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활동가들이 대학생에게 보내는 편지… 현재의 학생운동이 싫다고 외면하시렵니까
이 글은 현재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 활동가들이 대학생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대학교 91학번 활동가들로 구성된 ‘시민사회청년활동가모임’에는 현재 20여명의 활동가들이 소속되어 있습니다.(정리: 안진걸 참여연대 회원참여팀장, 최현진 전대협 동우회 전 간사)
대학생 여러분, 많이 답답하시죠?
1학년 때부터 취업공부에 쫓기고, 학부제 때문에 같은 과 친구 하나 사귀기 어렵고, ‘남북 화해시대’라는데 여전히 2년 넘게 군대에 가야 하고, 미국에 ‘NO!’라고 할 줄 알았던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에 파병한다고 난리고, 그런데 학생들을 대표한다는 학생회는 답답한 가슴 아는지 모르는지 늘 자기들끼리 바쁘고….
사진/ 가슴이 미어지고 숨이 막히던 '그 시절'. 목숨을 걸고 싸웠던 한국 학생운동의 전통은 위대한 것이었다.
‘그 시절’을 알고 계시나요?
많이 답답하고 고민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켜보는 저희들로서도 가슴이 답답해서 조금은 구태의연하게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가슴이 미어지고 숨이 막히던 ‘그 시절’을 알고 계시나요? (몇년 전까지만 해도 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다 학생들이 경찰의 폭력에 의해 숨졌답니다.) 지금만큼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인지 한번 진지하게 성찰해보신 적이 있나요? (지금 많이 자유롭다고 느끼시죠? 예전엔 심지어 장발단속, 통행금지도 있었답니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여러분들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만큼 ‘인간답게 살 만한’ 곳이며 ‘평화롭고 민주적’인 곳인가요? (아직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고, 분신항거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강제 추방당하고, 죄 없는 젊은 군인들은 미국의 총알받이가 될지 모르는 이라크로 가게 된답니다.) 여러분들이 다니고 있는 대학이라는 곳의 운영과 교육은 얼마나 ‘교육적’이며 ‘학생중심적’인가요? (대학인가요? 취업학원인가요? 그 많은 사학재단들의 비리와 무리한 등록금 인상은 뭔가요?) 분단과 냉전을 뛰어넘는 민족화해·평화의 시대에 반대하는 수구냉전 세력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나요 (여러분들의 군복무 단축도 반대하는 그 사람들 말입니다. 자기 자식들은 군대에 안 보내면서요.) 여전히 인간해방은 멀고, 분단과 모순으로 아직도 고통스러운 이 땅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대학생 여러분들에게 진지하게, 일일이 얼굴을 맞대고 꼭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서 학생운동과 청년학생의 헌신적 투쟁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 민중운동, 통일운동에서 학생운동만큼 큰 일을 해낸 세력이 또 있을까요? 목숨을 걸고 싸웠던 한국 학생운동의 전통은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순수함과 도덕성은 이들의 생명이었고, 치열한 투쟁과 헌신에 대한 국민과 학우의 폭넓은 지지는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사진/ 6월1일 새벽 신촌 연세대 노천강당에서 열린 11기 한총련 출범식(한겨레 탁기형 기자). 최근의 총학생회 선거결과에서 보이듯 한총련과 학생과의 괴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 학생운동은 더 이상 국민과 학생 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동의를 선뜻 이끌어내지 못하는 낡은 투쟁구호, 관념적 과격성, 친북 편향으로 오해받기 쉬운 통일운동, 학생 사회·한국 사회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타성 등이 문제가 되고 있지요. 내부적으로 학생 사회에서의 지지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외부적으로는 공안검찰의 집중적인 탄압의 표적이 되어 활동은 더더욱 위축되고 참으로 힘든 시기를 겪게 된 것입니다.
한총련이 혁신을 위해서 노력한다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한총련과 학생운동은 학생 사회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한총련은 여전히 학생 대중들의 지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고, 국민들의 지지도 매우 낮은 상황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최근의 총학생회 선거결과는 그 지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야 할 길은 아주 멀다
끊임없이 대중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 혁신과 성실한 실천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학생운동의 선배 세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끊임없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친구들이 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배자가 되어 쫓기고 감옥에 가는 이 부당한 현실을 용인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학생운동이 싫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가능한 만큼의 사회참여’마저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곳곳에서 청년학생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회참여를 너무나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사회참여운동이 중요한 것은 당대 학생운동의 정치적 효과 때문만은 아닙니다. 한국 사회의 역동적 변화 속에서 ‘386’이라는 세대의 집단적 흐름과 행동이 큰 역할을 해낸 것처럼, 학생운동은 비단 학생운동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운동에 공감한 이들이 사회·정치·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새로운 세대적 기여로 연결되는 점이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즉, 학생운동을 직접적으로 수행했든, 소극적 지지자였든 그 정신과 가치, 행동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세대가 사회로 나오면서, 사회 구석구석의 더 나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실천하는 분위기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죠. 또 그 흐름은 1997년 정권교체에 이어 개혁적인 대통령 후보의 당선, 진보정당의 선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우리 사회의 변화의 한복판에 서게 되고, 그 변화를 추동하는 주역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2년을 기억하시죠? 국민경선, 붉은 악마, 촛불시위, 노사모, 대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동적인 과정에서의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함께 참여했습니까? 앞으로도 참여는 계속되고 확산되어야 합니다. 사회 곳곳에서 참여가 넘쳐날 때 우리 사회에서 부패와 권위주의, 독재와 냉전의 유산은 서서히 또는 급격히 사라질 것입니다. 국민주권에 기반한 주인의식, 참여민주주의, 토론문화, 광장에서의 교감과 공동체 의식이 확산될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투명하고 합리적이며 인간적인 사회로 나아갈 것입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온몸으로 진행했던 30, 40대에 비해 20대들의 참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근 100년간 한국에서 항일운동,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을 책임져온 청년학생 세대가 사회참여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학생운동의 부진과 청년실업 문제, 대학 사회의 변화, 대학과 시민사회간 소통 부족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를 짊어질 20대, 특히 청년 대학생들에게 거는 우리 사회의 기대는 여전히 무척이나 높습니다.
여러분들이 맘껏 누리고 있는 지금만큼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가능했던 것은 수없이 많은 선배들의 목숨을 건 투쟁과 저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후배들에게 지금보다 더욱 좋은 사회를 물려줄 의무와 책임감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한국 사회는 분단극복과 평화정착, 외세를 극복한 통일, 참된 민주주의의 발전과 민중의 생존권·복지 실현, 남녀평등 실현, 대학개혁·교육개혁, 소수자 인권을 포함한 인권보장 등 가야 할 길이 많습니다. 여전히 평화와 인권, 사회복지, 다수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은 여전히 곳곳에서 위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문을 두드려보라
지금 당장 대학 안에서 사회참여 동아리나 과 학생회와 함께하는 것도 좋고, 가까운 곳에 있는 수많은 지역단체, 시민사회단체, 환경단체, 평화단체의 문을 두드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즐거운 사회참여와 보람이 여러분을 기쁘게 반겨줄 것입니다.
기성의 수구적 질서를 비판할 수 있고 저항할 수 있는 청년 대학생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변화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순수하고 정의롭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이해관계를 떠나 판단할 줄 아는 청년 대학생들의 문제의식과 사회참여가 우리 사회를 더 아름답게 변화시킬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이 희망의 근거인 까닭입니다.
이 글은 현재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 활동가들이 대학생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대학교 91학번 활동가들로 구성된 ‘시민사회청년활동가모임’에는 현재 20여명의 활동가들이 소속되어 있습니다.(정리: 안진걸 참여연대 회원참여팀장, 최현진 전대협 동우회 전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