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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압류, 그것은 살인무기! 노조활동 무력화 노린 사용자쪽의 파렴치한 보복수단… 배달호·김주익·이해남, 그 다음은…
‘노조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가압류는 사기다!’ 이 말에 사용자나 정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난 10월17일 서울지방법원에서 나온 한 판결은 이 말이 결코 허황된 주장이 아님을 입증한다. 서울지법 민사합의42부(재판장 조수현 부장판사)는 2002년 2월 발전노조 파업사태와 관련해 한국동서발전주식회사가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발전노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회사가 제기한 31억6천만원의 손배소송에서 “파업에 따른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의 청구는 이유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신문 · 방송 광고비까지 손실에 포함
그러나 이 회사가 노조의 파업과 동시에 신청한 가압류는 당시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실제로 파업에 따른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파업에 참가한 노조원들은 적게는 3개월부터 많게는 7개월까지 부당하게 임금의 50%를 가압류당했다. 또 노조는 회사가 조합비에 대한 가압류(10월20일 현재 145억7472만원)를 풀지 않아 조합 활동에 큰 지장을 받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는 파업에 대한 손배가압류 제도에 큰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발전노조 파업 손배소송은 파업 손배가압류의 부당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판결이었다. 가압류는 민사소송에서 강제집행을 보전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소송 결과에 따라 채무자에게 손배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채무자의 재산을 미리 묶어두는 것이다. 그러나 파업과 같은 노동사건은 일반 민사사건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가압류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노동사건은 채권·채무 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손실을 정확히 산정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손배 책임이 가려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가압류는 소송결과에 관계없이 결정돼 소송기간 동안 노동자들이 큰 고통을 받는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권영국 변호사는 “발전노조 소송은 1년이 지난 뒤 파업 손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조합원들은 이미 가압류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며 “가압류는 채무자 몰래 진행되기 때문에 노조가 적절한 대응을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법원은 채무자가 재산을 빼돌려 강제집행을 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채무자에게 가압류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결국 노조는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다. 회사가 가압류 신청을 위해 산정한 파업 손실도 과장되기 일쑤다. 파업 손배소송 결과 회사가 청구한 손배액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실제로 한국동서발전회사는 파업에 따른 영업손실뿐 아니라 파업의 부당성을 알리는 신문·방송 광고비와 파업 참가 직원의 업무 복귀를 위한 교육비까지 손실에 포함해서 재판부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재판부는 회사쪽이 산정한 영업손실도 과장됐다고 판결했다. 회사쪽은 2002년 2월25일부터 4월2일까지 37일간 파업으로 48억여원의 영업손실이 났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그 기간에 대체인력이 투입돼 발전기 가동이 중단되지 않았기 때문에 손실이 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46개 업체에 790억원 가압류 물려있어
발전노조 조합원들은 2002년 4월 파업이 끝난 뒤에도 임금 가압류로 큰 고통을 받았다. 한국동서발전 등 5개 발전회사들은 발전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조합원 3172명의 임금 50%(총 182억여원)와 조합비 145억여원을 가압류했다. 이 조치로 고졸 12년차의 경우 가압류 기간 동안 월 50만원을 급여로 지급받았다. 회사쪽은 민주노총 탈퇴 등의 조건을 내세우며 단계적으로 조합원들의 임금 가압류를 해제해 지난해 9월 국정감사를 전후해 모두 풀었다. 그러나 조합비 가압류는 아직까지 풀지 않고 있다. 손배가압류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노조는 발전노조뿐만이 아니다. 민주노총 집계에 따르면 10월20일 현재 모두 46개 업체가 가압류(총 790억여원)로 고통받고 있다. ㈜효성 노조는 2001년 파업과 관련해 조합비와 임금 등 무려 280억여원을 가압류당했고, 장은증권과 한국시그네틱스는 노조원의 신원보증인의 재산까지 가압류해 노동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철도청은 법원에서 가압류가 기각당했는데도 ‘배짱 좋게’ 가압류를 풀지 않고 있다. 철도청은 지난 6월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해 조합비와 조합원 부동산, 노조명의 부동산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했으나 노조 부동산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법원에서 기각당했다. 그러나 철도청은 “가압류가 아니라 채권에 대한 상계를 적용하는 것”이라며 조합비의 67%를 매달 압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의 소송대리인 강문대 변호사는 “파업 손실액을 조합비에서 상계할 수 있는지는 법정에서 가려봐야 하는데, 철도청이 법원의 판단 없이 임의로 조합비를 상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압류 해제’미끼로 노조 탈퇴 유도
실제로 최근의 파업 손배가압류는 10년 전과 다른 뚜렷한 특징이 있다. 파업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자본의 전략이 그대로 숨어 있는 것이다. 사용자는 손배가압류를 이용해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사실상 박탈하고 있다. 지난 1999년 서울지하철공사는 파업과 동시에 조합비 15억원을 가압류한 뒤 3년째 끌어오다가 2002년 2월 단체교섭 때 6개월치 조합비를 부분적으로 풀어주겠다고 제안했다. 파업철회 조건 중의 하나로 가압류 해제 카드를 제시한 것이다. 손배가압류는 노동조합과 조합원 사이를 분열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조합원에 대한 가압류를 선별적으로 풀어주면서 조합원의 파업 불참이나 노조 탈퇴를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발전노조의 경우 회사쪽은 파업 단순 가담자인 조합원 3900여명한테 모조리 가압류 조치를 취했다가 파업기간 중에 조기 복귀한 조합원 400여명을 골라 가압류를 풀어줬다. 76억원여원을 가압류당한 건설운송노조의 경우 회사쪽은 가압류 해제를 미끼로 노조 탈퇴를 유도하고 있다. 노조활동에 적극적인 조합원에게는 더욱 무자비한 ‘채찍’을 가하기도 한다. 2002년 여름 보건의료노조 파업과 관련해 경희의료원은 노조를 상대로 5억6천여만원의 가압류, 손배소송을 청구했는데, 파업에 참가한 평조합원 가운데 43명만 따로 골라 재산 가압류에 들어갔다. 사용자는 또 법정 다툼이 장기화되는 민사소송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법원이 가압류를 받아들이고 난 뒤 정식재판은 회사쪽이 손배소송을 제기해야 시작되는데, 사용자가 이를 악용해 소송을 가능한 한 뒤로 미루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노조는 가압류에 따른 노조원들의 동요로 와해되고 만다. 실제로 대구 동산의료원의 경우 1999년 파업에 대한 손배소송을 2001년에서야 청구했다. 그동안 노조원들은 병원쪽의 가압류 압박으로 엄청난 심리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파업 손배가압류는 경제적 약자인 노동자 개인을 노동시장에서 사용자와 동일한 위치로 취급하겠다는 자본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노사관계를 과거의 ‘노동자 집단과 사용자’에서 ‘노동자 개인과 사용자’로 변화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손배가압류는 자본의 이런 의도를 가장 잘 실현시키는 제도다. 개인들간의 사적 거래를 규정하는 민사상의 법 논리로 노사관계를 재편해 경제적인 힘으로 노조를 제압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과거에는 임단협 타결과 함께 민·형사상 고소, 고발을 전면 취하했는데, 최근에는 가압류와 손배소송을 선별 취하하면서 아예 노조를 무력하게 만들려고 한다”며 “자본의 손배가압류 전략은 한마디로 ‘충격과 공포’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배가압류가 노조 간부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면 이는 단순히 ‘충격과 공포’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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