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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추리닝 입고 회사 간다” 운동하는 여성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패션경향… 캐주얼+레포츠의 ‘캐포츠 스타일’도 인기
회사원 임은영(29)씨가 처음 ‘추리닝 패션’을 선보였을 때 부모는 혀를 찼다. 친구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슈퍼마켓 갔다 오는 거니? 일하고 오는 거니?” 하지만 옆단에 줄이 들어간 트레이닝 바지에 굽 높은 힐까지 신고 나서는 감각에는 두손 다 들었다. 임씨는 트레이닝 하의에 배꼽선 정도까지 오는, 달라붙는 웃옷을 걸치고 스포티한 핸드백을 들어 분위기를 맞춘다. 섹시한 스타일을 연출하고 싶으면 어깨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상의에 어깨끈이 살짝 보이는 색깔 있는 속옷을 입기도 한다. 지금까지 임씨가 하나둘씩 구입한 트레이닝 바지는 10벌이 넘는다. 몸을 조이면서도 편안히 달라붙는 스판 면바지, 발목 부분에 지퍼가 달려 신발에 따라 통을 조절할 수 있는 것, 조직이 듬성듬성 짜여 시원해 보이는 것, 반짝거리는 질감 때문에 고급스런 느낌을 주는 벨벳 트레이닝 등 색깔·소재별로 다양하다. 임씨가 트레이닝복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몸도 마음도 편하기 때문에.” 그는 “몸을 억지로 옷에 맞춰 긴장시키지 않고, 활동성 있는 차림새를 하고 있으면 사무실에서도 저절로 능률이 오른다”고 말했다.
“몸도 마음도 편하기에…”
몸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가냘픈 몸매를 넘어 적당히 붙은 근육과 활기 넘치는 태도, 당당한 삶의 자세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식이 조절을 통한 ‘굶는 날씬함’이 아니라 ‘운동하는 건강함’이 새로운 몸의 키워드가 된 것이다. 기계를 이용한 헬스, 에어로빅 말고도 요가, 다이어트 복싱, 복싱·태권도·가라테가 혼합된 콴도, 태권도·에어로빅이 합쳐진 태보 등 피트니스 산업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자신을 가꿀 수 있는 운동을 할 때면 어디든 입을 수 있는 옷들도 다양해졌다. 영화 <이너프>에서 제니퍼 로페즈가 맡은 역할도 몸에 대한 여성들의 새로운 인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수년 동안 남편에게 두들겨 맞다가 아무리 도망쳐도 남편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정정당당하게’ 힘으로 맞서 남편을 죽이는 슬림 역을 맡았다. 슬림은 이 ‘거사’를 위해 석달 동안 이스라엘 여군들의 격투술인 크라브마가를 배운다. 슬림이 다양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땀범벅이 된 채 고양이처럼 유연하고 표범처럼 맹렬한 크라브마가를 배우는 모습은 잘 다져진 팔다리 근육과 근사하게 어울린다.
여성이 주도하는 스포츠웨어 시장
스포츠 브랜드들은 이런 변화를 때로는 선도하고 때로는 따라잡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기능성을 살리면서도 섹시하고 아름다운 스포츠룩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푸마코리아는 지난해 가을 ‘피트니스 라이프 스타일’을 내세우며 면과 혼방으로 된 탱크톱과 긴 바지 스타일을 선보여 시장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에 힘입어 올봄엔 탱크톱 위에 덧입을 수 있는 간편한 점퍼와 밑단이 갈수록 넓어지는 트레이닝 바지를 출시했다. 이후엔 좀더 다양한 톱과 길이가 남성용으로 주로 인식돼온 나이키는 브랜드 이미지를 변화시키기 위해 3월부터 여성을 겨냥한 광고를 내놓았다. 매장에 들어서면 바람을 가르며 새벽길을 달리는 근육질의 여성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가을에는 현장에서 개발·시험한 여성용 피트니스웨어를 본격 출시할 계획이다. 수영복·에어로빅복 등으로 ‘고기능성’ 스포츠웨어 브랜드 이미지를 쌓아온 국내 브랜드 레노마짐도 2000년 피트니스웨어를 시작할 때는 몸에 쫙 달라붙는 레깅스 위주였다가 점차 운동 영역을 넓히면서 공공 장소에서 덧입는 바지, 스포츠 브래지어 위에 덧입는 짧은 티셔츠 등 다양한 개념의 옷들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아디다스 역시 평상시에도 쉽게 입을 수 있는 옷들로 구성된 ‘아디다스컬러스’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아이다스컬러스는 농구공의 오렌지색, 테니스공의 노랑, 잔디의 초록, 복싱 글러브의 빨강 식으로 여러 가지 스포츠를 다양한 색감으로 표현했다.
‘스포츠 걸’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A6, C.O.A.X., BNX, MF, EXR 등은 외출할 때나 운동할 때나 두루 입을 수 있는 스타일을 내놓았다. ‘캐포츠 스타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은 바짓단에 띠를 두르거나 옆단에 세로로 긴줄이 나 있는 ‘드로 스트링’ 바지, 아랫단·소매·옆선 등을 끈으로 조절할 수 있는 ‘스트링 점퍼’, 경주용 자동차대회에 나오는 레이서들이 입는 것 같은 ‘라이더 재킷’, 발한·방수 기능을 갖춰 땀복과 비슷하면서도 색깔이 다채로운 재킷류 등이다. 이런 캐포츠 스타일은 편안함, 자유로움을 넘어 자유롭고 섹시하고 낭만적이고 때로는 엽기적이다. 가령 축구복처럼 번쩍이는 질감에 선수 번호를 크게 써 붙여놓고는 어깨선을 깊이 파고 허리 부분은 고무줄로 조르게 돼 있어 몸매의 굴곡을 더욱 강조한다거나 원피스에 등산 가방이 덧대어 있는 듯한 그물을 부분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한때는 70㎏이 넘었다가 지난해 요가와 힙합 댄스를 배우며 15㎏을 감량한 김아무개(33)씨도 캐포츠룩을 패션 테마로 삼기로 했다. 운동을 통해 몸 만들기의 중요성을 깨달은 김씨는 “몇년 동안 누군가에게 뺏겼던 자신의 스타일을 되찾은 느낌으로 개성 없는 큰 옷들을 집어 던졌다”고 말했다. 그가 자주 연출하는 코디는 보드복 모양의 바지에 허리선까지 내려오는 짧은 청자켓. 자켓 안쪽엔 목선에 가위질을 한 듯한 면티를 받쳐 입어 자연스러운 느낌을 더한다. 여기에 청두건까지 머리에 두르면 ‘스포츠 걸’의 패션은 완성. 매장을 자주 들러보며 최근 경향을 ‘점검’하고 감각을 익히는 김씨는 “활동이 편안하면서도 옷의 색깔, 질감에 있어서는 이제까지 보았던 캐주얼웨어와는 차원이 다른 옷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흡족해 했다. 그는 “그렇잖아도 봄이 되면 옷 사고 싶어 마음이 들뜨기 마련인데 너무 마음에 드는 옷들이 많아 카드 들고 다니기가 겁날 정도”라고 말했다. C.O.A.X 홍보팀 방희경 대리는 “이제 소비자들은 평범하고 무난한 ‘이지 캐주얼’ 대신 과감하고 독특한 스타일을 원한다. 밝고 활동적이면서도 뭔가 나만의 것을 추구하는 ‘감성 캐주얼’ 시대에 스포티즘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좋은 밑천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솔솔 불어오는 봄바람과 함께 변신을 거듭하는 추리닝 패션. 올봄 이 바람이 어디까지 갈지, 거리의 멋쟁이들은 끝을 모르는 것 같다.
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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