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특집2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3월31일 제503호
참여정부도 쭉정이만 키운다

정부의 10년 대책에 싸늘한 농민의 반응… 비현실적인 전업농 육성과 턱없이 부족한 지원금 규모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참여정부의 농업정책은 농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대답은 매우 부정적이다. 농민들은 참여정부가 마련한 농업대책에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2월23일 농업·농촌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6ha 수준의 전업농 7만호를 육성하고, 직접지불제도를 확대해 쌀농가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한편, 119조원을 농촌에 쏟아부어 농촌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10년 동안 농업·농촌종합대책을 차질 없이 수행해, 살고 싶고 가고 싶은 농촌을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 지난 1994년 발효된 우루과이라운드는 한국 농업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해 여름 국회 앞에서 농민들이 우루과이라운드 비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박승화 기자)

6ha 논으로 미국의 100ha와 경쟁?

그러나 국내 최대 농민단체인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농의 이영수 정책부장은 “이번 대책은 지난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폭발하기 시작한 농민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급조된 것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전농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먼저 전업농 육성은 규모의 경제 효과를 노리는 정책인데, 전농은 이 대책이 규모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단언한다. 미국의 경우 한 농가당 보유 농토가 100ha가 넘는데, 6ha 수준의 국내 전업농이 미국과 어떻게 경쟁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부장은 “전업농 육성 정책은 오히려 국내 쌀농사를 몰락시키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농은 미국도 문제지만, 국내 쌀시장을 개방할 경우 중국도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이 부장은 “중국은 2004년 한국의 쌀 개방을 겨냥해 흑룡강 부근에 200만ha의 쌀 경작지를 마련해놓고 있다”며 “쌀 재협상 과정에서 수입 폭이 늘어날 경우 중국은 저가 공세로 한국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현재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는 쌀은 80kg 한 가마에 4만원(관세 5%)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생산된 쌀(15만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반면 경작비용은 국내 쌀이 중국에 비해 20%나 더 많다.

정부가 직접지불제도를 대폭 확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전농은 그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직접지불 예산을 2003년까지 전체 농업 예산의 23%(2003년 9.3%)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 비하면 매우 보잘것없는 수준이라고 전농은 주장한다. 전농은 “이미 EU는 1990년대에 직불금 규모가 농업 예산의 70%를 넘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내 농가인구당 직접지불금은 지난 2000년 기준으로 991달러로 집계됐는데, 이는 미국의 8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 지난 3월28일 전남 나주시 동강면 들녘에서 한 농민이 논두렁을 태우고 있다. 쌀 개방 재협상을 앞두고 농민들의 민심은 서서히 불타오르고 있다.(박승화 기자)

전농은 정부가 의욕적으로 제시한 119조원 투·융자 정책에 대해서도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정책’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전농은 “지난 2003년 농업 관련 예산이 11조에 이르기 때문에 정부가 투·융자 규모로 제시한 119조는 앞으로 10년 동안의 농업 관련 예산을 단순히 합산한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세계적 이슈 ‘식량주권’ 고민은 빠져

전농은 참여정부의 농업정책에 식량자급 계획이 빠져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탈냉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식량주권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우선시돼야 할 핵심 정책이 빠졌다는 것이다. 전농은 “일본은 식량자급 목표를 법제화하는 등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정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농은 통일에 대비한 식량정책을 마련할 것도 주문하고 있다. 이 부장은 “현재 북한의 식량자급률은 40%에 불과하기 때문에 통일이 될 경우 북한의 식량난이 우리에게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향후 10년 동안 남북 관계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남북 통일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최소 수입물량, 얼마나 늘까

정부 “소폭 증가로 관세 유예기간 연장”… 전농 “FTA 협상 보면 믿을 수 있나”

지난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에 따른 쌀 관세화 유예기간(10년)이 끝난 올해 우리 정부는 다시 쌀개방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지난 1월20일 세계무역기구(WTO)에 쌀 관세화 유예 연장 의사를 통보했다. 미국과 중국 등 국내 쌀시장에 관심이 있는 나라들은 오는 4월20일까지 협상에 참가할 의사를 밝혀야 한다. 농림수산부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참가 의사를 밝힌 나라는 없지만, 주요 쌀 생산국인 10개국 정도가 협상에 참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쌀개방 재협상에 나선다고 해서 무조건 관세가 철폐되거나 쌀시장 개방 폭이 대폭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정부쪽의 설명이다. 지난 94년 협상 당시 조건은 최소시장물량(최소수입물량·MMF)을 2003년까지 4%로 늘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 재협상에서는 이보다 높은 수준에서 개방 폭이 결정될 전망이다. 농림수산부 관계자는 “관세화 유예 기간을 연장하려면 우리가 개방폭을 좀더 양보해야 한다”며 “최소시장물량을 현재보다 약간 늘리는 수준에서 타결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농은 협상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전농 관계자는 “지난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 정부의 태도를 보면 이번 쌀 재협상에서도 자본의 이익을 위해 농민들을 희생시킬 가능성이 크다”며 “농민들은 정부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쌀 재협상을 둘러싼 농민과 정부의 갈등이 10년 전보다 첨예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부채탕감 “곤란하면 곤란하지~”

정부는 정책 실패 인정하고 농촌의 환경보호 기능 보상해야

농가부채는 ‘뜨거운 감자’다. 역대 대통령 후보들이 선거 때마다 농가부채 탕감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당선 이후에는 슬그머니 그 공약을 감추기에 바빴다.

참여정부도 농가부채에 대한 시각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농가부채가 농민들의 가장 큰 문제임을 인정하지만, 도시 서민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부채 탕감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장태평 농림부 농업정책국장은 지난 3월25일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농촌의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도시에 비하면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농촌의 가구당 부채가 10년 전의 500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4배 증가하는 동안, 도시는 400만원에서 2900만원으로 7배 가까이 증가했다”며 “다만, 농촌 저소득층은 부채 부담이 심각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격차를 비교해보면, 농촌은 7배로 도시의 5배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그만큼 농촌의 빈부격차가 도시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장 국장은 “이자율 경감도 농촌의 일부 고소득층에게만 유리한 것으로 소득분배 왜곡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권영근 소장은 “농가부채는 농민들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따라 투자했다가 발생한 부채이기 때문에 정부가 전향적으로 해결해주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권 소장은 “농가부채를 탕감하면 마치 농민들이 모럴 해저드에 빠지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는 농촌이 생산하는 무형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무지에서 나온 소치”라고 주장했다. 농촌은 농작물 생산 기능 외에 생태계 보존과 홍수 조절, 대기온도 조절, 수자원 보전 등 환경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데, 정부가 이런 기능에 대한 비용을 전혀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 소장은 “도시인들이 농촌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비용을 분담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농가부채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