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
햇볕정책 지지세력 ‘분열 치유’ 절실… 노 대통령 ‘송금특검’ 전향적 조처를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대북송금 사건 특검 수용이 꼭 맞는 것은 아니었음을 언급해야 한다”며 대북 평화정책 지지세력 재통합을 위한 노 대통령의 전향적 조처를 기대했다. 김 대표는 또한 “돈을 주고 남북 정상회담을 샀다는 주장은 특검 수사와 재판에도 불구하고 근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임동원 전 외교안보특보 등 대북송금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사면을 지지했다.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북 평화특사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김 전 대표를 1월20일에 만났다.
북한, DJ만큼 노무현 정부 신뢰 안 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대북 평화특사를 맡아달라고 요청하는 이유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교착 상태다. 오는 11월에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북핵 문제가 중대한 사태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움직일 시간이 적다. 시간을 놓치면 우리 운명을 통제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시간을 활용해야 한다. 따라서 남북 정상회담 업적을 쌓았으며 미국의 일부 냉전세력과 갈등도 있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한반도 평화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에서 제안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좀 억울하더라도 북한 지도부가 먼저 결단해야 하는데 그 이야기를 할 사람이 김 전 대통령 외에 없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으로선 김 전 대통령에게 빚이 있으니 빚이 있는 사람이 권고하는 것을 들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북한이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 정부를 김 전 대통령만큼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김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 정상회담을 한 사람이다. 그러니 신뢰를 갖고 김 위원장에게 서울 답방을 권유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의 기본 방향은?
=핵 포기와 북 체제 안전보장을 일괄타결해 동시 행동하고 단계적으로 실현해나가는 게 맞다. 다만 힘의 관계가 적나라한 국제관계에서 미국과 부시 대통령의 위신을 존중하면서 내용적으로는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클린턴 행정부 때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조명록 북한군 차수가 워싱턴과 평양을 교환 방문했을 때 좀더 속도 있게 추진했으면 북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을 텐데 시간을 놓쳤다. 지금도 그렇다. 미국 대선이 끝나면 미국이 좀더 강경하게 나올 수 있다. 부시가 재선되지 않더라도 정책을 재정립하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불안정해진다. 지금이 타이밍이다.
-북핵 문제는 기본적으로 북-미간 문제라는 성격이 강하다. 김 전 대통령이 북한을 설득하더라도 이어 미국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있다.
=어려움이 있다. 국내적으로는 김 전 대통령에게 노무현 정부가 충분한 뒷받침을 할 거냐, 국내 여론이 보증할 거냐는 문제가 있다. 정치적인 오해와 공격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또 김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면 김 위원장한테서 오케이를 받아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김 전 대통령이 난감해진다는 점도 나는 잘 안다. 북한이 그럴 준비가 돼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특사가 북한을 다녀온 뒤 부시 행정부를 설득하는 것도 역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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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18일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청와대 만찬. 김근태 대표는 노 대통령에게 대북평화 지지세력의 재통합을 위한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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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손을 놓고 그냥 있을 거냐.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누군가 나서야 한다. 나는 이 점을 김 전 대통령이 잘 알고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의 일부 대선 후보들도 이 점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면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김 전 대통령쪽의 김한정 비서관은 최근 김 대표의 제안과 자신들의 생각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나는 김 전 대통령과 이 문제를 의논한 적이 없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김근태의 고민과 충정을 잘 이해하리라고 본다. 다만 김 전 대통령이 정치적인 오해 소지와 미국의 입장, 북한의 준비 정도, 참여정부가 자신을 진심으로 뒷받침할지 여부의 문제 등을 놓고 주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김 전 대통령쪽에선 노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특검 수용에 따라 정상회담 대의가 훼손됐다며 유감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이 노 대통령의 특사를 할 수 있을까.
=일리 있는 반론이다. 노 대통령이 작년에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한 것은 여러 사정에도 불구하고 적절하지 않으며 잘못된 결정이었다. 그것의 부정적인 영향이 여러 곳에 지금도 미치고 있다.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완전히 원상회복시킬 순 없다고 하더라도 양쪽 사이의 신뢰를 높일 조치가 있어야 한다.
-신뢰 회복 조처는 뭔가?
=돈을 주고 정상회담을 샀다는 게 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을 공격하는 논리였지만, 수사와 재판을 진행한 결과 그 주장을 입증할 근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관련자를 사면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당시 노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한 게 꼭 맞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노 대통령이 언급해야 한다. 그 사태를 계기로 노 대통령을 핵심적으로 지지하던 일부 계층이 떠나갔다. 대통령 취임 초기에 모든 것을 투명하게(정상회담과 관련한 의혹을 해소) 해야 한다는 방향을 세웠던 것 자체는 맞다. 그러나 당시에 투명성을 주장한 사람들(노 대통령의 참모들)이 남북관계를 전향적으로 해나가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의견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었다. 그러고도 잘 될 수 있다고 상황을 지나치게 순진하고 낙관적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특검 수용은 정치적 측면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남북관계를 밀고 나갈 국내 지지세력의 중요한 부분을 잃고 대북 관계에서도 동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빚었다.
-당시 특검 수용이 부적절했다고 노 대통령이 지금 언급하는 것이 대통령의 권위 훼손을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은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뭔가 타개책을 제시해야 앞으로 우리에게 닥쳐올지 모르는 한반도 위기에 제대로 대비할 수 있다. 양쪽을 비교해 어느 쪽을 선택할지 정치적 결단을 해야 한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는 고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쪽이 해야 할 일은?
=아마 (노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불신이 있을 것이다. (대북 평화정책의) 비전에 대한 신뢰를 (김 전 대통령이) 철회하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현 정부가 햇볕정책을 계승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뉘앙스로 김 전 대통령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언론을 통해 접한 적이 있다.
평화번영 정책이라는 용어도 종전의 햇볕정책이란 용어로 되돌아가거나 두 용어를 함께 사용하면 어떨까 한다. 햇볕정책이 DJ시대 용어였고, 북한도 햇볕정책이란 단어는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평화번영 정책이란 말을 도입한 것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과거의 용어로 되돌아감으로써 김 전 대통령쪽이 지닌, 햇볕정책과 평화번영 정책이 좀 다른 것 아니냐는 불신과 혼선을 극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라고 나는 어떤 심포지엄에서 제안한 바도 있다. 햇볕정책이란 용어를 북한이 좋아하진 않지만 김 전 대통령 시절의 정책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간다는 신호는 될 것으로 본다.
참여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
-김근태 원내대표는 주로 노 대통령에 대한 주문만 이야기하고 있다. 대북 평화정책의 기반을 넓히기 위해 김 전 대통령이 할 일은 없는지를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지금은 주동성을 노 대통령이 갖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주도해서 뭔가를 만들 위치에 있지 않다.
-김근태 원내대표가 제안한 대북 평화특사 아이디어를 김 전 대통령이 수용하면 될 것 아닌가.
=그건 그렇다. 노 대통령이 진심으로 여건을 만들기 바란다.
-김 전 대통령 특사론은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노무현-김대중 표’를 끌어모으자는 정략이 깔렸다는 비판이 있다.
=총선은 정치인들한테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훨씬 근본적인 문제, 즉 민족의 사활을 결정할 문제에 주체 세력이 나뉘어져 있는 게 좀더 핵심적인 문제다.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는 건가.
=작년에 북한이 쌀 지원을 요청하면서, 지원해주면 남한이 보내는 특사를 받아들여주겠다고 제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참여정부 핵심 인사가 “쌀은 보내주겠다. 그러나 특사는 필요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북한에 질질 끌려다니지 않고) 자존심을 세운다는 차원에서 보면 맞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특사를 보내 노 대통령의 직접적인 메시지를 북한에 전하는 게 반드시 나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게다가 북한이 영향력이 약한 행위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북한의 특사 수용 제안을 거절한 것이 (그리고 쌀만 가져가라고 한 것이) 북한의 자존심을 더 상하게 하는 것 아닌가. 북한이 고자세로 제안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수동적이며 방어적인(그냥 쌀만 얻어가는 게 아니라는 측면에서 체제의 자존심 유지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점을 참여정부가 충분히 검토했는지 의문이다.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 대북 정책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보나.
=진심과 지향하는 목표는 같을 텐데, 부피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김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용공 세력으로 공격받고 투옥당하면서 민족 문제와 한반도 평화통일 문제를 고민해왔는데 노 대통령에겐 그럴 기회가 적었던 것 아닌가. 추동력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상황의 복잡함을 이해하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서 차이가 있어 나타나는 양상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북핵 해결 뒤로 유보하고 있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2차 정상회담을 구걸하지 않겠다는 노 대통령의 접근 방식은 이해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통령 위상이 김정일 위원장만 못하다고 할 사람은 없다. 노 대통령이 다소 개인적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있다. 2차 정상회담은 김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약속이지만 그 이전에 대한민국 대통령과 북한 국방위원장의 약속이기도 하다. 또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합의했던 것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에게) 그것을 실현시킨다는 관점이 충분한가. 좀 아니지 않은가.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해결 앞당겨야
-북핵 해결 뒤가 아니라 오히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해결을 앞당겨야 한다는 생각인가.
=그래야 한다. 지금까지 북한은 워싱턴과 해결한 다음에 서울로 온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뒤 그게 안 되는 길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먼저 서울과 협력한 뒤 워싱턴으로 가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 경우 북한 지도부가 자기 운명을 좌우할 지렛대를 서울에 안겨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설득해 북한 지도부가 신뢰하도록 만드는 게 한국 대통령의 몫이다.
-최근 외교부 직원들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외교부 장관이 경질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미국 정책 결정자를 만날 때마다 ‘한국을 보는 눈높이를 바꿔달라. 우리를 실제로 대화 상대자로 받아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차대전 뒤 독립한 나라 중 대한민국만큼 발전한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외교관들은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가령 미국이 빵을 먹으라고 할 때 우리는 빵이 아니라 밥을 먹겠다, 또는 지금이 아니라 점심 때 먹겠다고 이야기하는 게 외교일 터인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렇게 주장하면 일부에서는 반미 외교를 하라는 이야기냐고도 하는데 문제를 그렇게 보는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 참으로 실망한다. 그런 식으로 한다면 자주냐 사대냐로 봐야 한다. 어쨌든 그렇게 나가면 피차 너무 공격적이니까 (표현을 자제하되) 우리의 국익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뭐고, 미국 주장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뭔지를 따져보는 방향으로 외교관들의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
글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