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추적 ] 2003년07월17일 제468호 

김운용, 이번엔 왜 맞을까

각종 비리 의혹에도 침묵하던 체육계…이번 사태로 김 위원과 유치위·대한체육회와의 갈등 불거져

김운용(72)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처세의 달인’으로 통한다. 30여년 동안 국내 체육계의 수장으로 활동하면서 각종 추문과 비리 의혹으로 숱한 위기를 맞았지만, 그 때마다 절묘한 처신으로 위기를 잘 넘겼기 때문이다.

유치위원장 안 되자 ‘몽니’?


사진/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7월9일 국회에서 열린 ‘2010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이용호 기자)


하지만 이번 평창겨울올림픽 파동은 그 양상이 다르다. 김 위원은 개인 비리가 아닌 ‘매국’ 혐의를 받아 국민들로부터 전례 없이 강한 분노를 사고 있다. 특히 위기 때마다 의도적인 침묵과 교묘한 변론으로 김 위원의 ‘원군’ 구실을 했던 일부 언론들까지 가세해 김 위원의 입지를 흔들고 있다.

지난 7월9일 국회에서 열린 평창겨울올림픽유치 특별위원회는 김 위원이 처한 상황이 예사롭지 않음을 잘 보여줬다. 특위의 한나라당 의원은 물론 김 위원과 같은 민주당의 함승희 의원조차도 ‘파렴치한 짓’, ‘매국적 행동’이라는 말을 써가며 김 위원을 몰아붙였다. 유치위원회와 체육계 인사들의 태도는 더욱 차가웠다. 김 위원의 혐의를 폭로한 한나라당 김용학 의원에게 단서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유치위원회 인사들은 끝장을 보겠다는 태도였다. 공로명 유치위 위원장은 구체적 사례를 조목조목 들이대며 김 위원의 혐의를 고발했고, 김진선 강원지사도 “김 위원이 아들 정훈씨와 관련 있는 <스포츠인테른>의 구독을 강요했다”는 ‘추문’까지 공개하며 김 위원을 공격했다. 김 위원의 후임자인 이연택 대한체육회장도 한나라당 의원들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변하며 김 위원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들이 특위에서 내세운 증거는 모두 ‘간접증거’였다. 만약 법정이었다면 증거 능력을 인정받기 어려운 ‘일방적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실제로 공 위원장이 언급한 ‘평창을 찍지 말라’(Don’t vote for Pyeongchang)는 말은, 최만립(69) 유치위 부위원장이 다른 나라 IOC 위원한테서 들은 말을 전해 들은 것일 뿐 공 위원장이 직접 듣지는 않았다. 또 녹취 등의 증거물도 제시하지 못했다. ‘<스포츠인테른> 구독 강요’도 같은 자리에서 이 말을 함께 들었다는 공 위원장과 김 지사의 증언 내용이 달라 김 위원의 완벽한 ‘직권남용죄’를 입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유치위가 김 위원의 유치 방해를 주장하고 나선 배경은 뭘까. 과거 김 위원의 개인비리가 명백히 드러났을 때(표 참조)는 침묵으로 일관했던 체육계 고위 인사들이 간접증거만으로 일제히 ‘김 위원 죽이기’에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체육계에서는 유치위와 김 위원간의 갈등설이 나돌고 있다. 김 위원이 애초 유치위원장 자리를 요구했으나, 김진선 지사 등이 이를 거부하고 공 위원장을 위촉하자 김 위원의 ‘몽니’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유치위가 지난 4월 김 위원의 IOC부위원장 출마설이 나돌았을 때 이를 만류하는 과정에서 김 위원과의 갈등은 더욱 증폭됐다. 국내 한 체육단체 임원은 “김 위원과 함께 부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던 예르하르 하이베르그 위원(노르웨이)이 유치위쪽에 ‘김 위원의 출마가 겨울올림픽 유치에 불리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유치위가 이를 근거로 출마를 만류했으나 김 위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유치위는 ‘만약 평창 유치가 실패하면 김 위원이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고 경고했는데 결국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진/ 7월2일 체코 프라하 시민회관에서 열린 제115차 IOC총회 개회식. 유치위가 김 위원의 유치 방해를 주장하고 나선 배경은 뭘까.(연합뉴스)

언론과 김 위원의 끈끈한 관계

체육계 일각에서는 김 위원과 이연택 회장 세력간의 알력을 보다 근본적인 배경으로 보고 있다. 김 위원이 지난해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이 회장을 떨어뜨리고 자신의 측근을 당선시키기 위해 힘을 썼는데, 이 과정에서 양 진영간에 싹튼 갈등이 ‘프라하 파동’을 낳았다는 설명이다. 태권도협회의 한 임원은 “두 세력간의 갈등은 지난해 대선 때 극명하게 드러났고 노무현 정부 출범 뒤 더욱 증폭됐다”고 말했다. 이 회장 체제의 대한체육회 집행부 중 상당수가 대선 때 이회창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는데, 민주당 고문이었던 김 위원이 대선 승리 후 체육계 구조개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들에 대한 물갈이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올해 초 인수위원회가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협의회 통합 등을 뼈대로 하는 구조개혁안을 마련하자, 자신의 지지세력을 KOC와 대한체육회에 진출시켜 국내 체육계를 재장악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프라하 파동으로 이 회장 세력의 역공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진/ 겨울올림픽 유치 실패로 김운용 위원은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김 위원의 ‘원군’ 구실을 했던 일부 언론들까지 가세해 김 위원의 입지를 흔들고 있다.(한겨레 황석주 기자)


이번 사태에서 일부 언론들이 보여준 태도도 체육계와 언론계의 입길에 올랐다. 김 위원이 숱한 개인비리 혐의에도 30여년간 국내 체육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일부 언론과의 끈끈한 유착관계가 큰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김 위원의 개인비리가 불거져나올 때마다 의도적 침묵이나 교묘한 변론으로 그를 비호했다. ‘김 위원이 개인적으로 흠이 있지만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게 그 논리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이들 언론이 ‘김 위원 죽이기’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진종인 기자는 “강원지역 언론이 이번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몇몇 중앙일간지들이 이렇게 크게 다루는 것을 보고 솔직히 좀 놀랐다”고 말했다.

“진작에 비리를 단죄했다면…”

김 위원은 ‘김운용 장학생’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일부 체육기자들과 유대관계가 깊었다. 특히 대학동창인 한 언론사주와는 각별한 친분을 유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만립 유치위 부위원장은 “1993년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앞두고 평소 친분이 있던 한 언론사주가 만나자고 해서 약속 장소에 갔더니 김 위원과 그 언론사주가 나와 있더라. 당시 체육회 내에서는 내 지지표가 많아 내가 당선될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그 언론사주가 ‘다음번에는 당신이 될 테니까 이번에는 양보하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래서 차기 약속을 보장받고 출마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위원은 이후 10년 가까이 대한체육회를 장악하면서 최 부위원장과 사사건건 대립했다.

이번 프라하 파동은 명백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진실을 가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김운용 위원은 이번에도 위기를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 김용학 의원은 지난 특위에서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그동안 김 위원의 개인비리가 많이 터져 나왔지만, 그때마다 그가 국제 스포츠계 거물이라는 이유로 그냥 덮어뒀다. 만약 진작에 그의 비리를 단죄했다면 이번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김운용 위원 약력

1931년 3월19일 대구 출생
민주당 국회의원, IOC 부위원장,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국기원장
병역 영관 제대
경동고, 연세대 정외과 졸업, 미국 메리빌대학 법학박사
1961년 국방부 장관 보좌관, 내각수반 의전비서관
1963년 주미대사관 참사관
1965년 주유엔대표부 참사관
1967년 주영대사관 참사관
1968∼1974년 청와대 경호실 보좌관
1971∼2001년 대한태권도협회장
1972∼2001년 국기원장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1986년∼ IOC 위원
1993년 제31대 대한체육회장 선출(2002년 사퇴)
1996년∼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심사위원
1999년 국민회의 신당창당 발기인
1999∼2000년 새천년민주신당 창당준비위원회 부위원장
2000년∼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2000년 5월∼ 제16대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전국구)

체육훈장 청룡장(1986), 황조근정훈장, 세계체육지도자상(1989), 유럽 스포츠채널 유로스포츠 스포츠스타상(2000. 10)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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