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02월18일 제49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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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누가누가 먹었나

삼성이 건넨 불법자금 282억 채권향방… 4월 총선에 영향 끼치는 ‘대형사고’될 수도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한나라당을 결정적으로 보낼 수 있는 ‘쐐기포’는 아직 남아 있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막바지에 이른 요즘 검찰 안팎에서 나오는 얘기다. 특히 삼성그룹이 한나라당에 채권 형태로 건넸다는 170억원의 불법자금이 나오면서 이같은 전망은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 지난 2월13일 오후 서정우 변호사와 이재현 한나라당 전 재정국장을 면회하고 돌아온 심규철 의원(가운데)과 김용균 의원은 삼성으로부터 받은 돈중 ‘채권 170억원’은 대선 직후 반납했다고 밝혔다.(이용호 기자)

중수부장 “말 못할 사정이 있다”

먼저 ‘170억원’을 대하는 검찰의 태도에는 뭔가 의뭉스러운 데가 있다. 검찰은 170억원의 추가 불법자금 수수 사실을 공개하면서 전달경로와 전달방식을 밝히지 않았다. 지난 수사에서 이미 드러난 112억원어치의 국민주택채권의 경우 ‘삼성그룹 → 서정우 변호사 → (김영일 전 사무총장) →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기본적인 전달경로와 ‘책떼기’라는 전달방식이 공개됐던 것과 비교해볼 때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면서 검찰은 김인주 삼성 구조조정본부 사장을 출국금지 조치하고 조만간 소환 조사하기로 했으며, 해외출장 중인 이학수 구조조정본부 부회장에 대해서는 입국시 통보조치한 사실만 밝혔다. 또 170억원에 대해서는 “전부 채권이고 번호가 확보돼 있다”는 게 수사팀의 설명이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이와 관련해 검찰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한 브리핑에서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털어놨다. 전달경로나 전달방식을 모두 공개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다는 고백인 셈이다. 그는 최근 앞으로 전개될 수사 내용과 관련해 “(한나라당쪽인지 옛 민주당쪽인지는 특정하지 않았지만) 크고 예민한 것이 남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불법 대선자금 연루 정치인 가운데에서 앞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대상자가 더 나올 것”이라는 말도 했다. 수사의 큰 줄기에 대해 출입기자들에게 한두 마디씩 툭툭 내뱉는 그의 스타일에 비춰볼 때 최근 언행은 심상찮은 사실이 불거져나올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나라당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칠 수 있는 ‘대형사고’는 삼성쪽에서 건넨 282억원어치 채권의 향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들 채권이 한나라당의 누구에게 전달됐고, 이 가운데 얼마나 현금화됐으며, 최종적으로 어떻게 쓰였는지가 가장 핵심적인 관심사다. 채권의 향배와 관련해서는 “김영일 전 사무총장한테서 의미 있는 진술이 나왔다”는 안 중수부장의 최근 언급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은 170억원의 추가 수수 사실이 불거지자마자 기자회견을 열고 “채권 282억원 가운데 170억여원을 삼성쪽에 돌려줬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불법자금 수수에 대해 ‘자백’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삼성은 왜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가기도 전에 대선자금을 건넸을까. 이 점은 이번 수사가 모두 끝난 뒤에라도 가장 의구심이 드는 대목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박승화 기자)

이같은 신속한 대응에 비춰보면 한나라당에서도 삼성쪽에서 받은 채권의 전체 규모를 미리 알고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불법자금 수수 사실을 인정하는 데 상당히 인색했던 한나라당이 신속하게 그 사실을 자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이 정도 되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예측이 검찰 안팎에서 대두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안 중수부장은 수사 초기 “선거 때마다 거액의 선거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하고 한밑천 잡는 오래된 관행이 있다”고 언급해 정치권을 긴장시킨 바 있다.

특수부 경험이 풍부한 한 검사는 “수사가 진행되는 양상을 보면 4월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 곧 불거져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채권이 삼성쪽에 반환됐더라도 그 시기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이뤄진 뒤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반환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형사처벌은 물론 도덕적인 비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변칙상속 보험’ 미리 들어놓은 걸까

한편 170억원과 관련해서는 불법자금의 전달 시기도 관심거리다. 지금까지 밝혀진 기업들의 불법 대선자금은 대선에 임박한 시점에 전달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번 170억원어치의 삼성쪽 채권은 대선을 5~6개월 앞둔 시점인 2002년 7, 8월께부터 한나라당쪽에 건네졌다는 게 수사팀의 설명이다. “삼성은 왜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가기도 전에 대선자금을 건넸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든다. 이 점은 이번 수사가 모두 끝난 뒤에라도 가장 의구심이 드는 대목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현재 이와 관련해서는 몇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들이 제기되고 있다. 전달 시점이 본격 선거운동이 벌어지기 훨씬 전이라는 점 때문에 이 자금이 한나라당의 공식 라인을 거치지 않고 일부 정치인들의 ‘사금고’로 직행했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대선에 직접 쓰이지 않고 다른 용도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당시 서울지검 특수2부가 수사 중이었던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씨 변칙 상속 수사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삼성그룹의 아킬레스건인 그룹 후계구도를 안정화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인 검찰 수사에 대해 ‘보험’을 들어놓은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회창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던 시기였다. 당시 검찰은 법학교수 43명이 2000년 6월 “이 회장이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저가에 발행해 재용씨에게 넘겨주는 방식으로 편법 증여했다”며 이 회장 등을 상법상 특별배임 등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하면서 에버랜드 등 삼성 계열사로부터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검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