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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01월02일 제49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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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대 진학, 기둥뿌리 뽑힐라

큰선생 → 작은선생 → 학생으로 이어지는 레슨의 먹이사슬 구조가 입시부정을 부른다

대학입시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음대 입시부정 논란의 핵심에는 개인교습(레슨)을 둘러싼 음성적 돈거래가 있다. 레슨은 음악계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지만, 한편으로는 대학 진학의 대가로 거액의 돈거래가 이뤄지는 등 숱한 입시부정 시비를 낳았다. 또 레슨을 통해 형성된 인맥이 하나의 파벌로 굳어져 음악계의 분열을 부추기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 국내 음악인들은 각종 연주회에서 완벽한 하모니를 보여주지만, 때로는 학벌 · 지연에 따른 파벌 싸움으로 분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음악계 파벌은 레슨을 매개로 형성된다.

걷잡을 수 없는 레슨비 부담

레슨은 유명 음악인을 정점으로 한 ‘먹이사슬’ 형태로 이뤄진다. ‘큰선생’(애미 선생)이라 불리는 음대 교수나 유명 연주자들은 자신이 지도하는 음대 대학원생이나 대학생을 ‘작은선생’(새끼 선생)으로 둔다. 둘의 관계는 대입 레슨을 통해 맺어진 것이다. 음대에 진학하려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는데, 학부모들은 악기상이나 음악학원 등을 통해 큰선생을 소개받는다. 그러나 큰선생을 소개받는다고 해서 무조건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명문 음대 교수 등 유명 인사들은 오디션을 통해 레슨 제자를 선발한다. 오디션을 통과했더라도 곧바로 큰선생의 지도를 받지 않고 큰선생 계보의 작은선생에게 먼저 지도를 받는다. 혹독한 조련 뒤 일정 수준이 되면 비로소 큰선생의 지도를 받을 수 있다. 큰선생은 일주일에 1시간 정도 시간을 내서 연주의 ‘골격’을 잡아주고, 잔재주 등 나머지 부분은 작은선생이 가르친다.

레슨비는 천차만별이다. 보통의 경우 큰선생은 시간당 8만∼10만원, 작은선생은 5만∼6만원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가표’의 가격일 뿐이다. 명문 음대 교수들은 시간당 최고 40만원까지 받는데 입시 때는 ‘몸값’이 더 뛴다. 게다가 대입 시즌에는 레슨 시간도 크게 늘고 일부 악기의 경우 반주자까지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학부모의 부담은 천정부지로 뛴다. 대학 진학까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레슨비로 ‘탕진되는’ 구조다.

예술계가 아닌 인문·실업계 학생의 경우 ‘중간선생’까지 두기 때문에 레슨비 부담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또 대학 진학 뒤 ‘입학 사례비’를 요구하는 큰선생들도 있어 학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만든다. 이 때문에 ‘자녀를 음대에 진학시키려면 기둥뿌리 뽑힐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한 학부모는 “큰 아이의 대입 레슨을 위해 최근 아파트 한채를 팔았다”며 “사업이 잘 안 돼 현금을 손에 쥐기가 힘들지만, 레슨비는 외상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씁쓸해했다.


△ 명문 음대에 진학하려면 ‘조기 레슨’이 필수적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의 예비학교 학생들이 지도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음대에 진학한 뒤 큰선생 계보에 포함되면 그동안 쏟아부었던 ‘본전’을 건질 수 있다. 큰선생 ‘문하’의 작은선생으로 레슨을 뛰면서 거액을 만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서울의 한 사립 음대 출신인 고교 음악교사는 “대학 다닐 때 피아노나 바이올린, 플루트 등 인기 있는 악기를 전공하는 친구들이 레슨으로 한달에 300만원까지 버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일부 큰선생들은 작은선생에게 레슨 사례비를 받기도 한다. 레슨 한건당 500만∼1천만원의 사례비가 오가는데, 사례비를 건네지 않더라도 명절이나 연말 때 감사 표시를 해야 한다. 이처럼 큰선생→작은선생→학생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은 학생이 음악을 그만두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콩쿠르에 나갈 때는 물론이고 외국 유학을 갈 때도 이 먹이사슬을 벗어날 수 없다. 유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실기점수가 교수들의 손에 달려 있고, 특히 외국 대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추천서를 써 줄 사람도 바로 교수들이기 때문이다.

음악인들의 깊은 자성을

입시부정 시비는 이 먹이사슬을 지키려는 ‘본능’에서 나온다. 대학진학 성과에 따라 레슨비와 레슨 물량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일부 큰선생들은 자기 제자를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실기시험 심사위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작은선생들도 마찬가지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 음대 대학원생은 “레슨 제자가 대학에 많이 진학해야 그 대학에 출강을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대학원생이나 연주자들도 입시에 목을 건다”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입에서 떨어진 제자들의 레슨 선생들이 담합해 그 대학이나 교수들을 음해하는 일도 있다. 한 국립대 음대 교수는 “음악계에서 이런저런 추문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신입생을 선발할 때 각 계파의 제자를 안배해서 뽑도록 노력한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변질된 레슨 문화는 국내 음악계의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킨다. 고액 레슨을 통해야만 명문 음대에 입학할 수 있는 구조는, 실력 있지만 레슨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의 진출을 막기 때문이다. 음악계 인사들은 이런 현상이 일부 음악인들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한 국립대 음대 교수의 지적은 이 현상이 결코 음악계 일부의 문제가 아님을 웅변한다. “처음에는 딱히 비리라고 할 만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입시생 몇명을 레슨하고 입시 때가 되면 대학 동문이나 선후배 교수들에게 ‘내 제자인데 실력이 좋으니 잘 눈여겨봐주십시오’ 하는 식으로 인사를 한다. 그래서 합격이 되면 미풍양속에 따라 작은 사례를 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대학에 많이 합격시키다보니 점차 레슨 학생 수도 많아지고, 선배들에 대한 감사 표시가 대가성 있는 뇌물로 발전하고, 또 사후가 아닌 사전에 돈을 건네고…. 결국 나중에는 입시부정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음악인들의 깊은 반성과 자성이 없다면 입시부정 시비는 끊이지 않는다.”

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