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3년12월26일 제490호
“청탁전화는 바로 박살난다”

검사 5명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이야기… “국민들의 애정과 내부통제 대책 모두 절실합니다”

<한겨레21>은 수도권에 근무하는 중견검사 10여명한테서 최근 검찰의 상황과 관련한 진솔한 얘기를 들어봤다. 이 가운데 검사 5명의 얘기를 이곳에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얘기를 해준 검사 가운데는 지난 3월 대통령과 함께한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했던 이들도 일부 포함돼 있다. 민감한 시기라는 점을 들어 검사들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익명 처리하는 점을 양해드린다.


△ 2003년 10월 ‘송광수 · 안대희 팬클럽’ 회원들이 검찰의 재벌 비자금 수사를 격려하기 위해 보약과 칼국수 등을 들고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한겨레 김종수 기자).

기회이자 어마어마한 위기

● 언론에서는 안짱, 송짱 하면서 팬클럽이 생기는 얘기를 많이 한다. 일단 욕을 안 먹는 것만도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과거 불신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분 나쁜 국면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지 않는다. 신뢰 회복의 기회이자 동시에 어마어마한 위기다. 오히려 (국민이나 언론이) 타성적으로 비난할 때는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으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원래 공부 못하는 애는 성적 나쁜 거 신경 안 쓴다. 이 국면을 얼마나 생산적이고 건설적으로 바꾸느냐가 중요하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청와대의 검찰 운용 철학이나 시각이 확실하게 바뀐 것은 사실이다.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확실한 모범사례가 될 것이다. 사실 어마어마한 변화다. 예전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처리할 때 윗선에 미리 보고도 하고 했다. 알고 계시라는 뜻에서 보고하는데, 그것이 도리어 리턴해서 수사에 대한 ‘훈수’로 돌아와 수사가 주춤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올해는 일절 그런 전화가 없다. 정치권에서 전화를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윗분들도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안다. 언론에서는 평검사들은 잘하려고 하는데 간부들이 문제라고 쓰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평검사들도 알아서 기는 경우가 있다. 나도 그랬다. 윗분들이 싫어할 것 같으면 스스로 알아서 조절하는 식이다. 조직이 타율에 젖으면 그렇게 된다. 지금은 간부와 평검사들이 같은 검사로서 상의하고 토론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이프로스’가 큰 힘

● 수사에서 이제는 누가 하라고 해서 어느 일방에 서서 하는 시대는 끝났다. 청탁전화 같은 것은 바로 박살이 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이번 대선자금 수사건만 잘 마무리되면 정치적 중립성은 확고히 뿌리를 내릴 것으로 본다. 액수가 다르다고 편파수사는 아니다. 똑같이 노력한다고 액수가 비슷하게 나오는 건 아니다. 사실 특수수사 했던 검사들은 윗분들의 개인적인 부탁전화를 많이 받았다. ‘누가 나랑 잘 안다’거나 ‘누가 그러는데 사건이 그렇게 됐다고 하더라’ 하는 얘기에서부터 ‘그 사람은 불구속시켜달라’는 얘기까지 갖가지 부탁이 있었다. 검사와의 대화 이후 싹 사라졌다. 확연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청와대에서도 전화가 왔다. 지금은 없다. 지금은 그런 일이 있으면 검사들이 이프로스(검찰전용 통신망)를 통해서 정보를 공유해버린다. 공론화되는 것이다. 이프로스가 굉장히 큰 힘이 된다. 토론도 솔직하게 되고 자료도 쉽게 공유한다. 검찰은 변하려 하는데 오히려 변호사단체나 법원, 언론 등에서 검찰을 보는 시각은 여전한 것 같다. 우리는 변호인 입회권이나 재정신청 같은 것도 확대하려고 한다.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제도를 바꾸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으면 바꿀 자세가 되어 있다. 우리가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면 검찰 파쇼가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웃기는 얘기다. 실체적 진실을 밝혀서 정의를 세우는 일을 하는 것인데, 지금까지 그것을 하지 않는다고 욕해놓고 그걸 하려고 하니까 검찰 파쇼라고 하면 얼마나 우스운가. 전에 안 하던 일을 하니까 문화적 충격이 오는 것이지 검찰이 파쇼집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색안경을 벗고 애정을 갖고 열린 마음으로 봐달라.


△ 지난 1999년 6월 검찰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규탄집회.(김진수 기자)

검사 개개인 생각 많이 변했다

● 올해 이전부터 검찰 조직은 변하고 있었다. 의사수렴 과정 등이 많이 민주화됐고 권위적인 조직문화도 이미 변해 있었다. 외부에서는 ‘검사들은 원래 그런 놈들이니까’ 하고 생각하지만 우리도 전반적인 사회의 변화와 무관할 수 없다. 사회는 점점 투명하게 바뀌는데 검찰만 예전의 모습을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또 민주화가 진전되면 의사결정 과정에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닌가. 1200명 검사 개개인의 생각 자체가 많이 변했다고 본다. 그동안 특검이 5번이나 들어오면서 법과 원칙에 따라 하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으로 돼 있다. 검사들이 야근한다고 하면 밖에서는 펄펄 뛰지만, 우리가 하는 야근은 사실 기업체 야근과는 다르다. 야근수당도 못 받는다. ‘검사도 자기 생활이 있는데’ 하면 밖에서는 또 ‘니가 맨날 술 먹고 다니고 폭탄주 먹고 다니면서 그러냐’고 한다. 그런 점이 참 불만이고 그런 얘기를 들으면 좌절감을 느낀다. 그동안 검찰에 대한 비난은 정치권과 결탁해서 사건을 주무른 데서 온 것이다. 지금은 부장, 차장, 검사장급까지 그런 인식에서 벗어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이 휘둘리는 과정에서 위기감이 생겼다. 간부들이 그럴 때마다 물갈이된 것 아닌가. 간부들이 이제는 단순히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는 수준이 아니라 어떻게 합리적인 지휘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수준이 됐다.

시민 참여로 감찰 기능 강화해야

●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암행어사 신드롬이 있는 것 같다. 박문수 같은 어사가 나타나서 나쁜 권력자를 응징해주는 판타지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최근에 하는 수사, 특히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 같은 것에 환호한다. 우리 국민들은 검찰이 강하게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법 권력은 일반 행정권력과는 다르다는 점은 사실이다. 검찰이 지니고 있는 사법권력은 강한 권력이다. 사람을 처벌하고 구금하는 권한을 지녔기 때문이다. 비대해지는 것을 컨트롤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면 그 뒤에 어떻게 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검찰이 지나치게 큰 권력집단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이 후폭풍을 몰고 올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해하는 편이다. 법원과 일반시민, 그리고 내부적인 통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일반시민에 의한 통제는 시민 대표가 기소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고, 내부적인 통제는 감찰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통제되지 않은 권력은 불안하다. 검찰이 불안한 권력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교과서 같은 얘기지만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고 사건을 조작하거나 밀실야합하지 않으면 된다고 본다. 정도를 걷는 수사가 중요하다.

국민들이여 더 사랑해달라

● 수사 도중 외부에서 걸려오는 청탁전화나 고위간부들의 청탁전화를 최근에는 받아본 적이 없다. 간부들이 그런 것을 얘기하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문제는 법이나 제도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규정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과 의지를 바꾸면 되는 문제다. 사실 검찰 안에도 386들이 있다. 이들은 기존 선배들처럼 승진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시골검사, 서울검사 구분하는 것도 싫어한다. 검찰이 개혁되려면 국민의 신뢰가 쌓여야 한다. 신뢰가 오고 자신감이 쌓이면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변화시키게 된다. 신뢰가 없으면 자꾸 딴 데 가서 딴 짓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도 아빠가 사랑하면 아빠 얼굴 생각나서 나쁜 짓 못한다. 국민들이 사랑해주면 검찰은 지금보다 더 혁명적인 변화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리=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