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의 하마스 지도자 암살에 크게 분노하면서도 무기력한 아랍 국가들의 속내
이스라엘군은 헬기 로켓포로 팔레스타인 하마스 지도자 야신을 무참히 살해했다. 팔레스타인 분쟁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태세다. 야신, 그는 누구였나.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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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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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바논 남부도시 사이돈에서 열린 야신 암살 항의시위.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인들의 적대감 표출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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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여! 이제는 편히 쉬소서….” “샤론은 각오해라. 지옥문이 그대 앞에 훤히 열렸다!”
3월22일 새벽 팔레스타인의 정신적 지도자 셰이크 아메드 야신(66·Sheikh Ahmed Yassin)이 암살됐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마자 중동 곳곳은 반이스라엘 시위로 불타오르고 있다. 아랍 국가들은 습관적으로 이스라엘의 행위를 국가 테러로 규정하며 크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감스럽고 비열한 행위”(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범죄 행위”(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알 아메드 알 사바 쿠웨이트 총리), ‘가장 가증스러운 형태의 국가 테러리즘’ 등 비난의 수위가 끝간 데 없이 올라간다. “아랍 정상회담을 앞두고 자행된 살인 행위는 평화의 손길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암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 “이스라엘 정부는 테러리스트 조직과도 같다. 이스라엘을 진정한 평화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아메드 마헤르 이집트 외무장관) 등의 비난도 이어졌다.
반이스라엘 시위 사전에 봉쇄됐다
하지만 흥미로운 대목은 이들의 비난이 어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리라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다만 어두운 앞날을 예견하는 전망들만 줄을 잇고 있다. 두개골이 깨져서 뇌가 다 터져나온 그의 엉클어진 주검을 보도한 아랍 언론들도 경악감을 감추지 못했으나 야신의 지난날을 회고하고 있을 뿐이다.
3월26일 금요일 오후 암만 곳곳에서도 최루가스가 넘쳐나리라 생각하고 시위 현장에 나서는 경험 많은 참가자들은 으레 양파를 준비해갔다. 최루가스의 독성을 풀어준다고 해 아랍인들이 즐겨 쓰는 것이다. 이슬람 교도들의 금요일 정오 기도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종교의식이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아랍 지역의 중요한 이슈가 터지면 분노한 민심이 표출되곤 한다. 지난해 3월에도 이라크 전쟁이 터지자 매주 금요일을 기점으로 시위가 이어졌다. 4년 전 9월 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반이스라엘 독립항쟁 운동인 ‘인티파다’가 시작되자 시위는 금요일마다 증폭됐다. 사상자도 생겼다. 그래서 금요일 기도회가 끝난 뒤풀이 현장은 아랍 민심의 시금석이 되는 날이다.
야신이 죽은 지 만 4일째가 되던 날, 팔레스타인계가 4분의 3을 차지하는 요르단에서도 당연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는 들끓고 시위는 격렬하게 벌어지리라 예상됐다. 실제로 그의 죽음이 알려진 직후 암만 시내에서, 그리고 요르단대학 등에서 간헐적인 추모와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이집트나 레바논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걸 감안하면 당사자들인 요르단의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금요일에 강력한 의사 표현을 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금요기도회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지없이 빗나갔다. 무슬림 기도회가 끝나면 곳곳에서 살벌한 시위가 벌어지고 성난 시위대와 최루가스가 거리 곳곳을 뒤덮을 것이라는 그런 기대는 곧 사그라졌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뜻밖에도 요르단 암만은 조용했다. 일부 지역에서 시위가 있었지만 그것은 경미한 움직임이었다.

△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내각 의원들이 야신의 암살 직후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아라파트(가운데) 역시 암살의 방조자였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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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야신의 죽음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별다른 이슈가 되지 못하는 걸까. 요르단에는 팔레스타인 실향민들이 사는 난민촌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암만 동부 지역의 위흐다트 난민촌이다. 1948년과 1967년 중동전쟁을 피해 요르단으로 흘러들어왔던 이들이 살고 있다. 그곳에는 팔레스타인 실향민들의 암담한 현실을 반영하듯 천막조차 찾아볼 수 없다. 천막집은 곧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고대하는 이들의 임시 보금자리였다. 하지만 천막마저 사라지고 허름한 주택들이 들어선 지 30년이 흘렀다. 이곳은 팔레스타인에 이슈가 터질 때마다 가장 강력한 저항과 분노가 분출되는 곳이다. 3월26일에도 야신의 죽음을 기리는 추모 집회가 벌어졌다. 그러나 요르단 정부 공권력의 원천봉쇄 조처로 집회는 허망하게 무너졌다. 이날 요르단 곳곳에서 예상됐던 반이스라엘·친팔레스타인 시위는 대부분 무산되거나 사전 봉쇄되고 초동 진압된 것은 매우 뜻밖의 일이었다.
“또 잡아갔어. 말도 안 돼.” 경찰에 시위대가 연행돼가는 장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움 마흐무드는 머리를 흔들어댄다. 시위대가 해산된 지 몇 시간이 흘렀다. “돌아들 가세요. 뭐 볼 것이 있다고….” 시위대가 사라지고 진압봉과 최루탄 발사기 따위로 무장한 진압 경찰들만 가득한 거리를 힘없이 바라보는 주민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라말라가 고향인 팔레스타인계 3세 무니르는 “우리는 당신들과 같은 외국인보다 오히려 실상을 잘 모른다. 머리가 비었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시위대 진압을 바라보던 사람들 가운데는 손에 팔레스타인 깃발을 움켜쥐고 있던 대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요르단 압둘라 국왕에도 의심의 눈초리
그렇다면 대체 누가 야신을 죽인 것일까. 이 당연한 질문에 대한 뜻밖의 답변이 나왔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혐의자로 당연히 지목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엉뚱하게도 공조나 야합설이 나돈다. “야신의 죽음에는 샤론 총리는 물론이고,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수반과 요르단의 압둘라 국왕, 그리고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도 책임이 있다”는 일각의 주장이다. 이들은 3월18일 이뤄진 압둘라 국왕과 샤론 총리 사이의 비밀 회동 이후 야신이 암살당했다며, 여러 정황을 미뤄볼 때 압둘라 국왕이 방조한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당시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비밀리에 만나 이스라엘 군대의 가자지구 철수와 이에 따른 후속 조처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라파트도 암살 방조자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아라파트는 멀쩡한 사지를 가지고 앉아서 자기 잇속만 챙긴다. 반면에 야신은 움직일 수 없는 몸을 갖고 있으면서도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이런 팔레스타인인들의 따가운 지적은 아라파트 진영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가자지구에 2만여명의 보안군 병력을 투입하고서도 민심을 다잡지 못하는 현실이다. 피살 전날인 3월21일, 야신은 “이스라엘이 철군한 뒤 가자지구 선거에 참여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아라파트 진영으로서는 야신이 있는 한 선거에서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야신이 죽기 전, 일부 아랍 시사주간지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철군 이후 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한 하마스 진영과 아라파트 진영 사이의 주도권 다툼을 특집으로 실었다. 사실 가자지구는 친하마스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아라파트 진영에서는 야신의 존재가 눈엣가시이자 아라파트의 정적이었던 셈이다. 야신의 부재는 아라파트 진영으로서는 호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심하고 칼을 빼든 이스라엘의 샤론 총리 진영에서는 이참에 아라파트 수반마저 국외로 추방시키자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테러리스트의 괴수’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 정신과 순교자의 영광이 살아 있는 화신’ 등 가장 화려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던 야신을 놓고는 여전히 양극단의 평가가 맞서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죽었다. 그렇다면 테러와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과 순교자들의 행진도 멈추게 되는 걸까. 물론 이런 꿈같은 기대는 아직 입에 담기 어렵다. 팔레스타인 실향민들이 고토로 돌아가고자 하는 강한 열망과 독립 의지는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공존과 평화의 로드맵은 여전히 길잡이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랍 국가들이 공식적으로는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으나 이는 말잔치로 끝날 공산이 크다. 아랍 세계는 대의나 명분보다 실익을 추구하는 시대가 도래한 지 이미 오래다. 아랍인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의 표출도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의 점령지인 가자지구나 서안 점령지구 등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만의 분노와 투쟁만이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