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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 다시 출발선에 서다 총학생회 선거의 낮은 투표율과 ‘비권’ 당선은 기존 학생회 중심 운동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
학생운동의 몰락인가, 조정인가. 2004년 학생회장을 뽑는 각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서 ‘학생회의 탈(脫)정치화’를 내건 이른바 비운동권 학생회가 ‘약진’하면서 학생운동의 방향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비운동권’이란 애매한 단어
하지만 비운동권과 운동권을 가르는 기준은 사실 모호하다. 언론은 보통 한총련과 일부 좌파 진영을 운동권으로 묶고, 비운동권은 그 나머지 세력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비운동권이라는 범주 안에는 통일운동과 노동운동으로 양분되던 이전의 학생운동의 전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신운동권’세력과 학생운동의 반대세력으로 존재하는 ‘반운동권’이 함께 포함된다. ‘자주-민주-통일’의 강령을 따르지는 않지만 반전운동이나 파병반대 운동을 연대해 펼쳐나가는 2003년 서울대 총학생회와, 아예 ‘한총련 탈퇴’와 ‘학내 집회금지’를 주장하며 당선된 서울 홍익대 총학생회 당선자쪽이 모두 비권으로 묶이게 되는 것이다. 또 일부에서는 ‘비권’과‘반권’은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권은 다른 정치적인 운동조직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학내 문제에 촛점을 둘 뿐, 자체 정치투쟁은 거부하는 그룹이고, 반권은 학내 사업 이외의 모든 정치성을 띈 운동을 부정하는 성격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총련의 ‘아성’이던 서울 홍익대에서 올해 한총련계 후보와 접전끝에 200여표 차이로 당선된 김대정(전기전자공학부 3)씨는 “기존의 학생회는 반미와 통일만 외치고, 기말고사 기간에 학내에서 집회를 여는 등 오히려 일반 학우들의 학업을 방해하는 행태를 보여왔다”며 “월 1회 무료토익을 실시하고, 취업박람회를 여는 등 학생들의 취업문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학교 바깥의 문제와는 철저하게 관계를 끊는 ‘이기적인 학생회’를 만들겠다는 공약이 학생들을 움직인 것 같다”고 밝혔다.
‘운동권-비운동권’이라는 구도의 민감성과 모호함을 고려한다 해도, ‘학생회에 뿌리를 둔 학생운동’(학생회 운동)에 대한 폭넓은 문제제기가 이어진 것은 사실이다. 특히 올해 학생회 선거에서는 여느 해보다 ‘학생회 혁신’과 ‘새로운 학생운동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학부제 도입 등으로 과 학생회마저 붕괴
이러한 문제의식의 바탕에는 기존 학생회 운동에 대한 학생들의 외면이 자리하고 있다. 학생회가 학생들이 피부로 느끼는 사안에 집중하기보다는, 학생들의 동의를 선뜻 이끌어내지 못하는 낡은 투쟁구호를 외치거나 학생을 ‘지도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권위적인 모습이 지적되는 것이다. 한총련 합법화대책위 관계자는 “학생운동이 급격한 쇠퇴의 길로 들어섰지만, 기존의 학생회 조직은 학생운동을 쇄신하고 학생들로부터 지지를 받겠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며 “학생회를 폐쇄적으로 운영하고,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사와 이해를 모아내지 못한 것이 학생들한테서 외면받게 된 이유”라고 진단했다.
학생들의 무관심을 가장 단편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올해 총학생회 선거의 투표율이다. 올해 총학생회 선거를 진행한 대부분 대학의 투표율은 50%를 갓 넘는 수준에 그쳤다. 지난 11월 말 총학생회 선거를 치른 서울대의 경우 투표 기간을 이틀 연장해 무려 닷새 동안 투표를 벌였지만 투표율은 46.67%에 그쳐 끝내 총학생회장을 뽑지 못하는 상황마저 벌어졌다. 성공회대와 상명대도 투표율이 각각 24.6%, 41%에 머물러 학생회 선거가 내년으로 미뤄졌다.
학내 교류와 절차적 민주주의 필요
한 한총련 간부는 “각 대학이 벌인 ‘50%와의 전쟁’은 학생회는 자신과 아무 상관없다는 학생들의 냉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또 이번 총학 선거의 특징은 비권과 운동권의 대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학생운동의 변화’를 외친 선본(선거대책본부)들이 대거 당선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운동의 내용과 방식에 대한 다양한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새로운 학생운동을 고민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적 이슈가 다양해지고, 학생회가 유일한 사회참여의 통로이던 시대도 아니어서 과거와 같은 ‘일사불란’한 학생운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등 진보정당의 학생조직과 시민사회단체, 사이버 공간 등을 통해 학생회를 통하지 않더라도 사회참여의 기회가 많아진 점은 학생회의 새로운 위상 정립을 재촉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지금이 학생운동의 ‘필연적 조정기’라는 분석을 내리기도 한다. 학생운동이 노동운동·농민운동과 함께 사회변혁을 주도하는 3대 주체세력에서 부문 운동으로 조정되는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1970~80년대 대학은 종교단체와 함께 유일하게 사상이 숨쉬는 공간이었고, 젊은이들을 조직화하는 희망의 ‘생산지’ 구실을 함으로써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며 “사회가 다원화하고 의견이 다양해지면서 이제는 학생운동이 대학생들의 이슈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본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하나의 ‘계층운동’으로 조정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한국 대학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실천단위는 학생회뿐이다. 다만 예전의 학생운동이 ‘사회와의 교류’에 치우쳤다면, 이제는 학생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고 사회를 보는 건강한 시각까지 제공하는 ‘학내 교류’와 ‘절차적 민주주의’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운동을 펼치는 내부에서도 ‘운동의 위기’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 홍익대 총학생회의 한 간부는 “지난해의 촛불시위나 올해 반전운동 움직임에서 볼 수 있듯이, 학생들의 사회를 보는 눈과 관심사는 다양하고 높아졌다”며 “파병반대 서명운동을 하면 4천~5천명씩 모이면서도, 막상 집회를 하면 100명도 모이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새로운 학생회상을 향하여
이에 대해 ‘새로운 학생운동’을 주장한 정재욱 11기 한총련 의장(연세대)은 “학생운동은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잘라 말한다. 정 의장은 “학부제 실시로 와해되다시피 한 ‘풀뿌리 학생회’를 복원하고, 학생들이 학생회 활동의 기획·실행·평가에 직접 참여하는 틀을 만드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한총련처럼 하나의 강령으로 묶이는 연합체가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참여를 중심으로 하면서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연대·교류하는 느슨한 ‘협의체’의 형식을 통해 모든 학생이 함께하는 운동의 틀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독재정권에 맞서 들불처럼 일어났던 과거 학생운동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학생들이 투쟁의 앞머리에 설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시대 상황을 그리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학생회상에 대한 고민은 새롭게 구성되는 학생회 안팎에서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2003년 겨울, 한국의 학생운동은 다시 출발선 위에 서 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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