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바이오시스템학과
소아과 의사이자 뛰어난 의학저술가이기도 한 로버트 멘델존은 현대의학의 애정 어린 비판자로 유명하다.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그는 치명적이기까지 한 의료계의 관행을 고발하고, 과잉 진료와 의사의 무능, 그리고 부당행위에 대한 고백을 통해 감춰진 의료계의 어두운 측면을 폭로해 일반인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정직한 의사라면 하지 않는 말
그가 쓴 <여자들이 의사에게 어떻게 속고 있나>(문예출판사, 2003)라는 책에선 의사들이 쓰는 말들 중에서 ‘절대 속아선 안 될 위험한 말’들을 제목으로 뽑아놓고 있는데, 그 리스트를 보면 우리가 병원에서 흔히 듣는 말들이라 섬뜩하기까지 하다.
예를 들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에게 의사들은 종종 “최대한 편안하게 해드릴게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대의학에서 ‘편안함’이란 ‘순종’이라는 단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의사가 환자에게 편안하게 해주겠다는 것은 ‘이제부터 의사가 하라는 대로 먹고 주사 맞고 수술도 받아야 하니 가만히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라는 얘기다.
자신이 내린 진단이나 치료법에 확신이 없는 의사일수록 의사의 말에 의문을 제기하면 학교 졸업장 같은 권위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환자가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만족스럽게 대답하지 못하거나, 환자가 다른 곳에서 듣고 온 치료법에 대해 문의를 하면 “당신이 의사요?”라고 대뜸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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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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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을 드시면 한결 나아질 겁니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한결 나아지는 것은 제약회사의 재정이며, “간단한 테스트 몇 가지만 해봅시다”라고 하지만 1년에 행해지는 엑스레이 촬영을 3분의 1만 줄여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암으로부터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멘델존은 의사 생활을 오래 할수록 ‘내가 환자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며 환자들에게 헛된 희망을 안겨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제게 모든 걸 맡겨두면 됩니다”라든가, “저한테 오셔서 다행입니다” 같은 말은 정직한 의사라면 절대 해선 안 될 말들이다.
요즘 과학계에선 황우석 스캔들의 후폭풍으로 불안해하고 있다. 국내 연구진들이 제출한 논문이 해외 저널에서 부당한 취급을 받진 않을지, 생명과학에 대한 정부 지원이 줄어들진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걱정해야 할 후폭풍은 황우석 교수로 인해 한때나마 헛된 희망을 품었던 난치병 환자들을 우리가 어떻게 다시 보듬어안을 것이냐 하는 문제다.
황우석 교수는 ‘난치병 환자들을 반드시 살려내겠다’는 다짐으로 대중 강연을 시작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면 청중은 영락없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고 눈물을 흘린다. 지난해 세계 줄기세포허브 개소식 즈음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난치병을 고칠 수 있는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며 줄기세포 허브에 환자로 등록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장남 김홍일 의원도 환자로 등록하면 치료가 가능하다고 장담했다고 한다.
난치병 환자들의 상처는 오래 가리
설령 황 교수의 연구결과가 사실이라고 해도, 이제 겨우 배양된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로 난치병을 치료하려면 1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지킬 수 없는 약속으로 힘들어하는 환자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는 행위는 그 자체로 ‘범죄’다. 해외 저널이 한국 연구진들의 연구결과를 의심하는 일은 그리 오래가지 않겠지만, 난치병 환자들이 입은 상처는 치명적일 만큼 오래갈 것이다.
이로 인해 병을 이겨내고 삶을 지탱하려는 의지가 꺾이거나, 현실 부정과 집단적 광기의 형태로 표출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각별한 배려를 기울여야 할 때다. 진작부터 시작됐어야 할, 난치병 치료에 대한 정부의 과감한 연구비 지원과 건강보험 혜택 등이 그들에겐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로버트 멘델존은 현대의학이 위험한 이유는 한 줄 희망만으로 살아가는 환자에게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때론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시술을 적용해 ‘인간 모르모트’로 이용하는 데 있다고 했다. 황 교수가 일찍 새겨들었으면 좋았을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