“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주적·민주적 이라크인의 정부가 수립된다면 이것과 다른 문제들 역시 제대로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나는 되물었다. “우리는 통치위원회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지난 수십년간 망명 생활을 했다. 그들이 정녕 우리들의 문제를 이해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가 아부 모하메드의 답이었다. 이라크를 통치하는 미군정 당국과 그들이 임명한 과도통치위원회는 페쉬칸 같은 마을의 사람들이 그들을 에덴동산의 뱀 정도로 여긴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 당국자들은 참을성 없는 국제언론, 특히 반미적인 위성채널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아>야말로 에덴동산의 뱀과 같은 존재라고 비난한다. 사실 우리가 방문한 모든 집에 위성 텔레비전이 있고 그 프로그램들을 잘 볼 수 있도록 발전기 역시 구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국제언론을 비난하더라도 정부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느냐의 판단은 페쉬칸 사람들의 몫이다. 아직까지 정부는 그 판단을 하는 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 것 같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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