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이야기 ] 2003년08월28일 제474호 

핸드라이팅은 가라 하네!

자판 위주의 디지털 글쓰기에 밀려 추억 속으로… 육필은 구세대의 상징으로 여기며 가벼움·속도 좇아

육필이 추억 속으로 밀려나고 있다. 누구도 자판에서 이뤄지는 디지털 글쓰기를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육필의 종말, 그 생활 속 현장으로 들어간다. 그래도 손글씨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무는 육필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 것일까. 당신은 글을 ‘쓸’ 것인가 ‘칠’ 것인가 .

한국의 세대를 구분하는 법?

오른쪽 세 번째 손가락을 보라. 첫 마디와 둘째 마디 사이에 단단히 박힌 굳은 살이나 툭 튀어나온 혹은 이 사람이 ‘손으로 글을 쓰던 시대에서 온’ 20대 후반 이후의 세대임을 보여준다. 윗세대의 작가들 중에는 펜 때문에 튀어나온 이 혹(펜혹)이 커질 때마다 칼로 잘라내며 글을 쓰곤 했다는 추억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반대로 세 번째 손가락에 굳은 살이나 혹이 없는 대신 (게임기나 휴대전화 자판을 두드리느라) 엄지손가락이 유난히 발달했다면, 그는 10~20대 초반의 신인류 ‘엄지족’이다. 책상에 앉으면 컴퓨터가, 돌아다닐 때는 휴대전화가 그들의 필기구요 편지지다. 아, 물론 이제 자판 두드리기가 일상화되면서 엄지족뿐 아니라 윗세대의 손가락에서도 팬 혹은 점점 말랑해지고 흐릿한 흔적이 되어간다. 손가락 마디의 굳은살과 함께 이렇게 핸드라이팅(손글씨 쓰기)은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

디지털화 20여년 만에 쓰기 문화 퇴장


컴퓨터그래픽/ 장광석


1980년대 워드프로세서를 거쳐 1990년대 컴퓨터 글쓰기가 시작된 지 10년 만에 디지털 글쓰기는 확고한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고집스럽게 생각을 깊이 정리하고 ‘익혀낸 뒤’ 원고지 위에 꾹꾹 눌러 써내려가는 소수의 작가들도 있지만, 너무나 희귀한 뉴스거리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간단한 메모 이외의 글을 쓸 때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자판을 두드리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회사원 김남숙(35·여)씨는 얼마 전 아들의 유치원에 써보낼 가정통신문의 학부모 편지란을 쓰면서 애를 먹었다. “틀려도 고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랜만의 손 글쓰기에 아예 생각이 흘러나오지를 않았다. 대학 시절 학보사 기자로 원고지에 술술 장문의 기사를 쓰곤 했었는데, 이제는 아예 종이에는 글을 쓸 수 없게 됐다는 것을 깨닫고 무척 당황했다.”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자 하나같이 “나도 그래” “손으로는 못 써”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기자들 너마저도….” 만약 볼펜이나 만년필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런 탄식이 나올 것이다. 대표적인 ‘필기’ 집단인 기자들마저도 이제는 기자실이나 기자회견장에서 상대방의 말을 컴퓨터로 바로 받아 친다. 청와대에서는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때문에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컴퓨터 입력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지만, 기자들은 “대통령의 이야기가 너무 빠르고 길어 손으로는 도저히 받아 적을 수 없다”며 자판을 두드린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하여 (손) 글쓰기와 글씨체가 사람 됨됨이를 나타낸다고 여겨온 한국 사회에서 이 급격한 변화는 놀랍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글씨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글씨는 그 사람이다”라는 가르침에 따라 반듯한 글씨를 쓰기 위해 반복 또 반복의 글씨 연습을 해야 했다. 글씨를 많이 쓴 손은 그 자체로 지적이거나 성실한 사람의 상징이기도 했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하다 투옥됐던 김아무개(40·회사원)씨는 당시 한 진보적 변호사가 변론을 자청했을 때 “변호사들은 부르주아라서 싫다”며 거부했다. 구치소에서 거의 억지로 간수들에게 끌려 변호사를 만나러 갔을 때 그는 그 변호사의 손을 보고 그를 신뢰하게 됐다. “손가락에 두툼하게 솟은 펜혹이 그의 성실함을 증거하는 상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있는데 글씨는 왜 쓰느냐”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간단하게 “컴퓨터가 있는데 글씨는 왜 쓰느냐”고 반문한다. 비뚤비뚤한 글씨는 전혀 부끄럽지 않은 당연한 것이 됐다. 교사들은 컴퓨터 때문에 아이들이 악필이 되어간다고 개탄하고, “‘천재가 악필’이면 요즘 아이들은 다 천재”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젊은 교사들 중에는 필기 내용을 프린트해서 나눠주고 칠판에 글씨를 쓰지 않는 이들도 많다. 아이들이 손으로는 필기를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고, 젊은 교사들 자신도 손글씨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30~40대 이상, 특히 남성들은 군대와 직장에서 글씨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들을 몇개씩은 가지고 있다. 글씨를 잘 쓰는 동료가 행정병으로 뽑혀 편안한 군대생활을 히거나 직장에서 영전하는 것을 보면서 배아파던 기억들 말이다. 이 때문에 군입대 전 ‘차트 글씨’ 전문 펜글씨 학원을 찾아가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광화문 현판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현판과 비문을 남겼고 붓글씨에 자부심을 보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이 서예를 즐기자 장·차관, 국회의원뿐 아니라 하위 공무원까지 서예 바람이 불어 인사동이 큰 호황을 누린 시절도 있었다. 글씨를 잘 써서 출세한 공무원들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화제가 됐고, 반듯반듯 깨끗한 차트 글씨는 공무원의 필수 덕목이었다. 당시 장·차관들은 자리를 옮기면서 맘에 드는 ‘차트사’를 데리고 다닐 정도였다. 물론 이제는 각종 서식 등을 정서하는 필경사가 자취를 감췄고, 서울 종로에서 명성을 날리던 펜글씨 학원들도 대부분 폐업했다. ‘음성편지’ ‘그림편지’ ‘영상편지’ 등이 오가는 사이 길거리의 ‘빨간 우체통’은 해마다 800개씩 사라진다.


사진/ 몇년 사이 디지털 글쓰기는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취재수첩과 볼펜이 사라지고 노트북이 즐비한 기자회견 풍경.(이용호 기자)


이런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기구 회사들은 ‘필기만을 위한’ 필기구가 아닌, ‘선물용 명품’이나 다양한 디자인에 승부를 걸고 있다. 보통 한 자루에 20만~30만원씩 하는 18K 펜촉의 만년필(1년에 한번쯤 발매되는 한정판매본 수입 만년필은 1650만원짜리도 있다)은 중·장년 남성들의 지위를 상징하는 ‘명품’ 액세서리로 꾸준히 팔려나간다. 그러나 계속 멀어져가는 젊은이들은 큰 고민이기도 하다. 9월까지 대학생과 대학원생만을 대상으로 ‘펜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 공모전’을 열고 있는 파카 만년필 수입업체 항소의 오성주 마케팅 차장은 “젊은 세대들은 펜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미래 시장을 개척하는 의미로 이런 행사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필기구의 명품화… 탈역사 시대 진입

그렇다면 핸드라이팅에서 디지털 글쓰기로의 변화는 단순한 필기도구의 변화일까? 물론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표현 방법을 바꾸고 세상을 보는 눈을 변화시킨다. 새로운 글쓰기는 세상을 바꾼다. 체코 출신의 선구적 미디어 이론가였던 빌렘 플루서는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에서 문자 이전 그림의 시대는 ‘전 역사’, 문자의 시대는 ‘역사’, 문자 이후 디지털 코드의 시대는 문자의 지배가 끝나는 ‘탈역사’의 시기라고 구분했다.

디지털 글쓰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수정 가능성’과 ‘속도’다. 생각을 가다듬고 글의 구조를 정한 뒤 종이에 한자 한자 써내려가고, 틀리면 줄을 긋거나 안 되면 아예 종이를 찢어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써내려가야 했던 핸드라이팅과 달리, 그냥 일단 써내려가는 디지털 글쓰기는 말처럼 머릿속에 순간순간 떠오르는 대로 흘러간다. 그래서 백욱인 서울산업대학교 교수(사회학)는 디지털 글쓰기가 글과 말이 합쳐진 말에 가까운 ‘글말’ 또는 ‘말글’이라고 지적한다. 컴퓨터에 쳐지는 글자는 생각만큼 빠르거나 때로는 생각의 속도를 앞지르고, 또 온라인에서의 상대방과 동시적으로 의사소통하면서 말을 닮아간다. 백 교수는 “네트세대에게 문어체와 구어체의 구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이 철자법과 문법을 중요시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책을 안 읽거나 국어 공부를 게을리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라 전자매체 시대의 글쓰기 형식이 말과 글을 통합한 완전히 새로운 글쓰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디지털에 익숙해진 이들이 다시 핸드라이팅을 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사진/ 핸드라이팅의 대표격인 붓글씨가 오랜 수련을 거쳐야 하고 생각의 여유와 익힘을 동반한 행위였다면, 최근의 컴퓨터 글쓰기와 문자메시지는 누구나 쓸 수 있고 말의 속도로 표현된다. 캠퍼스 벤치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글을 쓰는 대학생, 재빠르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10대, 과거시험을 재현한 행사에서 답안지를 쓰고 있는 사람들(왼쪽부터).

가벼움과 타락 우려 vs 글쓰기의 민주화

이메일이나 게시판, 문자메시지의 글을 기존 ‘글’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말에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다. 컴퓨터 앞에서 ‘님아’ ‘방가’ ‘즐겜’ 등의 채팅용어를 사용하며 자판 두드리는 것에 훨씬 익숙한 젊은이들의 글은 윗세대와 같은 글, 같은 사고체계가 아니다. 인터넷 연재를 거쳐 올해 서점에서도 둘풍을 일으킨 10대 작가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에서 미국에 있는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는 주인공의 말은 이렇게 묘사된다. “에게! 모야! 뭣하러 와!!” “흑흑.ㅠ.ㅠ” “아, 미얀.-_-……언제 와!!” “29일, 공항 마중나올 거지” “야아~~당빠지! 그 일주일 동안 쌔빠지게 놀아보자 >_<” 엄ㅁ ㅏㅇ ㅑ-_- ㅜ.ㅜ ㅠ.ㅠ 밤돼지(선생님 애칭)다. 찰칵……. -_- -_-^ =_= =_=^-. 말과 그 말을 하면서 짓는 표정이 고스란히 글이 된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대립한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오랜 생각과 구상, 메모의 준비작업을 거쳐야 쓸 수 있는 기존의 손 글쓰기가 닫히고 무거운 엘리트의 글쓰기였다면 디지털 글쓰기는 누구나 쓰고 소통할 수 있는 글쓰기의 민주화를 가져왔다. 디지털 글쓰기가 가벼운 글을 양산하고 글쓰기를 타락시켰다는 비난도 있지만, 각 개인에게 훨씬 많은 문화적·사회적 힘을 나눠주었고 기존 매체와 지식 엘리트들의 독점 권력을 약화시켰다. 글이 문화와 사회를 바꿨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오랜 사고를 통해 나오는 글쓰기’ ‘여유와 생각의 공간’이 사라지는 데 대한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회사원 강성만(39)씨는 얼마 전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의 여름방학 숙제를 보다가 ‘일기를 일주일에 한번씩 쓰도록 한’ 숙제를 보고 당황했다. 그 밖의 숙제는 대부분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서 프린트해 가는 것들이었다. 강씨는 “딸아이나 그 친구들을 보면 요즘 아이들은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옛날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접함으로써 당연히 감각이 뛰어나다. 초등학생들이 베르베르의 <나무> 같은 책을 읽는다. 그러나 실제로 글을 써놓은 것을 보면 내용이 기대에 못 미친다. 많은 것을 접하지만 그것을 천천히 생각해보고 자기 것으로 만든 뒤 여유 있게 표현하는 훈련은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렇게 핸드라이팅이 사라진 무대에서 디지털 글쓰기의 가벼움과 타락에 대한 우려와 민주주의에 대한 환호가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디지털 글쓰기가 되돌리기 어려운 대세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생각의 공간 되찾는 펜글씨를 취미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대화>에서 당시로서는 뉴미디어였던 문자가 살아 있는 정신의 직접적인 교류에 방해가 된다며 비판했다고 한다. 문자를 통한 지식의 대중화와 당시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플라톤의 이런 귀족적·보수적 문자관은 오늘날 뉴미디어를 거부하는 핸드라이팅 옹호론과도 닮아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글쓰기 또한 그 편리함을 위해 잃어버리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디지털 글쓰기를 거부하지 않으면서 아날로그 핸드라이팅의 여유와 생각의 깊이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가능할까. 생각의 공간을 되찾기 위해 가끔은 펜촉에 잉크를 찍어 쓰는 ‘엉뚱한’ 노력이 새로운 유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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