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02월04일 제49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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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그 펀드가 어때서…”

‘대통령 사돈 대박심리’논란 속 청와대·금감원 종용 거절…“덕볼 생각 없지만 역차별도 말라”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청와대는 괴롭다. 다른 일도 많은 터에 노무현 대통령의 사돈 민경찬(44)씨의 펀드 모집 사건이 불거졌으며, 수습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은 민씨가 두달 만에 650억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펀드 명목으로 끌어모은 일이 언론에 불거지면서 비롯됐다. 짧은 기간에 거금이 모인 이면에 ‘대통령의 사돈이 나섰으니까…’라는 ‘대박 기대심리’가 작용했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또한 아직 그 단계까지 나아가진 않았다고 하지만, ‘민경찬 펀드’가 실제 투자에 나설 경우 투자의 ‘뒷배경’이 의혹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충분하다.


△ 거액의 투자펀드 모집으로 눈총을 받고 있는 민경찬씨. 청와대와 금융감독원은 그의 ‘역차별’ 반발로 곤혹스런 처지에 빠졌다.(시사저널)

“없었던 일로 돌리자”제의 뿌리쳐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1월 중에 최초 첩보를 입수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친인척 관리 차원에서 늘 정보를 수집하던 중 이상한 소문이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민정수석실은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민정수석실에 수사권은 없는 탓에 일단 외곽을 빙빙 돌며 탐문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차에 일부 언론에서 이 사건을 취재하고 있다는 첩보가 추가로 입수됐다.

민정수석실은 서둘러 민씨에게 ‘없었던 일로 돌리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들에게 돈을 되돌려주고 펀드를 해체하는 방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민씨는 말을 듣지 않았다. 민씨는 “대통령의 사돈이라는 이유로 대통령 취임 뒤 1년 동안 아무 사업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며 ‘역차별’은 부당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에 불거져 정치쟁점화하자 청와대는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의뢰했다. 주무기관의 정식 조사를 통해 합법인지 불법인지를 가려, 불법이면 의법처리하는 게 정도라고 청와대는 판단했다.

금융감독원은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대통령의 친인척이 관련된 투자라서 조사를 벌이는 것이라면 수사권이 있는 경찰이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자금의 모집 행위는 전국에 수백건이 될 텐데, 위법이라는 단서도 없이 수사권도 없는 금감원이 나서 조사를 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금감원의 1차 정황 파악 결과 ‘민경찬 펀드’(이름 시드먼)는 상업등기는 물론 사업자등록조차 되지 않은 상태로 밝혀졌다. 법적 요건을 갖추기 이전 단계의, 극히 초보적 수준에서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신해용 금감원 자산운용감독국장은 1월30일 민씨를 서울 모처에서 만나 전모를 청취했다. 그러나 민씨는 “불법 행위는 일절 한 바 없다”고 주장했을 뿐,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투자자와의 계약서 등 서류는 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 민경찬씨가 운영했던 김포 푸른솔 병원. 적자경영끝에 대출받은 돈을 갚지 못하고 가압류 당해 현재 병원건물은 경매절차에 들어가 있다.(박승화 기자)

금감원의 설명에 따르면 ‘민경찬 펀드’의 합법·불법은 이렇게 따져볼 수 있다. 우선 투자자 수가 50명 이상이고,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에 비례해 주식을 나눠줬다면 위법이 된다. 이런 자금모집은 등록한 뮤추얼펀드(공모펀드)만이 할 수 있는데, 공모 뮤추얼펀드는 투신사나 자산운용사만 설립할 수 있다. 민씨가 투자자들에게 돈을 받으면서 원금을 보장한다거나 정해진 이익을 보장한다고 했다면 이 또한 불법인 유사수신 행위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해 민씨는 금감원 조사에서 구체적인 계약서 없이 47명의 개인한테서 자금을 모았다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금까지 조사로는 법을 어긴 근거를 찾지 못했다”며 “추가조사를 할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자료조사를 거쳐 위법행위를 찾아내는 것이 목표라면 수사기관에 맡기라는 얘기다.

청와대 말이 안 먹힌다

청와대는 금감원 조사 과정에서도 민씨에게 ‘없었던 일로…’ 방안을 수용하라고 거듭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씨는 “내가 왜 청와대 관리대상이 되어야 하느냐. 간섭하지 마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이에 청와대는 “당신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문에 나고 문제가 되니까 관리대상이 아니냐”라고 되받았지만 민씨의 기세를 꺾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말 답답하다”며 벙어리 냉가슴 앓는 심경을 비쳤다.

사건에 청와대와 민씨간의 힘겨루기 성격이 담긴 것은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달라진 권력문화를 반영하는 측면도 있는 듯하다. 과거 정권에선 권력기관에 대통령의 친인척 또는 가족의 비호세력이 포진하는 바람에, 친인척이 한껏 발호하다가 ‘사후에’ 문제가 되면서 한순간에 철퇴를 맞는 일이 종종 빚어졌다. 5공화국의 전경환씨, 6공화국의 박철언씨, 김영삼 정권의 김현철씨,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 비리가 모두 그런 맥락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 적어도 현재까지는 정권 핵심부에 ‘민경찬 비호세력’이 발호하고 있다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민씨가 “덕 볼 생각은 없다. 그러나 역차별은 받을 수 없다”며 버티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청와대가 민씨를 쉽게 ‘주저앉히지 못하는’ 사정도 나름의 배경이 있는 것 같다. 참여정부에서는 장관도 청와대 말을 듣지 않는 일이 수두룩했다. 새만금 간척공사를 중단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자 김영진 농림부 장관이 무단으로 근무지를 이탈해 토굴 속에 들어가 기도를 한다든가,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이 청와대의 제지를 뿌리치고 “지금이 총선 준비에 적기”라며 자리를 내던진 일들이 있었다. 장관도 그러한데, 일개 자연인인 민씨가 청와대 말이라고 껌뻑 죽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어쨌든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2월2일 “민씨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으나 강도 높게 조사할 계획”이라며 “본인은 적법하다고 주장하지만, 위법의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하고 있다”고 엄정 대응 의지를 밝혔다. 청와대의 공언대로 불법 혐의가 확보되면 문제는 차라리 단순해진다. 그러나 투자자와의 약정서 등 온갖 물증을 다 조사해도 딱히 불법성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청와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 같다. 세간의 의혹은 갈수록 증폭될 터인데, 민씨가 계속 버틸 경우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