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노조 간부들의 ‘거대한 고독’ ‘노조 지키기’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현실… “여론의 돌팔매질 맞을 때가 가장 아파”
“이번엔 제 차례가 될 것 같습니다.” 지난 10월23일 노조탄압 등에 항의해 분신한 금속노조 세원테크지회 이해남(41) 지회장이 노조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그는 “살아 숨쉬면서 참고 견디기에는 너무나도 힘들고 괴롭다”고 절규했다. 이 지회장은 또 유서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야 하느냐. 내가 마지막 희생자가 돼야 한다”며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구속·수배·해고되는 나라에서 더 이상은 살아갈 희망을 갖지 못할 것 같다”고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대기업 노조도 견디기 힘들다
한때 노조 간부였던 두산중공업 노조간부 배달호씨 분신자살, 한진중공업 노조 김주익 지회장 자살, 그리고 세원테크 노조 이 지회장 분신…. 올 들어 노조위원장 또는 노조간부들이 막다른 골목에 내몰려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는 비극이 잇따르고 있다. 무엇이 한국의 노동조합 간부들을 이처럼 죽음의 결단으로 내모는 것일까? 지금 한국사회에서 노동조합 간부로 산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고 김주익 지회장은 유서에서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인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고, 보수언론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라며 몸서리쳤다. 금속노조 소속 노동자들은 오래 전부터 한진중공업 사업장 앞에 몰려가 사용자의 성실 교섭을 통한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하지만 공장 울타리 안에서 회사쪽은 이런 목소리에 전혀 귀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가압류·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노동조합과 노동조합 간부들을 더욱더 궁지로 내몰았다. 사용자의 노조 파괴는 두산중공업을 비롯해 여러 사업장에서 폭로되고 있는 이른바 ‘블랙리스트’에서 극치를 보인다. 조합원들을 성향별로 분류한 뒤 노조 활동에 적극 참가한 조합원한테는 의도적으로 특근·휴일근로를 배제시켜 경제적 궁핍을 강요한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생계임금을 확보하려면 정상 근무시간 외에 특근·연장노동을 해야 하는데, 한동안 특근·야근을 따내지 못한 노동자들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해 노동조합을 이탈하거나 노조에 등을 돌리게 된다. 물론 사용자들은 노조에 냉담한 노동자에게는 일감을 더 배려해주는 방식으로 철저한 ‘분할지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해고·구속·징계라는 전통적 노동탄압에 이어 노동조합과 조합원에 대한 가압류·손해배상청구 및 일감 배제라는 새로운 형태의 통제로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파업, 어디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식이다.
이제 그만 손 씻어라?
이처럼 돈으로 노동자들을 갈라놓는 사용자들의 노조 와해 작업 앞에서 현장 조합원들은 갈등 속에 흩어지고 만다. 자연히 사용자에 맞서 임금 등 노동조건과 고용안정을 지켜야 하는 노조 지도자들은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벌어야 한다. 산별 금속노조 김승호 국장은 “눈에 보이는 사용자들의 탄압도 문제지만 여론의 고립 속에서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는 것이 노조 간부들의 처지”라며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거대한 벽이 노조 간부 개인의 비극적 결단을 낳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사람의 노동자이자 가장인 노조 간부들이 조합원들의 분열과 가압류·손해배상청구에 따른 극심한 궁핍과 가정 파탄 속에서 외로운 결단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해남 지회장이 분신한 세원테크를 보자. 지난 2001년 10월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회사쪽은 즉각 용역깡패를 동원해 조합원들을 현장에서 내몰았다. 지난해부터는 새 경영진을 영입해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만들어 착착 실행에 옮겼다. 회사쪽은 파업 효과를 완전히 무력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물량을 이원화하는 교묘한 전략까지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애초 조합원 70여명이던 세원테크노조는 20여명만 남는 절망적인 상태로 빠져들었다. 회사쪽의 노조 파괴 공세가 날로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이 지회장은 노조를 책임진 간부로서 심한 고뇌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진다. 노동조합의 파업은 공권력이 투입되기 이전에 ‘여론’이라는 이름에 의해 먼저 매도당하기 일쑤다. 상당수 노조 간부들은 이런 여론몰이 속에서 지나온 삶에 대한 고민까지 하게 된다. 민주노총 상근간부 박아무개씨는 “친구들이 ‘너 참 끈질기다. 여지껏 노동판에 있냐’며 미친 놈 보듯 한다. 이제 그만 손 씻으라며 무슨 조폭처럼 보기도 한다”고 허탈해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위해 자기 인생을 희생했는데도 ‘노동조합이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식으로 사람들이 비난하는 모습을 보면서 심각한 갈등에 휩싸인다는 것이다.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구속·해고·수배라는 고통은 참을 수 있지만 여론의 돌팔매는 견디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에서 노동 문제는 오직 파업투쟁이 벌어졌을 때만 주목을 끈다. 사용자와 정부에 사태 해결을 촉구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고, 노동조합의 ‘사회적 고립’ 속에서 결국 노조 간부 개인의 비극적 결단으로 해결을 시도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동지들의 분열과 대립’에 절망
예전에는 깃발만 꽂아도 조합원들을 동원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용자의 분할지배 전략에 노출된 조합원들을 모아 투쟁하는 것마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가압류·손해배상청구로 대표되는 사용자의 노동조합 와해 공세와 고용불안이 횡행하는 경제위기가 겹치면서 노동자들이 파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압류로 노조의 손발이 묶이고,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조합원들이 노조로부터 등돌리면서 조합활동은 위축되고 노조 간부의 입지도 갈수록 궁지로 몰리고 있다. 목숨조차 걸지 않으면 조합원들의 고용과 임금, 그리고 노조를 지켜내기 어려워진 것이다. 최근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이 금속노조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노조 간부 활동에서 가장 여러운 점을 ‘동지들의 분열과 대립’(40%), ‘가정적 어려움’(15.6%) 등이라고 답했다. 김승호 국장은 “90년대 초 전노협 시절에는 강한 탄압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곤 했지만 지금은 노동조합마다 사용자들로부터 지속적인 잔매를 맞으면서 노동조합과 노조 간부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패배하지 않고 동료들을 지키려면 몸을 던지는 격렬한 저항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막다른 길로 내몰리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민주노총 이시정 실장은 “‘이제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 노조 간부인 내가 희생하지 않으면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다’고 호소하는 사업장이 많아지고 있다”며 “하루빨리 죽음의 행렬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김주익·이해남·배달호가 사업장마다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