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독자마당 > 노 땡큐! 목록 > 내용   2006년02월09일 제596호
남성 테러클럽 | 권보드래

▣ 권보드래/ 서울대 강사·국문학과


만약 그대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테러를 당할 수 있다면? 제국주의적인 미국인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미국인이라서 테러 대상이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인 남성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남성이라서 테러 대상이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에 산다면? “서울 ○○동에서 윤아무개씨가 피살당한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새벽 2시경 귀가하던 윤씨는 M16­A2로 무장한 괴한들에 의해 습격을 당했다고 합니다. 예의 남성 테러조직의 범행으로 추정됩니다. …”라거나 “부산 ○○동 술집에서 폭탄이 터져 13명이 사망하고 22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망자는 모두 남성으로서, 사건 직후 ‘반군 6’에서는 자신들의 범행임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반군 6’은 최근 10년 사이 결성된 남성 테러조직 중 하나이며….” 이런 소식이 TV 뉴스에 심심찮게 보도되기 시작한다면?

‘발바리’의 공포…


△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저런, 농담만은 아니다. 암컷 호모사피엔스 중 절대 다수가 이런 테러의 공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밤늦은 귀갓길, 가로등 없는 50m 남짓의 거리를 지나노라면 온몸이 바짝 긴장되곤 한다. ‘어이, 왜 이래’ 하면서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긴장은 거의 본능적이다. 택시를 타거나 인적 드문 화장실에 가거나 낯선 남자와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 불쾌한 긴장감에 압도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매일매일 느끼는 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공포 중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겪는 몫은 아마 절반쯤? ‘발바리’에다 ‘용인 발바리’까지 출몰하는 세상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대남성 테러조직이 출현하더라도 꼭 경악할 필요는 없단 말이다. 수천 년간 테러에 시달려온 여성 사이에 그런 반작용이 없었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페미니스트로 자처하거나 그렇게 불린 적은 없다. 오히려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는 늘 ‘경계, 경계 경보!’라는 식이었다. “전 아니거든요.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하는 변명투를 섞어서. 명절 때마다 여성이 겪어야 하는 불평등에 대한 항의가 연래에 무성했지만, 큰집 큰딸에 일 많은 집 맏며느리면서도 한 번도 그런 항의에 공감하지 않았다. 부엌 바닥에 퍼질러 앉아 파 다듬는 것도 좋은데요, 왜? 오직 식(食)을 위해 분투해야 하는 그런 ‘동물적’인 생활이 삶의 근거에 눈감을 수 없게 만드는데요, 왜요? 오며 가며 귀향길에만 이틀이 걸릴 때도 있었고, 두 평도 안 되는 좁은 부엌 바닥에 며느리 여럿이 뒤엉켜 자야 할 때도 있었지만, 다 재미있었다. 부엌에서의 연대는 또 얼마나 끈끈한가.

여자라서 분노를 느낄 때가 없었을 리 없다. 면밀한 인정과 보상의 체계로 조직돼 있는 가족을 벗어나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정색을 하고 항의하고 싶진 않았다. 여성의 항의는 으레 귀찮거나 피곤한 걸로 치부돼버리니까. 여성 정책이란 어딘지 봐주지 뭐, 하는 냄새가 나니까. 귀찮고 피곤한 존재가 아니라 위협적이고 공포스런 존재가 될 수 있었다면 나도 분노를 다르게 표출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으려나? 차라리 남성 테러조직이라도 출현한다면 거기를 동경했으려나?

이런 배짱 갖곤 멀었어

공포로 군림하거나 생산의 힘을 발휘하거나, 둘 중 무엇도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페미니즘 앞에서는 늘 조마조마했다. 관심이 없을 리 없고, 페미니즘의 성과는 담뿍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그랬다. 페미니즘은 어디까지, 어떻게 갈 수 있으려나? 명절의 ‘며느리 대반란’이 영악한 이기주의를, 대가족 대신 핵가족을 택하는 자가당착식 결론을 넘어설 수 있으려나? 반가족주의는 정말 가족 너머를 발견할 수 있으려나? 저항은 언제 생산의 힘을 낳는가? 차라리 파괴는, 남성 테러클럽식 폭발력은 어떨까? 설 연휴 여파로 아픈 허리를 두들기다가 잠깐 공상에 잠기지만, 남편과 아들 얼굴을 떠올리곤 화들짝 놀라고 만다. 어이구, 마누라 있고 딸 있는 남자들은 잘도 파렴치한 짓을 해대더구만. 이런 배짱 갖곤 멀었어, 정말 멀었어. 심장 단련 삼아 소문 높았던 <미저리>나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