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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가 ‘불순물’이냐 접수하자마자 ‘온라인 필터링’ 으로 걸러내…기업들의 지방대 차별 천태만상
“뭐냐고요. 도대체 몇 군데를 지원했는데 면접 보라고 연락 오는 곳이 없으니…. 지방대 출신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생긴 게 죄송해서 이력서를 보자마자 바로 접어버리는지 이유라도 알아야 덜 억울할 게 아닙니까.”(폐건전지) 인터넷 채용정보업체의 게시판엔 취업을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지방대생들의 절절한 사연들이 넘쳐난다. 522번째 이력서를 낸 끝에 드디어 한 지방 사립대 직원으로 합격했다는 ‘희소식’도 있다. 영수증을 모아봤더니 이력서를 내는 데 들어간 우표값(빠른등기)만 86만6520원이었다고 한다. 사무자동화, 전산기계 등 8개의 자격증을 땄고 800점대 토익점수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그랬다. “그러기에 좋은 대학 갔으면 되지 않았느냐”고 눈을 흘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 지방대 국문학과를 나온 이 네티즌(hhw7283)은 이렇게 되묻는다. “그럼 지방엔 대학을 만들지 말지 그랬어요.”
SKY 40점, 지방사립대 20점…
지방대 졸업생들이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대기업이 지방대 출신을 차별한다는 구체적 물증은 없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국내 유수 대기업의 채용업무 담당자 8명과 접촉해봤다. 지방대생 차별 여부를 솔직히 확인하기 위해 업체명은 익명을 전제로 했다. 그 결과 8명 가운데 5명은 서류전형 과정에서 지방대 졸업자에 대한 차별이 있다고 털어놨다. 특히 한 식품업체의 인사담당 관계자인 ㅇ씨가 털어놓은 얘기는 매우 구체적이었다. 구직자들이 온라인으로 원서를 접수하는 순간, 출신학교와 학점, 어학점수 따위를 점수로 매긴 뒤 특정 점수 이하의 지원자를 자동적으로 걸러내는 이른바 ‘온라인 필터링 시스템’(on-line filtering system)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공채를 하면 평균 경쟁률이 100 대 1이 넘는다. 얼마 전 30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했는데 4500여명이 지원했다. 구체적으로 밝히긴 곤란하지만 온라인 필터링 시스템이 있어서 구직자들이 입사지원서를 내는 순간, 출신학교와 학점, 어학성적, 자격증 등에 따라 순위가 부여된다. 그러다 보니 채용인원의 10배수 안에 들지 못하면 원서를 검토하지도 않는다. 보통 10배수 안에 드는 지원자 가운데 지방대 출신은 20% 미만이다.” 이 기업의 경우 30명 채용계획에 4500명이 응시했으니, 300등 안에 들지 못한 4200명의 지원자는 원서를 검토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했다는 이야기다. 구직자들이 수천명씩 몰리는 상황에서 모든 지원자의 원서를 일일이 검토하기가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채용상의 번거로움이 이유되나
언뜻 보면 객관적인 것 같지만 관건은 결국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는 것이다. 온라인 필터링 시스템에서 학교 항목의 배점이 가장 높아서 제아무리 학점이 높거나 어학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지방대를 나오면 좋은 점수를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니 ‘대한민국은 학벌 카스트제도가 존재하는 나라’라는 푸념이 나오는 것이다. 고3 시절의 수능시험 성적이 카스트의 등급을 나누는 기준점인 셈이다. 지방대를 차별하는 사례는 이 밖에도 많았다. 한 정보통신업체 채용 담당자인 ㅇ씨는 “학교별로 코드를 정해놓고 점수를 차등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원자가 인터넷으로 졸업한 학교 이름을 써넣는 순간 점수가 자동으로 매겨지는 것이다. ㅇ씨는 “같은 업계라 하더라도 회사의 분위기나 채용 방침에 따라 학교별로 부여하는 점수가 다르다”고 설명했지만, 구체적 대학별 적용점수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한 유통업체에서 채용 업무를 맡고 있는 ㄱ씨도 지방대 출신에게 서류전형의 관문은 바늘구멍만큼이나 좁다고 말했다. “출신학교에 따라 점수를 차등하는 것은 위법이다. 하지만 수많은 구직자들을 변별해내는 일차적 기준은 학교다. 일단 지방대 출신이면 아주 특별한 경력이나 자격증이 없을 경우 서류전형에서 탈락한다. 다만, 유통업체의 특성상 군장교 경력이 있으면 지방대 출신이라도 우대한다.”
또 다른 정보통신업체 관계자 ㅅ씨는 “최근 2년 동안엔 공채를 하지 않고 경력사원 위주로 수시채용을 했는데 학벌보다 경력을 중시하므로 지방대라고 소외되는 경우는 없다. 다만, 공채를 할 경우엔 솔직히 지방대 출신이 서류전형을 통과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기업들이 채용 과정에서 지방대를 차별하는 이유로 채용상의 번거로움을 내세운다는 점이다. 학력차별을 시인한 대기업체 채용 담당자들도 한결같이 ‘원서를 일일이 검토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제약’을 이유로 들었다. 겉으론 업무상의 번거로움을 내세우지만, 여기엔 지방대 출신들이면 무조건 업무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차별적 시선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출신학교를 평가 기준으로 삼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수시채용제도에선 차별 적어
지난해 국가인권위는 입사지원서에서 차별적 요소를 삭제하도록 권고했다. 이 때문인지 원서에서 학교 항목을 없애겠다는 기업도 나왔다. LG CNS와 SK건설, 동양매직, 한국토지공사 등이다. 삼성전자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평가도구를 마련해 평가에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여전히 입사원서에 학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나마 수시채용제도에선 학력차별이 개입할 여지가 적어진다. 지방대에 대한 차별을 부인한 3개 기업에선 대부분 수시채용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외국계 기업의 ㅇ씨는“사내추천제를 통해 수시로 인력을 확충하므로 지방대 출신의 차별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제조업체 관계자 ㅅ씨는 “영업부문에선 지방대 출신의 차별이 없다”고 말했고, 식품업체 관계자 ㅊ씨는 “몇년 전부터 학교에 따른 점수 차별을 두지 않고 있는데, 이는 출신학교와 입사 이후 성과가 정비례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벌철폐를 촉구하는 시민단체인 ‘학벌없는사회’(www.antihakbul.org)의 운영위원인 정세근 충북대 교수(철학)는 “지방대 학생은 면접조차 못 보니 지원자가 줄어들고, 지방대가 망하면 지방이 붕괴한다”며 “행여 지방이 망하고 서울만 남아도 우리가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진정으로 학벌 문제를 생각할 때다”라고 지적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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