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은 차세대 여성 지도자의 경쟁력을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32점으로 1위를 차지했고, 추미애 의원(21.9), 강금실 장관(20.1)이 그 뒤를 이었다.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과 세 사람의 색깔을 이야기한다.

일러스트레이션 | 장광석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대통령이 나올 수 있을까. 나온다면 시기는 대중들이 환호하는 여성 대통령상은 어떤 모습일까.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지닌 미국에서조차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지 않은 터에 우리가 여성 대통령을 논하는 것은 뜬금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6개월밖에 안 됐고,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갓 100일을 넘긴 상황에서 차기 대통령을 논하는 것은 어색한 일인지 모른다.

추미애·강금실은 남성들로부터 더 좋은 평가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여성 정치인과 대통령의 연결을 그다지 쑥스럽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박근혜 의원(한나라당)은 지난해 이미 대통령 후보로 중요하게 거론됐고, 한때 여론조사에서 폭발적 지지세를 보였다. 추미애 의원(민주당)도 지난 대선 막바지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파기’의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차기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최초의 여성 법무장관이라는 ‘파격’으로 눈길을 모았던 강금실 장관은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 때 대중적인 관심을 모은데다 거침없는 소신 행보로 아무런 당내 정치적 기반이 없는데도 주목받는 여성 정치인 반열에 올랐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대통령 출현을 ‘머나먼 남의 나라 얘기’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겨레21>은 이런 점에 착안해 국민의 마음속에 있는 여성 대통령에 대한 생각의 갈피들을 정리하고자 했다. 우선 박근혜·추미애 의원과 강금실 장관 등 주목받는 여성 정치인 3명을 놓고 경쟁력과 자질 조사를 벌였다. 대부분의 항목에서 박근혜 의원이 1위를 차지했다. 호감도와 자질평가를 종합한 경쟁력 점수에서 박 의원은 32점(호감도=32.6, 자질=31.3%)으로 1위를 달렸다. 추 의원은 21.9점(호감도=23.6, 자질=20.1%), 강 장관은 20.1점(호감도=22.9%, 자질=17.3%)이었다. 박 의원이 큰 우위를 보이는 가운데 추 의원과 강 장관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 대통령으로서 선호도를 알아본 조사에서도 박 의원(46.4%)은 추 의원(16.9%)과 강 장관(15.9%)을 크게 따돌렸다. 경쟁력 조사보다 차이가 더 벌어졌다. 박 의원이 추 의원이나 강 장관보다 ‘여성 대통령 후보감’이라는 이미지가 좀더 강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 의원이 남성보다 여성들로부터 좀더 높은 점수를 받은 반면, 추 의원과 강 장관은 여성들보다는 남성들로부터 더 좋은 평가를 얻은 점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박 의원은 지난해 한나라당 탈당과 미래연합 창당, 한나라당 복귀로 이어진 정치행보로 관심을 모았지만 대선 이후엔 그다지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최근엔 정치개혁을 주장하며 서서히 목소리를 키우고 있지만 언론의 집중적 조명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박 의원이 선호도와 자질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단일후보 효과’가 위력을 발휘한 것으로 분석된다. 3명 가운데 박 의원은 야당이지만 추 의원과 강 장관은 범여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야당에선 박 의원이 단일후보로 나선 셈이고, 여당에선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추 의원과 강 장관이 각각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지지정당별 조사에서 수치로 확인된다. 박 의원은 선호도와 자질평가에서 모두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몰표’를 얻었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박 의원에겐 44.4점의 후한 점수를 줬지만 추 의원(13.7점)과 강 장관(14.2점)에겐 야박했다. 이와 달리 민주당 지지자들의 평가는 추 의원과 강 장관으로 양분되면서 집중도가 떨어졌다. 추 의원과 강 장관은 불리한 조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박 의원이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도 24.8점의 비교적 괜찮은 점수를 받은 점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30대 이상은 ‘박근혜 인지도’ 100%

둘째로, 박 의원이 여성 대통령 후보로 거론될 기회가 많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박 의원은 이미 지난해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며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여러 여론조사기관들도 그를 대선후보로 가정하고 여론조사를 벌였고, 한때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이는 박 의원의 인지도가 97.9%로 높게 나왔다는 점에서도 뒷받침된다. 30대 이상에선 박 의원에 대한 인지도가 100%였다. 30대가 넘으면 박근혜라는 인물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박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덤’도 지니고 있다. 이와 달리 추 의원이나 강 장관은 여성 대통령 후보라기보다는 ‘주목받는 여성 정치인’ 정도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평가에서 박 의원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던 두 가지 요인에도 불구하고 그가 얻은 높은 점수를 과소평가할 수만은 없다. <한겨레21>이 지난 1999년 실시한 정치인 경쟁력 조사에서 박 의원의 선호도는 31.6%였다. 이번에 나온 32.6%와 비슷하다. 그런데 당시 23.0%에 불과했던 자질평가가 이번엔 31.3%로 껑충 뛰었다. 요컨대 박 의원에 대한 국민의 선호도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그의 자질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좋아졌다는 얘기다. 박 의원은 지난해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이회창 총재를 압박했다가 거부당하자 탈당을 강행해 미래연합을 창당하는 등 나름의 강단을 보여줬다. 어쨌든 정치 지도자로서 분명한 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또한 당을 만들었다가 복당하는 과정에서 ‘나약한 여성 정치인’ 이미지를 씻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 정치에선 정당 내부의 세력보다는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와 브랜드가 결정적이다. 당내 기반이 취약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독자적인 주장을 펼치며 당선된 데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박 의원은 나름의 고유한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 대선 패배 이후 박 의원의 당내 정치적 입지가 좁아졌는데도 대중적 평가가 썩 좋게 나온 것은 그의 브랜드가 ‘정치 시장’에서 아직도 상당한 상품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추 의원과 강 장관이 박 의원보다 낮은 점수를 얻었지만 이들의 경쟁력이 박 의원보다 현저히 떨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미 지적한 대로 민주당 지지자들의 집중도가 분산된 탓이 크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점수를 합칠 경우 박 의원의 점수를 훨씬 능가한다는 점도 이런 추론을 뒷받침한다. 더욱이 박 의원이 일찍부터 대통령 후보로서 거론된 것과 달리 이들은 대통령 후보로서 인식되거나 제대로 조명받을 기회가 부족했다. 추 의원이나 강 장관이 자신들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도 이들의 잠재적 경쟁력을 높이 살 수 있는 요인이다.

추미애, 호남지역에서 40.4점이나 얻어

추 의원과 강 장관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평가를 얻었다. 점수 차이도 오차범위 이내였고, 여성보다는 남성들로부터 후한 점수를 얻은 점도 비슷했다. 차이가 조금 있다면 추 의원은 40대에서 가장 높은 점수(30.9점)를 얻은 반면, 강 장관은 30대(23.9점)에서 점수가 높다는 점 정도다. 이와 달리 박 의원은 50대와 60대에서 제일 높은 점수를 얻었다.

추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특검법 수용에 반대했고 신당을 둘러싼 논란과정에서도 신주류 강경파와는 선을 그으며 호남지역을 두둔하는 듯한 행보를 해왔다. 이를 반영하듯 추 의원은 호남지역에서 40.4점의 점수를 얻어 강 장관(31.4점)이나 박 의원(26.3점)을 크게 따돌렸다. 추 의원이 일단 호남지역에서는 상당한 정치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 확인된다.

추진력과 도덕성, 개혁성, 안정감, 풍부한 식견, 정치력, 여성의 권익향상을 위한 노력, 대통령에 어울리는 언행 등 8개 항목에 걸친 자질조사에서도 박 의원이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박 의원이 추 의원이나 강 장관보다 뒤지는 항목은 개혁성 1개 항목뿐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과 개혁성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 같다.

추 의원과 강 장관에 대한 구체적 자질평가에서는 전체적으로 강 장관이 좀더 높은 평가를 얻었다. 강 장관은 추진력과 도덕성, 개혁성, 안정감, 풍부한 식견, 여성의 권익향상을 위한 노력 등 6개 항목에서 추 의원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추 의원이 강 장관보다 좋은 평가를 얻은 항목은 정치력과 대통령에 어울리는 언행 등 2개 항목에 그쳤다. 강 장관이 경쟁력이나 여성 대통령 선호도에서는 추 의원에게 조금 뒤지지만 잠재력이 만만치 않음을 엿볼 수 있다.

‘여성의 권익향상을 위해 더 노력할 사람이 누구냐’는 항목에서 추 의원은 세 사람 중 가장 낮은 20%를 얻었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한 여성들의 지지는 14.6%에 불과했다. ‘여성 국회의원’이 아니라 그냥 ‘국회의원’으로 불리기를 희망하며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온 추 의원의 행보가 여성들에겐 여성권익 향상을 위해 그다지 노력하지 않는 이미지로 각인된 모양이다.

“차세대 여성 지도자 경쟁력 여론조사 전문”

임석규 기자 sky@hani.co.kr·이화주 기자/ 한겨레 여론조사팀 hol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