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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와 처세술, 화려했다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은 ‘좌초’ 위기를 맞을 때마다 두둑한 배짱과 절묘한 처신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그의 첫 위기는 1999년에 찾아왔다. 미국 솔트레이크 겨울올림픽위원회가 올림픽 유치를 위해 IOC 위원들에게 뇌물을 뿌린 사건에 김 위원이 연루된 것이다. 여기에 김 위원의 아들 정훈씨가 솔트레이크올림픽위원회의 주선으로 미국 키스톤 커뮤니케이션사에 취직했고, 정훈씨의 봉급을 유치위가 대납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IOC는 ‘반사마란치’ 진영의 위원들이 중심이 돼 ‘친사마란치’계로 분류되던 김 위원 등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으나, 김 위원은 차기 IOC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강공으로 맞섰다. 또 국내에서 약화된 입지를 만회하기 위해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는 절묘한 처세술을 발휘했다. 결국 IOC는 6명의 축출을 결정했지만 김 위원에 대해서는 경고를 내리는 데 그쳤고, 국내 체육계에서도 그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사그라졌다. 지난 2001년 국내에서 발생한 태권도 국가대표 선발을 둘러싼 비리 사건에서도 김 위원은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당시 김 위원의 한 측근이 돈을 받은 혐의가 불거졌으나 김 위원은 이 인사를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차장으로 영입해 태권도인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김 위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태권도 개혁파 인사들에 대한 징계를 운운하는 등 정면 대결로 맞섰다. 김 위원은 태권도 개혁파들의 거듭된 시위와 개혁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하다 지난 2001년 말 태권도협회장과 국기원장을 사임했고, 대한체육회장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슬그머니 노무현 후보쪽에 줄을 섰고, 노 정권 출범 뒤에는 강화된 입지를 활용해 국내 체육계 재집권을 시도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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