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이 선정한 2003년의 별 ‘대한민국 검사’… “검사스럽다”에서 “검사답다”까지
2003년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검찰에 아낌없는 박수 갈채를 보낸 한해였다. 여야와 대통령 측근을 가리지 않고 진행된 불법 대선자금 수사. 2003년 검사들에 대한 변호사들의 평가와 검사 자신들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
“아이고, 저러다 쓰러지지나 않을지…. 대선자금 계좌추적 100여개! 아이고, 과로로 쓰러지지나 않을지…. 옆에서 보는 사람도 안쓰럽네. 어떻게 좀 도와주고픈데…. 반면, 구린내 나는 각 정치인 놈들은 자료제출 거부·지연, 조사대상 기업에게는 입 열지 말라고 뒤에서 압력행사…. 난 어제 뉴스에서 들었다. 송 총장님과 안 중수부장님, ‘조사 대상 정당들이 상당히 수사를 방해하고 있어 매우 힘들다’고. 그냥 이름만 밝히쇼. 그럼 우리 국민이 그 XX들 4개월 뒤엔 완전히 실업자로 만들어버릴 테니까. 이 겁대가리 없는 XX들.”(2003년 12월18일, 작성자 ‘가람’)
대검찰청 홈페이지 ‘국민의 소리’란에는 요즘 이런 글이 하루에도 수백개씩 뜬다. 최근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초등학생 글도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전 신탄진 용정초등학교를 다니는 김선호라고 합니다. (중략) 제가 검찰아저씨들께 부탁드릴 게 있어요.^^ 그건 무엇이냐면 나쁜 정치를 하는 정치인 아저씨들 다 잡아주세요. 우리나라 정치가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검찰 아저씨들 위해 힘내시라고 기도할게요.^^ 홧팅^^~”
뜨거운 팬들의 환호
‘이탈리아엔 마니풀리테! 우리나라엔 마니쳐무떼!’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하고, 대선정국을 빗대 크리스마스 캐롤의 가사를 바꿔부르는 개사곡이 인터넷에 떠돈다. “교묘한 밤 거북한 밤 검은 돈 오간 밤/ 국회의원 앉아서 수백억 받아먹을 때/ 국민은 죽어간다/ 나라는 쓰러진다” “기쁘다 검찰 오셨네 다 조사 받아라/ 더러운 놈들 나와서 다 자백하여라” “대검 중수부, 눈치 안 보고, 달리는 모습, 대견도 하다/ 못된 정치꾼, 잡아가두니, 흥겨워서/ 소리 높여 노래 부르자”(songnlife.com에서)
인터넷에 떠도는 얘깃거리인 ‘섬이야기’는 또 어떤가. “이 섬에는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산다. 포유류에는 쓸개 없는 미련한 곰 ‘최돈웅’이 있고~ (중략) 이 섬에서 나는 금은 ‘대선자금’ ‘총선자금’ ‘정치자금’ 등이며, 이를 캐는 광부들을 ‘중수부’라 부른다. 이 섬에는 두 종류의 약수가 나오는데 하나는 용기를 준다는 ‘송광수’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력을 떨어뜨려 말바꾸기를 자주하게 만든다는 ‘이상수’다. 광부들은 오늘도 송광수를 마시며 여의도에서 노다지를 캔다.” 해학과 풍자, 극적 구성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정치무협 극화 ‘대선자객’(liveis.com)은 폭발적인 호응 속에 시리즈 6탄까지 나왔다.
검찰수사가 문화 신드롬까지 만들어내는, 최근의 상황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대한민국 검사들이 이런 상황을 몰고 왔다는 것은 한마디로 기적에 가깝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을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2003년은 ‘검사스러운’ 검사와 ‘검사다운’ 검사가 공존한 시기였다. “검사는 공익의 대변자”라는 법전(검찰청법 4조 ‘검사 직무’) 속에만 머무르던 그 문구가, 현실에서 구현되는 진기한 경험을 대한민국 전체가 체험하고 있다.
 |

△ “오빠!” 송광수 검찰총장(오른쪽)과 안대희 중수부장이 지휘한 대선 불법자금 수사는 국민들의 폭발적 인기를 이끌었다.(연합)
|
대선자금 수사의 출발점이 된 SK그룹 자회사의 기업광고 카피인 ‘대한민국을 새롭게 하는 힘’이 오히려 검찰에 어울린다는 평가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한겨레21>은 올 한해동안 지옥과 천국을 오가며 검찰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간 ‘대한민국 검사’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한겨레21>이 전국 변호사 104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변호사들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상당히 진전됐으며 사건처리 과정에서의 공정성도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표지이야기 두번째 기사 참조). 검찰에 대한 평가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드러내주는 결과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검사는 적어도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검새’였다. ‘검사X새’라는 비속어의 줄임말인 검새가 나온 직접적인 계기는 올해 3월에 열렸던 ‘검사와의 대화’였다. 3월 초 노무현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인 강금실 장관이 서열파괴적인 내용이 담긴 검찰인사안을 만들자, 검찰은 ‘집단항명’으로 맞섰다. 검찰 조직 전체가 청와대·법무부 장관과 맞서는 양상으로 번지자, 노 대통령은 평검사 대표들과의 직접 대화로 국면을 돌파했다.
‘대통령과의 토론’이 품은 아이러니
검찰 조직 안에서는 평검사들이 대통령에게 대들듯이 토론한 것을 두고 “젊은 후배들이 기개를 보였다”고 평가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왜 검찰이 개혁의 대상으로 거론되는지를 확실히 알게 됐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토론에 참가한 평검사들은 한국방송 프로그램 <개그콘서트> 중 ‘봉숭아학당’에 나오는 ‘영국의 권위 있는 귀족, 순수한 혈통의 세바스찬’에 비유됐다. 2시간 동안 일관되게 “인사위원회 해줘, 해줘” 하고 요구한 것은, 세바스찬의 단골메뉴 “놀아줘, 놀아줘”와 마찬가지였다는 얘기였다. 당시 만들어진 ‘검사스럽다’는 신조어는 ‘권력의 시녀’라는 기존의 평가보다 더 모욕적이었다.

△ 지난 3월에 있었던 대통령과 검사들과의 대화에 국민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지만 검찰조직에 긍정적 변화도 촉발시켰다.(청와대사진기자단)
|
그러나 검사와의 대화는 검사들의 대국민 이미지를 땅에 떨어뜨린 부정적인 효과와 함께 검찰 조직에 긍정적인 변화를 촉발시킨, 아이러니도 품고 있었다. 즉, 대통령이 검찰에 대한 불간섭 선언을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해버렸던 것이다. 과거 정권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청와대를 통한 직접 통제를 다시는 주장할 수 없게 된 셈이다. 특히 SK그룹의 부당 내부거래 및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 수사를 맡았던 인천지검 이석환 검사(사시31회)가 “민주당 중진(나중에 이상수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으로 밝혀짐)인 정치인이 수사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해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졌고 정치권이 아연 긴장하는 국면이 초래됐다. 평검사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3월11일 전국의 평검사들이 지검·지청별로 모여 “검찰수사 과정에서 청탁이나 부당한 외압을 가해온 사람과 관련 사안을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밝혀버린 것이다. 평검사들의 선언은 정치권과 검찰 고위간부 모두를 긴장시켰다. 이후 검찰 내부 분위기는 급격히 변했다. 토론일이 ‘검찰독립일’로 불렸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구호는 김대중 정부의 검찰에 대한 철학을 집약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사실 검찰이 바로 설 수 있는 전제조건은 청와대가 바로 서는 것이었다. 과거 검찰이 제 구실을 못한 것은, 청와대가 대통령 민정수석을 통해 검찰을 사사건건 통제하는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검찰인사안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의 검찰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만신창이가 된 것은 이를 웅변한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새 정부는 권력기관에 의존하지 않겠다”면서 실제로 청와대와 검찰을 외형적으로 연결하는 ‘검찰 통제 시스템’을 없애버렸다. 현직 검사가 형식적으로 사표를 낸 채 청와대에 파견근무를 하는 관행도 사라졌다.
이후 이뤄진 정치권 수사의 양상은, 검찰이 얼마나 절치부심했는지를 보여준다. 새로운 검찰의 시험대가 된 나라종금 사건 수사에서 검찰은 지난 정부 핵심 정치인들을 주저없이 줄줄이 구속했다. 특히 노 대통령의 왼팔이라 불리던 안희정씨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대통령 측근인 염동연씨마저 구속하면서 검찰을 바라보는 여야의 시각이 역전되는 현상마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의 뒤바뀐 태도
민주당 정대철 대표의 굿모닝시티 불법자금 수수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가 정 대표와 청와대의 갈등 양상으로 이어지자 민주당은 검찰총장의 국회 출석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민주당은 “사법의 정치화와 법 만능주의가 문제”라며 검찰을 비난했고, 한나라당에서는 “검찰의 중립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맞받아쳤다. 검찰은 정 대표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과감하게 청구했다.
현대 비자금 수사에서 지난 정권 실세였던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을 거액의 비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하는 과정에서도 한나라당은 검찰을 적극 옹호하고 나선 반면,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대한민국이 검찰공화국이냐”면서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정치적 중립성 확보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 구실을 한 수사에서 검찰은 승승장구했다.

△ 검찰의 사정칼날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올해 내내 구속수감되거나 소환되는 정치인들이 줄을 이었다. 한광옥 전 민주당 최고위원,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최돈웅 한나라당 의원(왼쪽부터).
|
사실 정치권에게 수사 불간섭을 요구하는 검찰의 움직임은 이번에 새롭게 나온 것이 아니었다. 서울지검 평검사들은 인사파동이 불거지기 전인 올해 2월 김각영 당시 검찰총장에게 “검찰의 중립성 확보를 위해 대통령이 검찰수사에 대해 불간섭 선언을 해야 한다”고 건의한 바 있다. 이들은 당시 “수사 시작 전부터 정치권에서 정보를 입수하고 외압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를 막기 위해 정치·권력형 사건에 대한 정보보고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검사들의 이같은 주장은 지난 1999년 검찰 최초의 평검사 연판장 파동 때도 언급됐다. 당시 평검사들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러한 결과는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검찰의 중립성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검찰 수뇌부의 의지 부족뿐만 아니라 일부 간부들의 권력 지향적 성향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여야를 언제라도 동시에 벨 수 있는 ‘양날을 지닌 중립의 칼’이 확실하게 효력을 발휘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서였다. 민주당쪽 수사를 진행할 때만 해도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안대희 중수부장을 “대한민국 최고 실세”라며 추어올렸다. 그러다 한나라당이 SK그룹에서 100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마자 태도가 돌변했다. ‘편파수사’라는 상투어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검찰은 변했는데 정치권이 예전의 구호를 다시 들고 나오자 등을 돌린 것은 국민여론이었다. ‘차떼기’ ‘트럭떼기’ ‘책떼기’를 밝혀내고, 대통령의 나머지 측근으로 분류됐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이 줄줄이 구속되자 검찰에 대한 시선은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대검찰청 홈페이지는 칭찬 일색으로 도배가 됐다. ‘한국판 마니풀리테’를 이루자는 주장이 터져나왔고,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을 사랑하는 모임인 ‘송짱’ ‘안짱’ 클럽이 인터넷에 생겨났다.
20~30년 보다 더 빠른 1년의 변화
외부로 향한 칼날을 벼리면서 검찰은 내부의 변화 요구를 제도적으로 수용했다. 좀처럼 수용하지 않을 것 같던 ‘검사동일체 원칙’을 수정해 상사의 위법·부당한 지시에 대한 검사의 항변권이 보장된 것, 평검사들의 오랜 요구였던 검사 단일호봉제를 받아들인 것, 모든 검사들에 대해 임관 뒤 10년마다 직무수행 적격 여부를 심사해 새 임용을 결정하는 검사적격심사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 등은 조직의 유연성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대검에 근무하는 한 검사는 “검찰 조직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 활기에 차 있다”며 “지난 20~30년 동안 이뤄진 검찰 조직의 변화보다 올 한해 이뤄진 변화가 더 많다는 게 솔직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원인과 관련해 일선 검사들은 노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을 위한 의지를 확실히 보여준 것이 큰 힘이 됐다는 의견을 보였다. 서울지검에 근무하는 한 검사는 “노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태도를 계속 유지한다면 아마도 훗날 역사가 그를 ‘검찰 독립의 아버지’라고 칭송할 만하다”면서 “지금 이뤄지는 대선자금 수사도 송 총장이나 안 중수부장이라서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는 조건이 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조직의 활발한 움직임이 근본적·본질적 변화인지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직 내부적인 개혁 과제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올해 발생한 청주지검 몰카 사건은 개별 검사들의 반성이나 자각이 없이는 조직적인 개혁도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 특히 이 사건은 평검사들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줬다고 한다. 법무부에 근무하는 한 검사는 “아직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상태가 아니지만 검사가 자신이 맡고 있는 사건과 관련해 금품을 요구한 혐의가 인정돼 기소됐다는 사실 자체로 충격의 크기는 엄청났다”고 털어놨다.
이 사건말고도 올해 발생한 용산경찰서 법조브로커 사건은 내부비리 가능성이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또 송두율 교수의 구속기소 과정에서 검찰 공안부가 보여준 구태의연함은 검찰 조직의 변화를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올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불과 1년 전 서울지검 강력부에서는 피의자가 조사를 받던 도중 수사관들의 폭행과 가혹행위 때문에 사망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검찰의 인권의식이 여전히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고도의 정치적 의혹사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기존 검찰보다는 특검을 선호하는 국민여론이 높다는 사실도 검찰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신뢰의 뿌리가 튼튼하지 못한 셈이다.
현 정권 담당자들의 화두인 이른바 ‘검찰 권력의 문민통제’와 관련해서도 앞으로 조직이 술렁거릴 가능성은 있다. 인사제도의 변화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고, 감찰권을 법무부로 이양하는 문제도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개혁보다는 조직이기주의를 더 앞세운다”는 여론의 비난을 다시 받을 가능성도 존재하는 셈이다.
여기에다 최근 청와대 일각에서 “검찰을 너무 빨리 놓아버렸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도 우려스런 대목이다. “검찰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순진하게 생각했다는 때늦은 후회를 하는 그룹이 있다”고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털어놨다. 반동의 기운은 호시탐탐 반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우리는 물 위에 떠 있는 종이배”
이 때문에 지금의 국면을 호락호락하게 보지 말자는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검찰 조직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법무부에 근무하는 한 검사는 “지금 우리는 물 위에 떠 있는 종이배”라면서 “언제 물이 스며들어와서 가라앉을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지금 정부가 정권을 유지하는 방식은 권력을 지닌 상대 진영을 자극해서 긴장관계를 항상적으로 지속시키자는 것이다. 검찰권력과 청와대의 관계도 그 긴장관계가 깨어지면 쉽게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쌓아왔던 중립성은 한순간에 신기루가 될 수 있다. 지금 이 상황이 일종의 ‘학습효과’를 가져오기는 하겠지만 과거로 회귀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절대로 아니다.”
검사들이 조심스러워하는 것은, 검사들의 전용 통신망인 이프로스(E-PROS)에서도 드러난다. 대선자금 수사가 국민의 환호를 받고 있지만, 검사들은 의외로 담담하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가 지난달 한나라당의 검찰 공격을 비난한 뒤 “형사부에 있지만 중수부 수사를 보면 힘이 솟는다”는 의견을 띄운 것을 제외하고는 일체의 언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를 두고 대검의 한 검사는 “우리가 나서서 뭐라고 하면 ‘그래 니들이 그렇지 뭐. 그렇게 잘난 척할 줄 알았다’고 할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검사들에게 널리 퍼져 있어서 자기 일만 묵묵히 하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런 면에서 검찰의 정치적 독립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인터넷의 정치무협극 ‘대선자객’ 5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꽃은 열매를 얻기 위해 피는 것! 열매가 맺히면 떨어지고 마는 것! 하지만 열매도 맺기 전에 모진 겨울을 만난 꽃이 있었으니…. 그 꽃의 이름은 검찰 독립이라.”
노 대통령은 지난 3월 검사와의 대화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 ‘확보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쟁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인이 정치적 중립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지키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구속되고 해직되고 해서 지킨 것 아니냐.”
대한민국 검사는 요즘 보기 드물게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 그들이 ‘쟁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좋은 시절은 계속될 것이다. 대선자금 수사를 제대로 마무리한다면, 다음 ‘투쟁’의 장은 내년 총선이 될 공산이 크다.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표지디자인/ 장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