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여성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개방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남성’이라는 금기 아닌 금기도 언젠가는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우선 “여성이라도 정치력과 자질이 뛰어나다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견해에 동의하느냐고 물어봤다. 88.3%가 그렇다고 답했다. 매우 높은 수치다. 여기엔 ‘능력과 자질이 뛰어난 여성’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으므로 이를 액면 그대로 평가해주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번엔 “정치력과 자질이 비슷하면 남자 후보에 투표하겠다”는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동의한다는 의견과(52.1%)과 반대한다는 의견(43.6%)이 어금버금하게 나왔다. 절반 가까운 국민이 능력과 자질이 비슷할 경우엔 여성을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여성들은 절반이 넘는 52.7%가 능력과 자질이 비슷하다면 여성 후보에 투표하겠다는 인식을 보였다. 연령별로는 젊은 층일수록 여성 대통령에 공감하는 비율이 높았다.

이어 “여성 대통령이 언제쯤 나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앞으로 10년쯤 뒤인 2012년 18대 대선 때는 가능할 것이라는 응답자(35.7%)가 가장 많았다. 차기인 2007년 17대 대선 때 바로 가능할 것이라는 응답자도 17.6%나 됐다. 절반이 넘는 53.3%가 적어도 10년쯤 뒤엔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20년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응답자는 16.0%였고, 여성 대통령은 영영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5.6%로 나타났다.

절반 가까운 국민이 능력과 자질이 비슷할 경우엔 남녀의 성별 차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투표하겠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대통령 출현이 ‘불가능한 상상’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직까지 정치와 여성은 ‘궁합’이 잘 맞지 않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여성은 정치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여성 유권자 비율이 절반이 넘는데도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5% 안팎에 불과한 실정이 이를 방증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 최고 의사결정권을 지닌 대통령을 뽑을 때 남녀의 성 차이를 크게 유념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절반 가까이 나온 점은 깊이 눈여겨볼 대목으로 보인다.

여성단체연합 조영숙 정책실장은 “매우 놀라운 조사결과다. 우리 사회가 여성 대통령을 가능성의 범주에 넣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상당히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진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 실장은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 흐름에 맞춰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능력과 자격을 지닌다면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정도로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 것 같다”고 이유를 분석했다.

그러나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직접적 이해관계가 결부된 문제에 부닥치면 얼마든지 선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실장은 “아직도 실질적인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한 여성 할당 시스템이나 우대조처에 대해선 남성들의 강한 반발이 여전하다. 성 평등 실현을 위한 사회 전체의 목적의식적인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이화주 기자/ 한겨레 여론조사팀 hol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