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김인숙(60·서울 강남구 청담동)씨는 며느리가 영 못마땅하다. 같이 사는 며느리가 함께 장을 보러 가면 꼭 유기농 식품만 고집하기 때문이다. 물론 김씨도 자식들이 좀 비싸더라도 몸에 좋은 것을 먹겠다는 것을 말릴 이유는 없다. “무공해다 무농약이다 떠들지만 어떻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습니까. 음식은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으면 되는 건데 젊은 사람들이 너무 까탈스러운 것 같아요.”

사진/ 유기농산물은 엄격한 인증기증을 통과해야 한다. 친환경 농산물 품평회에서 소비자와 심사위원이 유기농산물을 살펴보고 있다.(연합)

‘유사 유기농’ 구별하기 헷갈리네

유기농 식품을 사먹는 사람들도 한번쯤 김씨 같은 의문을 품어봤을 것이다. 과연 유기농은 비싼 만큼 제 값어치를 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유기농산물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최근 잘 먹고 잘 살자는 이른바 ‘웰빙’ 바람이 불면서 슈퍼마켓이나 대형 할인점들은 매장 한쪽에 무농약이나 저농약 농산물 등을 갖다놓고 ‘유기농 특판 코너’를 꾸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은 농산물이면 편하게 유기농이라고 생각한다. 자칫 무늬만 유기농인 식품에 속을 수도 있다. 소비자들이 유기농산물 여부를 알려면 포장에서 친환경 농산물 인증 표시를 확인하면 된다. 2001년 7월부터 친환경농업육성법에 따라 인증받은 농산물만 △유기농산물 △전환기 유기농산물 △무농약 농산물 △저농약 농산물 같은 표시를 할 수 있다. 유기농산물은 농약과 화학비료와 유기합성 농약을 3년 이상(다년생 작물은 3년, 그외 작물은 2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농산물을 키워야 한다. 전환기 유기농산물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1년 이상 전혀 사용하지 않았지만 유기재배를 한 지 3년이 못된 유기농산물이다.

무농약 농산물은 농약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지만, 화학비료는 가급적 권장해서 뿌리는 양의 3분의 1 이내로 사용해서 키운 것이다. 저농약 농산물은 화학비료는 가급적 권장해서 뿌리는 양의 2분의 1 이내, 농약 뿌린 횟수가 농약 안전 사용기준의 2분의 1 이하인 농산물이다.

친환경 농산물 가운데 유기농산물의 인증 기준이 가장 엄격하고, 그 다음으로 전환기 유기 농산물, 무농약 농산물, 저농약 농산물 순이다. 유기농산물 인증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나 민간인증기관 5곳에서 한다. 수입 농산물은 국내에서 다시 인증을 받아야 유기농산물 표시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증받은 친환경 농산물이라도 천연·자연·무공해·저공해나 내추럴(natural) 등 소비자에게 혼동을 일으킬 수 있는 강조 표시를 해서는 안 된다. 한살림이나 한국생협연대 등 유기농산물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단체들도 공신력을 지키기 위해 자체적으로 잔류농약, 유전자변형 농산물 사용 여부, 화학첨가물 검사 등 안정성 검사를 수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유기농산물 거래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믿음을 기본 바탕으로 한다. 울산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손문익씨는 지난 여름 생태유아공동체 소식지에 기고한 글에서 농사를 짓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정확한 숫자는 아니겠지만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퇴비를 쓰면 대충 50배는 일이 많아진다. 제초제나 농약을 쓰는 것에 비해 인력으로 병해충 방재를 하면 또 50배는 일손이 많이 간다. 그렇다고 유기농산물이 100배 비싸게 공급되지는 않는다. 경제 제일주의인 이 시대에 바보처럼 농사를 지으면서도 행복한 이유는 저희 부부가 키운 채소를 안심하고 즐겁게 먹는 조합원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비싼 유기가공식품 함량 표기 제각각

소비자들 처지에서는 농산물뿐 아니라 가공식품도 유기농이라면 더 끌린다. 최근 유기농 바람을 타고 식품회사들이 유기농 두부, 유기농 이유식, 유기농 케첩 같은 가공식품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식품회사가 파는 ‘유기농 두부’는 420g짜리가 2400원이다. 같은 크기·무게의 ‘보통 두부’ 값은 1천원 남짓해 2배 이상 비싸다. 하지만 이 두부의 매출액은 고무공처럼 통통 튀고 있다. 2000년 11월 출시 첫달 2800만원이던 매출이 올 9월에는 약 5억원으로 뛰었다. 지난달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서울 시내 9개 큰 백화점과 일부 할인점에서 파는 유기가공식품 10개 품목(녹차·소금·케첩·간장·생식·유아식·분유·치즈·두부·아기주스) 가격과 일반 가공식품 값을 비교조사했다. 유기가공식품이 일반가공식품보다 평균 2.7배 비쌌다.

사진/ 유기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단체들은 공신력을 생명으로 여긴다. 별도 인증을 받지 않는 두부나 생식, 분유 등은 함량표시 원칙이 표준화되지 않았다.(류우종 기자)

소비자보호원 김옥정 차장은 “유기농산물은 인증 의무화 제도에 따라 인증받은 농산물에 한해 유기농 표시와 함께 표준화된 유기농 표시를 하고 있다. 반면 유기가공식품은 별로 인증을 받지 않고 원재료 가운데 유기농 원료의 함량에 따라 유기식품·유기 마크·유기농 함량 등을 표시할 수 있다. 하지만 함량을 표시한 경우에도 제품에 따라 총함량이나 원료별 함량을 선별 표시하거나 총함량과 원료별 함량을 함께 표시하고 있다. 함량 표시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소비자들이 유기가공식품을 제대로 식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소비자보호원 조사에 따르면, 일부 식품의 경우 유기농의 총 함량이 100%가 아니면서 ‘유기농 100%’ 같은 표시를 해서 소비자들을 헷갈리게 한다. 유기가공식품에 ‘유기농 100%’ 표시를 하려면 유기농산물 이외에 어떤 식품 또는 식품첨가물도 최종 제품 안에 남아 있지 않는 식품이어야 한다. 한 이유식 제품은 ‘100% 유기농 우리쌀, 100% 유기농 과일·야채’라고 표시하고 있다. 이 제품은 전체 함량 중 유기농 함량이 29.56%에 불과하지만, 언뜻 유기농 총 함량이 100%인 것처럼 보인다. 또 ‘유기농 콩 100% 사용’이라 적힌 한 초밥용 유부는 실제 유기농 콩의 함량이 50.4%이다. 이 제품에는 ‘전체 160g 중 조미유부가 124g, 조미유부의 62.8%가 유부, 유부의 93.2%가 유기농 대두’라고 복잡하게 표시되어 있어 소비자들이 실제 함량을 알기 어렵다.

식품의약청 안정청 고시에 따라 유기가공식품은 정제수와 염화나트륨 등을 뺀 원재료 중 유기농 함량이 95% 이상이면 주표시면에 ‘유기’ 표시가 가능하고 유기인증기관의 명칭과 마크 등을 자율적으로 표시할 수 있다. 그런데 국산 가공식품은 자체 로고를 임의 표시하거나 외국의 유기마크를 표시한 경우가 많다. 유기가공식품에 대해 국내 인증제도와 표준화된 유기 마크가 없고 외국에서 인증받은 유기농산물도 가공된 식품가공식품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유기농도 알아야 제대로 먹는다

소비자보호원은 정부가 유기농산물뿐만 아니라 유기가공식품에 대해서도 인증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유기농 원료뿐만 아니라 그 제조·가공 과정에 대한 관리·검증 절차를 거쳐 유기인증을 시행하고, 표준화된 유기 마크를 제정해 인증 제품에 한해 이를 표시해야 한다. 소비자가 헷갈리지 않게 가공식품에 ‘유기’나 유기농 함량 표시를 할 경우에는 반드시 총함량을 함께 표시하고 원재료 표시란에는 원료별 함량을 표시해야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좀 비싸도 몸에 좋으면 되지’라며 지갑을 열기 전에 친환경 인증마크가 붙어 있는지, 유기농 원료 함량이 제대로 표시되어 있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유기농도 아는 만큼 보이게 마련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