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2 ] 2003년12월17일 제489호 

유기농 밥상을 차리셨나요

친환경농산물, 안전한 먹을거리로 대중화 추세… 전문식당 등장하고 농가 살리기에도 한몫

친환경농산물이 안전한 먹을거리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가정의 식탁혁명을 이끌고 식당과 학교 등을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유기농산물의 등급을 살펴보며 비싼 것으로 알려진 가격의 실체도 들여다봤다.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은 올 초 식품매장의 구조를 크게 바꿨다. 한쪽 벽면에 쏠려 있던 친환경농산물 코너를 매장 한가운데로 옮기고, 넓이도 50평에서 70평으로 늘린 것이다. 결정은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백화점 관계자는 “올해 신선식품을 중심으로 친환경농산물 매출이 지난해의 2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소비가 전반적으로 침체돼 있다고 하지만, 친환경농산물 시장은 불황을 모르고 있다. 몇몇 먹을거리만이 아니라, 아예 식재료 전체를 친환경농산물로 바꾸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사진/ 친환경농산물 시장은 소비침체기에도 불황을 모르고 있다. 친환경농산물 코너를 식품매장 중심으로 옮긴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김진수 기자)

주부 김영란(36·고양시 일산구)씨는 6개월 전 지역의 생활협동조합에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김씨는 요즘 쌀과 채소는 물론이고, 아이들 과자까지도 친환경농산물로 만든 제품만 쓴다. 식구가 넷인 김씨 가족이 한달에 생협에 주문하는 음식료품은 30만원어치를 넘는다. 김씨는 “한달 생활비의 절반가량에 이른다”고 귀띔했다. 물론 김씨네는 보통 조합원들의 평균보다 2배가량 주문량이 많은 경우다.

식재료를 친환경농산물로 바꾸는 사람들

김씨가 일반 제품보다 훨씬 비싼 친환경농산물만 먹게 된 것은 초등학생인 아들의 아토피성 피부염 때문이었다. 먹을거리를 바꾸지 않고는 치료가 어렵다는 경험자들의 충고에 따라, 그는 식탁을 확 바꾸기로 했다. 김씨는 “친환경농산물로 바꾼 뒤 확실히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 때문에 여섯살짜리 딸을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직접 돌봐왔다. 그러던 중 생협 조합원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이 여럿 있다는 것을 알고 서로 뜻을 맞춰, 몇달 전부터 주위에 사는 생협 조합원 3명과 하루씩 돌아가며 아이들을 품앗이로 돌보고 있다. 식탁을 바꾼 것이 생활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생활협동조합 가입자의 빠른 증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식탁혁명’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국 42개 생협에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하는 생협연대는 지난해 말 1만5천여명이던 조합원이 지금은 2만5천여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특별한 홍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생협연대 물류센터 오항식 부장은 “대부분 조합원이 이웃의 소개로 생협에 가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협연대의 올해 매출은 지난해 160억원에서 80% 가까이 늘어난 285억원에 이른다. 회원 1가구당 평균 114만원어치씩 구매한 셈이다.

친환경농산물 직거래 조직으로는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한살림’도 올해 서울과 수도권 조합원이 8천여명가량 늘면서, 5만명에 육박했다. 전국 조합원은 10만명을 넘어섰다. 서울·수도권 한살림의 올해 매출액도 지난해보다 15%가량 늘어난 335억원에 이른다. 수도권에서만 물품을 공급하는 여성민우회 생협도 올해 2천명가량 회원이 늘어 11월 현재 회원 수가 9400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30~40대 중심… 인터넷 통해 주문 · 배달도

친환경농산물은 생산원가가 비싸서 값싼 일반 농산물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적잖은 부담이 된다. 420g짜리 두부 한모에 1750원가량 하는 것을 비롯해 비싼 것은 값이 2배 가까이 나간다. 한살림 이남선 기획관리부장은 “앞으로도 생산비를 낮출 여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소비가 급증하는 것은 소비계층이 중산층 이하로까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장은 “과거에는 40~50대 고소득층이 조합원의 주류를 이뤘는데, 최근에는 30~40대가 중심이다. 특히 30대 젊은 주부들의 조합원 가입이 아주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돈이 좀더 들더라도, 아이들에게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얘기다.


사진/ 친환경농산물은 매장에 직접 가거나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 있다. 한 주부가 한살림 매장에서 식재료를 고르고 있다.(박승화 기자)


친환경농산물을 싸고 편리하게 사는데는 역시 생활협동조합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인터넷에서 주문을 할 수 있고, 주문액이 많으면 배송료 없이 배달도 해준다. 또 생협은 비영리조직이어서 유통마진을 거의 없애고 상대적으로 싼 값에 물품을 대준다. 생협 관계자들은 품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느 곳이나 값은 거의 비슷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생협연대의 경우 조합원들에게 매달 조합비를 1만7천원씩 받는 대신 20% 싼 값에 물품을 공급한다는 점이 다르다. 월 10만원어치 이상을 사는 경우라면 생협연대쪽이 유리한 셈이다.

그동안 친환경농산물 시장을 키워온 것도 시민운동 형식을 띤 생활협동조합들이 중심이 됐다. 그러나 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최근 들어 기업들의 시장 진입도 늘어나고 있다. 친환경농산물을 통신판매해온 한겨레 초록마을은 아예 친환경농산물만을 파는 독립된 가게를 전국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 마포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전국에 56개의 매장을 열었다. 한겨레 초록마을쪽은 내년말까지 매장을 150개로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초록마을 출범 1년 만에 56개 매장 설립

전문식당의 등장도 눈길을 끈다. CJ푸드빌은 지난 10월4일 서울 대치동에 한식집 ‘한쿡’ 1호점을 열었다. 한쿡은 국내산 유기농산물만을 재료로 쓰고,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 물론 그만큼 값은 비싸다. 뷔페가 1만7천원이고, 갈비찜 등 추가 주문을 하면 3500~7000원이 더 든다. 그런데도 250석의 식당에 평일엔 600여명, 주말엔 800여명이 든다. 회사쪽은 내년 초 강동구쪽에 2호점을 열 계획이다. 코미디언 김형곤씨가 지난 9월 여의도에 문을 연 ‘들뫼바다’도 쌀은 물론이고 모든 식재료를 유기농산물로만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브랜드인 ‘오봉팽’(au bon pain)은 샌드위치 전문점이다. 오봉팽도 100% 유기농 채소만을 재료로 쓴다. 그러다보니 샌드위치 하나가 1만원 안팎이나 하지만, 1월 광화문점을 시작으로 7월 이대점, 12월 여의도점을 여는 등 점포를 계속 확장해가고 있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얘기다. 오봉팽코리아 조혜윤 이사는 “호텔 베이커리를 이용하던 사람들이 오봉팽을 많이 찾고 있다”며 “내년에도 3~5곳가량의 직영점을 추가로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는 해도 친환경농산물 시장은 아직 전체 농산물 시장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올해 생활협동조합들의 전체 매출 규모는 1천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생협 관계자들은 생협을 통해 유통되는 규모는 전체 시장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고 본다. 이를 감안하면 전체 시장은 3천억원 규모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시장이 커지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한살림 이남선 부장은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만 급격히 늘어도 가짜 유기농산물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공급 부족이라기보다는 소비 저변이 넓지 않다는 데 있다. 안정적으로 판로만 개척해준다면,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이 현재 많아진 것이다. 친환경농산물의 소비 저변 확대는 수입 개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농업을 살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 유기농 식탁이 학교와 직장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 여의도의 유기농산물 전문식당에서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박승화 기자)


그러나 친환경농산물 소비 증가가 국내 생산 기반의 안정적인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많다. 친환경농산물 시장에도 외국의 수입제품이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유기농산물도 외국에서 수입하면 값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안전한 먹을거리’에만 강조점을 둔다면, 소비자들은 값싼 수입 제품에 점차 눈을 돌리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농업의 활로를 친환경농법에서 찾자는 그동안의 노력이 일거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고 생협 관계자들은 우려한다.

외국산 제품 몰려와 국내 농가 골머리

이미 가공식품쪽에서는 수입 유기농산물이 빠르게 밀려들고 있다. 풀무원의 자회사인 내추럴홀푸드는 ‘올가’라는 이름의 유기농산물 전문매장을 열어, 국산과 수입 유기농산물 제품을 함께 팔고 있다. 삼양사도 수입 유기농식품을 주로 파는 ‘구텐모르겐’을 현대백화점 미아점에 입점시켰다. 국산만을 공급하기로 한 한겨레 초록마을의 경우는 예외적인 사례이고, 기업들은 수익 확보 측면에서 유리한 외국산 제품을 수입해 팔려는 유혹을 쉽게 떨쳐버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금까지는 가공식품 수입에 그치고 있지만,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가 시행되면서 내년부터는 신선식품도 외국에서 수입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생협연대 오항식 부장은 “안전한 먹을거리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소비자들 자신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라며, “당분간은 국내 친환경농산물 생산 기반을 키울 수 있도록 소비자들이 도와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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