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송금 사면 검토 속 노무현-김대중 관계 복원 가능성… 총선 표몰이 경쟁의 강력한 변수로 떠오르다
참여정부가 대북송금 관련자의 사면을 검토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오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관계복원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과연 둘 사이의 응어리는 풀릴 것인가. 노무현+김대중의 가능성은 총선 표몰이 경쟁의 강력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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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관계가 ‘진정으로’ 복원될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관계 복원’ 앞에 ‘진정으로’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은 두 사람 사이가 외견상 딱히 나쁘지 않은 듯하면서도 내놓고 표현하기 어려운 물밑 긴장이 감돌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문제는 최근 청와대가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1주년(2월25일)을 기해 대북송금 관련자 사면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관심이 높아진 상태다.
‘노-김’ 관계에 담긴 정치적 의미
‘노-김 관계’는 일차적으로 우리 사회의 대북 평화정책 지지세력의 분열상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잘 알다시피 노무현 정부는 출범 이래 외교안보 정책에서 국내적으로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한 편이다. 대통령의 방미외교를 비롯해 이라크 전쟁 파병, 용산기지 이전에다가 최근의 외교부 장관 경질 파문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외교안보 행보 하나하나가 끊임없이 논란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그 원인이 대북 평화정책 지지세력의 분열에서 비롯된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김대중 정부 시절만 해도 거칠게 말하면 햇볕정책 지지세력 대 냉전회귀 세력 정도로 양분됐던 국내 여론이, 참여정부 들어서는 3분 또는 4분 양상으로 분열과 대립이 심화하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추진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한 것을 계기로 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 일부가 떠나갔다”고 문제의 시발점을 진단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볼 때 ‘노김 관계’에 담긴 정치적 의미도 무시하기 어렵다. 일부 호남인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자신을 ‘배신자’로 공격하는 것은 노 대통령을 가장 괴롭히는 문제였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은 호남 방문과 호남 지역 인사들과의 숱한 간담회 등을 통해 ‘무고함’과 호남 및 기존 민주당 지지자들에 대한 나름의 애정을 주장했지만 시원하게 효험을 확인하진 못해온 상태다.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 사이의 어정쩡한 관계가 그 배경에 자리잡고 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노김 관계’의 복원 여하에 따라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표몰이 경쟁에 끼칠 영향은 물론이고 어쩌면 두 당의 분열 상처를 치유하는 촉매가 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노김 관계’ 균열의 연원은 역시 대북송금 사건 처리 문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 당선자 시절과 대통령 취임 초기에 양쪽의 생각이 미묘하게 부닥쳤으며, 거기에 이러저러한 필연과 우연이 뒤얽혀 일을 잔뜩 꼬이게 만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노 당선자 진영의 최대 고민은 대북 송금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였다. 한나라당의 대북 뒷거래 의혹 제기로 여론이 들끓던 터였으며, 새 정부로서는 부담을 털고 홀가분하게 출범하고 싶은 생각도 강했다. 이 무렵 임동원 외교안보특보는 노 당선자에게 업무보고를 통해 대북송금 사건의 내막을 일정한 수위에서 브리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노 당선자쪽은 “신문에 나는 수준 이상의 알맹이 있는 브리핑은 없었다”고 대외적으로 설명했다. “새 정부가 부담을 안으려 해도 뭘 알아야…”라는 불만도 당선자 진영에서 터져나왔다. 이런 가운데 당선자 진영 인사들은 “국민의 정부 문제는 국민의 정부에서 해결해야…”라며 공개적으로 김 전 대통령쪽을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김 전 대통령쪽의 서운함은 여기에서 싹트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의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뒷날 사석에서 이렇게 당시 상황을 전했다. “남북정상회담 같은 고도의 외교안보 행위는 어차피 극소수만이 알고 있을 수밖에 없는 문제다. 새 정부의 인수인계라고 해서 모든 것을 낱낱이 고하기 어려운 일도 있는 법이다. 우리는 비밀을 무덤까지 갖고 가려고 했다. 남북관계의 장래와 국익을 위해 그렇게 판단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압박에다 새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가 맞물린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은 결국 퇴임 열흘 전인 2월14일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직접 대국민 해명을 시도한다. 2월5일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전부 공개하는 것은 국익에도, 남북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버티다가 결국 떼밀리고 만 것이다. 그러면서도 김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입장만은 계속 견지했다.
특검수사 진행… 참담했던 DJ
새 정부가 출범한 3월 들어선 한나라당이 주도해 의결한 특검법을 수용·공포할 것이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냐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당시 분열 이전의 민주당은 당론으로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으며,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한나라당의 힘만으로는 국회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의결을 관철할 수적 우위까지는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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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6월25일 열린 대북송금 특별검사팀의 수사 결과 발표.(한겨레 강창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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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은 수용이냐 거부권 행사냐를 결정할 운명의 국무회의장에 들어설 때(3월14일)까지도 최종적 결론을 내리지 않았던 것으로 여권 핵심관계자들은 전한다. 이런 가운데 국무위원들간의 토론에서도 발언자 8명 가운데 7명이 거부권 행사를 주장함으로써 거부권이 행사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잡혔다.
그러나 이 순간 한나라당과 민주당간에 이미 의결된 특검법을 일부 수정하자는 합의가 이뤄졌다는 쪽지가 국무회의를 주재 중인 노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당시 문희상 비서실장은 가슴이 ‘툭’ 내려앉았다고 한다. 특검 거부론을 주장해온 문 실장으로서는 이같은 상황보고를 접수하고도 보고를 미루던 터였는데, 자기 지시를 받지 못한 다른 실무자가 쪽지를 넣어버렸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당시 남북정상회담의 본질은 훼손하지 않되, 절차상의 문제점은 규명하자는 ‘조건부 특검론’을 주장하였는데 문제의 쪽지는 그 주장에 ‘논거’를 제공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런 ‘우연’까지 겹친 가운데 특검법은 결국 공포됐다. 또한 노 대통령이 기대했던 여야 정치권의 특검법 수정을 위한 재협상은 그뒤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대신에 특검수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노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시종일관 △북한과의 ‘외교적 신뢰’ 훼손 불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조사 불원 △자금조성 또는 절차와 관련해선 김 전 대통령의 측근까지 철저 조사 등의 원칙을 견지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로써 국민들의 의혹을 해소하고 남북관계의 투명성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또한 정권 출범 초기에 야당이 주도해 의결한 첫 법률안에 협력함으로써 상생의 국정운영을 기대한 측면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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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검 조사를 받기 위해 승용차를 타고 청사로 들어서는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DJ는 그에게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다.(한겨레 강창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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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특검수사가 진행되면서 김 전 대통령은 참담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동교동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노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은 지키되, 측근에 대해서는 철저 수사를 공언했다. 그러나 정상회담은 김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측근들이 준비한 것 아니냐. 김 전 대통령과 측근은 분리될 수 없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이 수사를 받는 꼴이 되고 말았으며, 정상회담의 대의는 회복이 불가능하게 훼손되고 말았다.”
노 대통령의 진솔한 소회 표명 필요?
김 전 대통령은 실제로 지난해 6월 대북송금 특검 수사기한 연장 문제가 대두되자 “차라리 내가 특검에 출두해 직접 조사를 받겠다”는 결심을 주변에 밝히기도 했다고 한다. 주변의 만류로 마음을 바꾸긴 했지만, 김 전 대통령의 분노와 상실감이 그만큼 깊었던 것으로 동교동 사정에 밝은 관계자들은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6월12일 한국방송 대담에서 “국가와 경제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부정 비리가 없음에도 사법처리의 대상이 된 것에 당시 책임자로서 가슴이 아프다”고 상황 전개에 대해 공개적으로 유감을 밝혔다.
그 뒤 김 전 대통령 문제는 노 대통령쪽에도 깊은 응어리가 되었다고 한다. 대북송금 특검 수용 당시에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여론이 흘러가면서 결과적으로 김 전 대통령에게 상처를 안겼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한 측근은 “노 대통령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은 대선후보가 되기 이전이나 후보 시절이나 대통령이 된 뒤에나 한 차례도 변함이 없었다. 노 대통령은 빈말을 하지 않는 솔직한 사람 아니냐”라고 말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관심과 존경을 기회 있을 때마다 표시하기에 이른다. 지난해 8월10일 노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이 만해대상 평화부문을 수상하자 직접 전화를 걸어 “기쁜 소식입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최근 텔레비전에 나와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건강해 보여 마음이 놓였습니다”라고 안부의 말을 전했다. 9월 초에는 김 전 대통령의 아들 홍업씨가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집에서 추석을 보내도록 했으며, 이에 김 전 대통령은 추석 선물을 전달하러 동교동 자택을 찾은 서갑원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직접 만나 격려하는 화답을 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11월3일 ‘김대중 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해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적 지도자”라고 칭송했으며, 김 전 대통령은 “노 대통령의 정책이 성공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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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2월14일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대북송금 파문과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대북송금 특검은 DJ의 분노와 상실감을 깊게 만들었다.(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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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노김 관계’의 앙금은 걷혀가는 듯했다. 그러나 속사정은 그게 아니었다. 동교동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김대중 도서관’ 개관식 얼마 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노 대통령의 도서관 개관식 참석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이벤트는 이벤트일 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동교동 “박지원씨를 석방하라”
근본 문제가 무엇인가를 묻자, 이 인사는 “대북송금 특검 수용으로 훼손된 정상회담의 대의와 무너진 명예에 대한 원상회복이 핵심”이라며 “결자해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 관련 특검 수용이 꼭 맞는 것은 아니었음을 노무현 대통령이 (적절한 표현으로) 언급하는 게 필요하다”고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특검 수용 당시 의도했던 바와 다르게 상황이 흘러 결과적으로 정상회담의 대의명분이 훼손된 점과 관련해 노 대통령의 전향적인 소회 표명을 기대한다는 뉘앙스인 셈이다.
동교동 사정에 밝은 이 인사는 이와 함께 “정상회담 실무를 담당한 측근들, 특히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 풀려나야 한다. 박 전 실장에게 적용된 현대 비자금 150억원 수수 혐의는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청와대가 검토 중인 대북송금 관련자 사면 방침에는 ‘노김 관계’ 복원과 관련해 나름의 의미와 한계가 함께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사면 방침은 애초 지난해 크리스마스 특사를 전제로 지난해 11월부터 검토하다가 오는 2월25일 노 대통령 취임 1주년 시행으로 일단 가닥을 잡고 있다고 한다. 대상은 임동원 전 외교안보특보와 이기호 전 경제수석, 최규백 전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 박상배 전 산은 부총재,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등 6명이다. 박지원 전 비서실장은 150억원 수수 사건과 병합돼 있어 난점이 있다고 한다. 박 전 실장을 제외한 6명 중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 중인 일부에 대해서는 경우에 따라 본인들과 접촉해 상고를 취하하도록 종용한 뒤 사면을 앞당기는 문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청와대 방침에 나름의 의미가 엿보이는 데는 사면 검토의 취지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특검을 수용할 때는 국민들이 절차 문제와 실체적 진실 따위를 알고 싶어했던 것 아닌가.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궁극적 목적 때문이라면 과정상의 문제로 실정법상 처벌을 받더라도 사회적으로는 면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관련자 사면이라는 국정 행위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의 대의를 ‘복권’시켜야 한다는 원칙을 청와대가 구체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쪽의 김한정 비서관이 청와대의 사면 방침에 ‘노코멘트’로 일관하는 것을 보면, ‘노김 관계’의 ‘진정한’ 복원을 위해 뭔가 추가적인 과제가 더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듯도 하다. 그것이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거론하는 ‘노 대통령의 진솔한 소회 표명’이 될지, 아니면 박지원 전 비서실장 문제가 될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대북 평화정책의 앞날과 ‘노김 관계’가 상당 부분 연동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어떤 방향으로든 실타래가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 두 진영 모두에서 강하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글/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표지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 청와대사진기자단
표지디자인/ 장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