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군 전역에서 펼쳐지는 친환경 농업의 현장… 철저한 학습과 인증과정으로 8년새 자리잡아
양평= 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지난 3월25일,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화전2리. 나지막한 산중턱을 넘어서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농촌마을이 눈앞에 나타났다. 136가구가 사는 화전2리는 마을 이름이 말해주듯 천수답에 가까운 비탈논이 대부분이다.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모내기철을 앞두고 트랙터 한대가 마을 앞 논을 시커멓게 갈아엎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지역과 달리 논두렁마다 곳곳에 작은 비닐하우스 막사가 세워져 있다. 농사철에 논오리를 넣어두는 곳이다. 화전리는 8년째 오리농법으로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마을이다.

△ 양평군 용문면 금곡리에 있는 벌말농원 비닐하우스에서 환경농법으로 채소가 재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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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둥오리가 기른 비탈논의 ‘오리농쌀’
이 마을 농가는, 비록 비탈논이지만 너른 평야지대에서 농사짓는 농민들보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쌀 개방이니 자유무역협정(FTA)이니 해서 농촌이 갈수록 팍팍해지는데, 우리 마을은 그래도 처지가 나은 편이에요. 일반미는 80kg들이 한 가마에 16만∼18만원 정도 받지만 우리 마을에서 생산한 오리농쌀은 24만원 정도 받아요.” 마을 이장 홍석기(53)씨의 말이다. 화전리의 쌀농가는 100여 가구인데 이 중 49가구가 오리농법으로 29ha의 논농사를 짓고 있다. 이렇게 오리농법으로 지은 쌀은 민간기구인 ‘양평환경농업-21’에서 수매한다. 정부 양곡 수매량은 총 경지면적에 따라 수매량이 제한되지만 화전리는 절반 이상을 오리농법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그만큼 일반쌀 생산량이 적어 일반미까지도 전량 수매되는 ‘잘나가는’ 농촌이다.
오리농법을 도입하면 소출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화전2리의 경우 10a당 406kg을 생산한다. 일반 농법에 견줘 결코 적지 않은 생산량이다. 홍씨는 “날씨 변화로 소출이 떨어질 수 있지만 논에 오리를 풀어 농사짓는다고 해서 큰 차이가 생기는 건 아니다”며 “오리농법을 도입한 뒤 마을 노인들도 농사짓기가 더 편해졌다”고 말했다. 농약·제초제·화학비료를 안 쓰고도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품이 덜 들고, 힘이 부치는 노인들도 오리농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전2리는 농가 평균나이 60살, 경지면적 1천평 미만의 소농이 대부분인데, 대규모 농가뿐 아니라 상당수 소농도 오리농쌀을 생산하고 있다.
오리농법은 모내기를 끝낸 뒤 6월 초순부터 벼 이삭이 팰 때까지 어린 야생 청둥오리를 논에 풀어넣는 농법이다. 논오리들이 논바닥을 휘젓고 다니면서 잡초를 뽑아먹거나 병충해를 잡아먹고, 구정물을 일으켜 광합성 작용을 억제함으로써 잡초가 자라는 것을 막아준다. 또 오리가 논바닥을 쏘다니는 동안 토양도 숨을 쉬게 되고 오리의 배설물은 벼 생육에 좋은 양분이 된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안 쓰고도 이런 식으로 병충해에 강한 친환경 쌀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농민은 아침, 저녁으로 오리한테 사료를 적당히 주고 물관리만 잘해주면 된다. 홍씨는 “오리농법이 다른 지역에도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오리농쌀 공급이 늘어 가격도 떨어질 것”이라며 “그래서 우리 마을은 이미 유기농으로 전환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오리농법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나면 심사를 거쳐 ‘100% 유기농’으로 전환할 수 있는데, 유기농으로 인정받으면 쌀 한 가마당 판매가격도 더 높게 받는다.
농한기가 되면 화전리 농민들은 누구나 양평군에서 실시하는 환경농업 교육을 두세 차례 받아야 한다. 양평군은 “농민들이 공부하지 않고는 오리농법이 성공할 수 없다”며 환경농업대학까지 세웠다. 홍씨는 “무농약 인증을 받아서 시장에 더 높은 가격으로 자기 농산물을 팔려면 누구든지 환경농업 기술교육을 꾸준해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양평읍내에 있는 친환경 농업 교육관은 교육 일정이 매일 꽉 차 있다. 양평군청 이성계(환경농업담당)씨는 “우리 군의 환경농업 농가는 저마다 자기 땅의 토양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어떤 유기질 비료를 얼마나 몇번이나 뿌려야 할지에 대한 노하우를 나름대로 터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 양평군 용문면에서 모내기철을 앞두고 농민이 객토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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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 유기질 비료공급에 250억원 책정
양평군이 대대적으로 보급하고 있는 친환경 쌀농업은 1997년부터 본격화됐다. 양수리를 거점으로 한 젊은 농민 몇명이 ‘팔당상수원유기농본부’를 구성해 친환경 농업에 나선 게 ‘친환경 농업 양평모델’의 원조였다. 양평군은 특히 농가 또는 마을 단위로 해오던 친환경 농업에서 탈피해 지난 98년 군 전역을 환경농업 지역으로 선포했다. 지금은 환경농업 선도마을 36개, 선도농가 2417가구가 수입개방 파고에 직면한 농촌 들녘에서 ‘새 활로’를 열어가고 있다. 농가로는 양평군 전체 농가 9700가구 중 1520여 농가가 친환경 농업을 하고 있고, 면적으로는 논과 밭을 합쳐 전체 농경지 1만ha 가운데 1500ha에서 환경농산물이 생산되고 있다. 쌀의 경우 올해 777ha(오리농 291ha 및 왕우렁이농법 486ha·왕우렁이 농법은 열대지방의 우렁이를 수입해와 논에 풀어놓는 것으로 오리농법과 유사함)에서 친환경 쌀을 생산해낼 예정이다. 오리보다 왕우렁이농법이 더 많은 건 조류독감 파동 탓이다.
양평에서 생산되는 환경농산물에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 민간기구인 ‘양평환경농업-21’ 등이 엄밀한 심사를 거쳐 부여하는 ‘친환경 농산물 인증마크’가 붙어 있다. 나중에 농약이 미량이라도 검출되면 인증을 즉시 취소하고 유통도 막을 정도로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인증은 까다롭다. 특히 양평군에서 농약·제초제·화학비료를 사용하는 농민은 이제 설 땅이 없다. 양평군청 이성계씨는 “군 면적 대부분이 팔당호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공단 조성도 불가능하고 우사나 돈사를 짓는 것도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에 친환경 농업 외에 대안이 없었다”며 “지금은 논두렁 밭두렁에 제초제를 뿌리는 농민이 거의 없고, 농약을 뿌리면 마을 주민들한테 즉각 지탄받거나 ‘저 집은 제초제 뿌리는 집’으로 낙인찍힐 정도로 친환경 농업 분위기가 이미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양평군은 제초제로 인한 기형아 출산을 경고하는 포스터를 마을마다 붙이기도 했다.
양평군은 재정자립도 19%의 빈약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환경농업에 군 예산의 20%가량을 쓰고 있다. 올해는 유기질 비료 공급 등에 25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제조체 사용을 줄이기 위해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개별 농가에 예취기 3500여대를 나눠주기도 했다. 군의 재정적·행정적 지원과 농가의 노력이 한데 어우러져 환경농업 모범사례로 꼽히는 ‘양평모델’이 탄생한 것이다.
용문면 금곡리에서 비닐하우스 시설재배로 상추 등을 생산하는 정광용(39·벌말농원)씨는 양평모델의 본보기로 꼽히는 농민이다. 정씨는 노지에서 채소를 재배하다 5년전부터 집 주변 3200여평에 대규모 비닐하우스 시설을 갖춰 상추·치커리·케일 같은 작물을 환경농법으로 재배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아주머니 서너명이 상추를 한창 포장하고 있었다. 벌말농원 글자가 새겨진 포장박스에는 ‘무농약 환경농산물’ 인증마크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여기서 생산되는, 화학비료나 농약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상추의 출하가격은 1관(4kg)에 8천원 이상이다. 시장에서 팔리는 A급 일반 상추(1관에 약 4천원)보다 두배 비싸다. 정씨는 “5년 전에는 환경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의 부족으로 가격을 제대로 못 받아 인건비도 못 건졌다”며 “지금은 환경농산물이 점점 보편화되고 많은 소비자들이 찾고 있다. 이제 환경농업을 하지 않으면 농산물 판로 개척도 어렵다”고 말했다.
월 매출 500만원… 수입의 위협은 여전
벌말농원에서 하루 생산되는 친환경 채소는 200여kg으로, 인건비·재료비 다 빼고 하루 수입은 15만∼20만원에 이른다. 과거에 노지 재배할 때는 연간 수익이 400만∼500만원이었는데 환경농업으로 바꾼 뒤에는 한달 매출만 해도 500만원을 웃돈다. 그러나 걱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정씨는 “수입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와 시장에서 채소값이 떨어지면 환경농산물도 값이 함께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씨는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을 통해 수확량이 많고 품질도 더 나은 채소를 생산하는 데 애쓰고 있다. “사실 농업 분야 학자들도 우리 같은 현장의 농민들한테서 많이 배워요. 지금은 병충해가 많이 생기는 시기라서 병해충 퇴치방법을 나름대로 연구하고 있어요.” 그의 비닐하우스 단지에는 퇴비장이 따로 설치돼 있다. 나무 껍질과 돼지 분뇨 등을 섞은 뒤 묵혀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정씨 스스로 친환경 퇴비를 만들어 채소밭에 뿌리고 있는 것이다. “일반 거름을 사서 뿌리면 땅을 버리기 십상이죠. 퇴비도 직접 만들어야 하고, 요즘 환경농업 하려면 농민이 종합박사가 돼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