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특집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3월30일 제503호
이스라엘은 실수하고 있다

야신 살해, 하마스에서 근본주의 반대를 말할 수 있는 가장 존경받던 온건파 지도자를 제거한 꼴

다오우드 쿠탑(Daoud Kuttab)/ 팔레스타인 알쿠드스 교육방송국장

하마스 운동 창설자이자 지도자였던 셰이크 아메드 야신이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 오래도록 기억되리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야신은 이집트인이 만든 ‘약한’ 무슬림 브러더후드(Muslim Brotherhood) 운동을 받아들여 강력하게 키워냈다. 그 과정에서 야신은 대다수 아랍국가들의 무슬림 브러더후드 운동이 지녔던 전통적인 온건 노선에서 벗어났다.


△ 야신의 살해 직후 분노하는 팔레스타인 시민들. 보복의 악순환 속에서 더 많은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 시민들이 정신 나간 학살극에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 돼버렸다.(GAMMA)

이스라엘과의 휴전을 주도했던 야신

야신의 이상은 평범한 종교적 자각과 박애주의에서 벗어나 더욱 강한 저항운동을 꿈꾸던 이들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1987년 제1차 인티파다(봉기)에서 하마스(이슬람 저항운동)로 태어났다. 제1차 인티파다가 2년째로 접어들던 날, 한때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대신 ‘이슬람주의자’에게 희망을 걸었던 이스라엘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400여명을 남부 레바논으로 추방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추방자 가운데 핵심 운동원들은 자연스레 레바논의 이슬람 저항운동 조직들과 연대할 기회를 얻었고, 아랍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국제언론들은 추방자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지난주 야신이 살해당하면서 하마스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소아과 의사 압델 아지즈 란티시(Dr. Abdel Azziz Rantisi)도 그 무렵 추방자들 가운데 한명으로 대변인 노릇을 하며 국제사회에 이름을 떨쳤다.

그 뒤,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추방자들에게 복귀를 허용했다. 그로부터 팔레스타인 저항단체들은 새로운 전략과 무기, 특히 자살폭탄 공격을 들고 되돌아왔다. 그러나 1993년 오슬로 협정으로 무슬림 강경파 저항세력들의 운신 폭이 좁아질 즈음, 헤브론에서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무슬림 참배객 29명을 살해함으로써 오히려 무슬림 무장투쟁을 ‘구조’해주었다.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분노가 폭발하자 하마스는 자살폭탄 공격이라는 가장 강력한 저항으로 이스라엘에 맞섰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정보원들이 하마스 정치국 지도자인 칼레드 마샬(Khaled Mashal)의 암살을 기도하기 전까지만 해도 하마스 지도자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요르단 보안군이 이스라엘 정보원 두명을 체포하자 다급해진 이스라엘 정부가 당시 감옥에 있던 야신과 두 정보원을 교환하면서부터, 야신은 지난 3월22일 살해당할 때까지 하마스 운동의 정신적인 지도자로 추앙받았다. 비록 야신이 군사적 명령을 내리거나 조직 내부에서 공식적인 지위를 갖진 않았지만, 그의 뜻 하나하나는 하마스에 엄청난 무게로 전해졌다.


△ 야신을 살해한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GAMMA)

그러나 국제사회에 알려진 것과 달리, 이슬람 저항운동 지도자들 사이에서 야신은 온건파 지도자로 인식돼왔다. 실제로 야신은 이스라엘과 세달간 휴전을 주도했고, 몇 차례에 걸쳐 무슬림 저항단체들에게 이스라엘군 점령지역 내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었다. 야신이 휴전을 선언하거나 공격 중단을 명령할 때마다, 오히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지도자들을 살해함으로써 야신의 ‘외침’을 쓸모없는 ‘짓거리’로 만들어버렸다.

지난 몇달 동안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은 점령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철수를 선호해왔고, 이스라엘 당국에서는 ‘과연 철수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놓고 거센 의문이 일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당국은 팔레스타인과 국제사회(미국)가 철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주목해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팔레스타인이 자신들의 ‘승리’로 해석하며 서안지구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이스라엘이 떠날 때까지 공격을 지속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었다.

3월 한달간 가자에서만 42명 살해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이스라엘군 철수로 생긴 틈새에서 하마스가 새로운 ‘테러’를 양산할 수 있다는 미국과 그 동맹국의 우려였다.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가자에서 비정상적일 만큼 강력한 공격작전을 펼쳤다. 그건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가자 철수가 결코 밀려서 후퇴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선언적인 공격이었던 셈이다. 지난 2월 한달 동안에만도 팔레스타인인 27명이 이스라엘군에 살해당했다. 그리고 3월 들어 야신이 살해당하기 전까지 가자에서만 42명이 살해당했다.

도살자에게 조용히 끌려가는 순한 양의 꼴이 되지 않겠다는 팔레스타인은 자신들의 피가 싸구려가 아님을 이스라엘에 각인시키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의 가자 철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

가자에서 수많은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살해당하자, 하마스뿐만 아니라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비종교주의 무장조직 파타와 가까운 아크사 여단마저 남부 아쉬도드에서 자살폭탄 공격에 나서 이스라엘인 10명을 죽였다. 그렇게 이슬람주의자들과 주류 팔레스타인 저항단체들까지 자살폭탄 공격에 나서면서 이스라엘에 뚜렷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졌다. 그 메시지 속에는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철수하면 이슬람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 자치기구의 운영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입장도 담겨 있었다.

샤론 총리 처지에서는 최악의 꿈이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성격이 다른 두 팔레스타인 단체가 벌인 자살폭탄 공격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요구에 호락호락 총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이슬람주의자를 대표했던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자치기구에 협력할 것이라는 상징성을 강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야신 살해가 이스라엘 총리 샤론의 결정에 따른 일이었음은 즉각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샤론 정부를 적극 지원하며 테러와의 전쟁에서 팔레스타인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던 미국의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미 샤론은 4월에 워싱턴으로 가서 가자 철수 문제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미국에 팔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국 매파들과 극우세력들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아왔던 샤론은 자신의 구매자들에게 뭔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미국의 극우세력들은 아무런 흥정도 하지 않고 가자에서 철수하겠다는 샤론의 계획에 크게 반발해왔다. 샤론은 그 모든 문제의 해결을 야신 살해로 때운 셈이다.

이스라엘의 야신 살해가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일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다만 정확한 시간과 정치적 조건이 필요했을 뿐이다. 샤론이 분석한 정치적 조건은 성숙되었고, 아쉬도드의 자살폭탄 공격은 시간을 의미했던 모양이다.

그런 이스라엘 처지에서 보면, 야신을 살해한 야만적 폭거는 하마스 내부에서 근본주의 반대를 말할 수 있는 가장 존경받던 온건파 지도자를 제거해버린 꼴이다. 동시에 새로운 하마스 지도자 압델 아지즈 란티시의 등장은 가자에서 온건파들이 발붙이기 힘든 상황을 예고하고 있다. 란티시는 이스라엘과 어떤 휴전도 반대한다는 견해를 분명히 밝혔던 인물이다.


△ 새로운 하마스 지도자 압델 아지즈 란티시(가운데).(GAMMA)

란티시는 남부 레바논으로 추방당했던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만약 팔레스타인이 지속적인 공격을 한다면 이스라엘은 스스로 물러날 것이라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쳐왔다. 그리고 하마스는 내부적으로 제2차 인티파다가 시작된 2000년부터 란티시의 전략에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왔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더 많은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 시민들이 정신 나간 학살극에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재 최선의 방법은 충돌 당사자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즉각 갈라놓는 길밖에 없다. 학살의 악순환을 끊어버리는 ‘현실적으로’ 유일한 길은 중동분쟁 ‘창작’ 책임자들인 미국과 서방이 즉각 개입해서 분쟁을 종식시키는 책임도 함께 지는 것이다.

그러나 뜨겁게 달아오른 미국 대통령 선거전을 본다면, 미국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개입은 일러야 11월 뒤가 될 수밖에 없을 듯싶다. 그때까지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어둠’ 속에 가려진 무거운 학살의 무게를 지고 살아갈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