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서청원 후폭풍’ 이렇게 클 줄은 예상 못해… 소장파들 거사로 연쇄파장 소용돌이
김주명/ 〈CBS〉 정치부 기자 jmkim@cbs.co.kr
서청원 의원 석방결의안 처리의 후폭풍에 한나라당이 흔들리고 있다. 당 개혁이 지지부진하던 터에 서 의원 석방 사건이 한나라당에 대한 실망감 확산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다.
사건 발발 이전까지 서 의원 석방의 후폭풍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박진 대변인은 “‘인정’과 ‘사정’을 따라가다보니 ‘대의’와 ‘명분’에 대해 눈이 멀었다”고 뒤늦게 자책했다. 어느 의원은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와 식구들로부터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는 질타를 듣고서야 비로소 사건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서청원 의원 측근들도 “어느 정도 역풍은 예상했지만 이렇게 사태가 커질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전말은 이러했다. 서청원 의원이 구속되기까지 한나라당은 손을 놓고 있었다. 서 의원이 구속된 다음날 아침 당사에서 열린 상임운영위에서는 이와 관련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반면에 민주당은 조순형 대표가 앞장서 한화갑 전 대표의 구속을 몸으로 막고 나섰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그렇다면 우리도…”식으로 자극을 받았다. 이 무렵 서 의원은 면회차 구치소를 찾은 최병렬 대표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괜히 민주당 따라 하다가…
“민주당은 당 지도부와 당원들이 나서 온몸으로 전직 대표의 구속을 막는데 한나라당은 이게 뭐냐.” 이런 가운데 홍사덕 원내총무가 2월1일 “한화갑 전 대표가 구속된다면 명백한 민주당 죽이기이자 야당 탄압인 만큼 한화갑 전 대표에 대한 석방결의안을 제출할 것이며, 아울러 서청원 전 대표 석방결의안도 함께 낼 것”이라고 총대를 메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화갑 전 대표의 구속이 무산되면서 홍 총무는 석방결의안 제출을 늦췄다. 그러자 서 전 대표의 비서실장 출신인 박종희 의원이 지도부의 대처가 ‘미온적’이라며 2월6일 김용학·맹형규 의원 등 의원 31명의 동의를 받아 동의안을 독자적으로 제출했다. 6일까지 제출해야 9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고, 9일 처리하지 못하면 다음 본회의까지 1주일 이상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9일 의사일정에는 서 의원 석방결의안이 상정되지 않았다. 홍사덕 원내총무는 서 의원 석방결의안을 처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박종희 의원은 의사일정 변경을 신청해 석방결의안을 상정했고, 당 지도부는 제동을 걸지 않았다. 유일하게 박관용 국회의장이 만류했다. 박 의장은 박종희 의원에게 “서 전 대표를 도우려는 충정은 이해하지만 오히려 서 전 대표를 죽이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 말은 먹히지 않았다.
최병렬 대표는 자유투표를 지시했다. 찬성할 수도, 그렇다고 막기도 어렵다고 보고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결국 서 의원 석방결의안은 찬성 158, 반대 60이라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가결됐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날 다룰 예정이었던 이라크 추가파병 동의안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은 처리가 연기됐다. 해야 할 일은 하지 못하고 해선 안 된 일을 한 꼴이 된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서 의원 석방결의안 처리 과정을 보면서 한나라당의 위기가 단순히 우연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석방결의안을 주도한 의원들은 물론 당 지도부까지 파장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한나라당이 여론을 수렴하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증거라는 것이다.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석방결의안이 통과된 그날 저녁부터 한나라당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네티즌의 비난이 빗발쳤다. 한나라당 정태윤 사이버 위원장은 “당 공식 홈페이지에는 ‘차떼기’가 밝혀진 날만큼 많은 비난의 글이 올라왔고 그 강도도 훨씬 강했다”고 말했다.
서청원 계보의 철없는 준동 탓?
파장이 확대되자 남경필·오세훈·원희룡 의원 등 소장파 의원과 원외위원장 11명은 2월11일 최병렬 대표의 퇴진까지 요구했다. 소장파 의원들은 성명에서 “최 대표와 지도부는 당의 환골탈태에 온몸을 던지는 것이 소명이었는데, 지도부는 구태정치를 재연하는 과오를 반복하고 있다”면서 “최 대표는 죽어야 사는 자세로 당의 재창당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데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 대표는 남경필·원희룡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거친 언사를 써가며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최 대표는 “도대체 뭘 희생하란 것이냐”며 “내가 서 전 대표와 사이가 좋았다면 석방안을 막았겠지만, 그런 것까지 막으면 ‘속이 좁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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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식구 건들지마!” 국회의원들은 서 의원 석방결의안 처리 과정에서 뜨거운 ‘동지애’를 과시했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홍역을 앓고 있다.(이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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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파의 거사는 연쇄 파장을 몰고 왔다. 홍사덕 원내총무는 12일 “소장파 의원들이 당 진로와 관련해 걱정 어린 충고를 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원내 대책과 관련된 얘기였다”며 총무직을 사퇴했다. 박진 대변인도 이날 오후에 사표를 던졌다. 박 대변인은 “대변인으로서 서 의원의 석방결의안 가결에 대해 당의 입장을 합리화하고 당위성을 주장한 것에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쪽은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당의 위기가 ‘서청원 계보의 철없는 준동’ 탓이라며 그쪽에 책임을 넘김으로써 사태를 수습하자는 구상을 엿보이고 있다.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이 2월13일 석방결의안 발의를 주도한 박종희 의원의 공천 배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맥락으로 해석됐다. 당내에서는 박 의원의 공천 배제 검토는 궁극적으로 서 의원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서 전 대표를 압박해 불출마 선언 등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박 의원은 “국민적 분노를 감안한 당의 고심 어린 결정에 모든 것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함께 결의안을 발의했던 의원들은 “지도부의 지도력 부재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서청원 의원은 정계은퇴까지 검토중
서 의원은 석방 다음날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고 국회 본회의 표결에 참석한 것 외에 자택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그의 한 측근은 “차라리 감옥에서 나오지 않은 것만 못하다”며 당혹스러움을 내비쳤다. 서 의원은 한때 의원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입장을 표명하거나 국회에서 신상발언을 하는 문제도 검토하다가 일단 여론이 수그러들기를 기다리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서 의원은 석방안 파문으로 사실상 정치적 재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적으로는 총선 불출마뿐 아니라 정계 은퇴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 의원 사건 이후’를 둘러싼 근본적 해법을 놓고도 당내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전략가인 윤여준 의원과 소장파들은 당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총선 전 조기 전당대회와 대표의 불출마 선언 등 충격적 요법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최병렬 대표는 자신이 물러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라며 부정적이다. 최 대표의 측근과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은 조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을 해법으로 내놓고 있다. 창당 이래 최대의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해소책을 둘러싼 시각 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당내에서는 공천심사위원인 소설가 이문열씨의 진단이 지금 그대로 현실화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씨는 “한나라당은 침몰하고 있다. 아예 자폭하라고 권유하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지난 대선 직후 한나라당은 “선거에 진 것이 아니고 시대에 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어쩌면 이번 총선이 끝난 뒤 한나라당은 똑같은 결론을 다시 한번 내리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