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진짜 민주주의로 경제발전을!

(사진/"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마침내..." 김대중 후보의 당선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김대중 정권이 탄생했다.

‘김대중’이란 이름만큼 우리 정치사에 파란만장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 인물도 드물다. 40대의 젊은 나이에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승승장구하던 화려한 시절도 있었으나 군사정권에 의한 수많은 투옥과 사형수로 푸른 수의를 입었던 고난의 시기도 있었다.


기득권층에 변화의 바람 일듯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탄생은 그 개인의 영광 이전에 우리 정치사 에 한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정부수립 뒤 50여년 만에 처음 으로 선거에 의한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러차 례 집권자가 바뀌었으나 군사독재정권의 연장이거나 여당 내의 권력승계 일 뿐이었다. 장면 정부는 4·19혁명에 의한 정권교체였다. 헌정중단을 통한 비정상적인 정권교체였던 셈이다.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는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김대중 정권의 탄생은 민주주의 도약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추구한 다. 따라서 여야간 정권교체의 실현은 민주주의 발전의 기반을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경제개발 이라는 이유로 짓밟히거나 과소평가돼온 것이 사실이다. 애써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모른척 외면해오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이 제는 민주주의가 경제를 살리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 의 부활을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는 경제와 함께 나란히 평가돼 야 하는 가치이지 더이상 경제에 의해 희생당해도 좋은 가치가 아니다. 김대중 정권의 탄생은 인권신장에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역대 정권은 민주주의뿐 아니라 인권에 대해 홀대 를 넘어 탄압을 서슴지 않았다. 군사독재정권은 물론 이른바 ‘문민정부 ’라는 김영삼 정권에서도 인권측면에서는 눈에 띌 만한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인권은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그 러나 최근 인권운동가인 서준식씨가 구속되고 여전히 수많은 ‘양심수’ 들이 투옥돼 있는 등 우리 사회는 인권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여야간 정권교체는 지난 61년 이후 견고하게 뿌리박힌 기득권층에도 변화 의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은 정통야당 중심의 정권교 체라는 점에서 단순한 대통령 교체를 뛰어넘어 우리 정치·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과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40여년 가까이 굳어져 있던 우리 사회의 인적·물적 토대에 대한 대변화가 이뤄질 수도 있다. 이 경 우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전반의 세력교체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동안 정치갈등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해온 여야간 극한대결이나 지역 갈등의 해소에도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우리 정치는 정 권교체라는 명분으로 무장한 야당과 정권교체를 정치적 사망으로 동일시 한 여당의 극한적인 대결양상으로 정치적 갈등이 첨예화됐다. 지역차별로 인한 지역감정은 정치적 갈등뿐 아니라 사회적 통합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물이었다. 특히 정통성 없는 군사독재정권이 정권유지 차원에서 이용 해온 호남지역에 대한 고립과 소외는 국가적 통합을 가로막아온 것이 사 실이다.


“21세기 마지막 인간승리”

김대중 당선자 개인으로도 40여년간에 걸친 정치인생을 화려하게 마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김대중 당선자는 정치인으로서 일부 부정적 평가 가 있을 수 있으나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대통령선거에서는 이런 장점과 정치적 능력에 도 불구하고 번번이 패했다. 지난 71년 박정희 대통령을 상대로 한 첫 대 통령 도전에 이어 87년과 92년 잇따라 대선에 도전했으나 물러앉고 말았 다. 네번째 도전에서야 기회를 잡은 것이다.

(사진/환호하는 광주시민. )

정동영 국민회의 대변인은 “세계적 인권지도자들인 폴란드 레흐 바웬사 와 남아프리공화국 넬슨 만델라, 필리핀 코라손 아키노 등이 모두 대통령 에 당선됐다”며 “인권지도자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김대중 후보의 당 선은 21세기 마지막 인간승리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당선자의 이번 선거과정도 한편의 드라마였다. 18일 개표가 시작되면 서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득표경쟁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피말리는 싸움이었다. 엎치락뒤치락 하기를 수십번. 마침 내 19일 새벽 김대중 당선이 확정됐다. 역대 사상 유례없이 근소한 차이 로 결판이 났다.

김대중 후보는 총 유효투표 2천564만2천438표 중 40.3%인 1천32만6천2백7 5표를 얻었다. 김 당선자의 득표수는 이회창 후보가 얻은 9백93만5천718 표보다 1.6% 많은 것이었다.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19.2%인 4백92만5천 591표를 얻어 상당히 선전했다. 김 당선자는 서울과 인천, 광주, 대전, 경기, 충북, 충남, 전북, 전남, 제주 등 10개 시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번 선거결과가 보여주듯 투표행태가 동서로 확연히 구분됐다. 지역주 의적 투표형태는 역대 어느 선거보다 기승을 부렸다. 김대중 정권으로선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YS정권의 말로를 교훈삼아라

부담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부도난 정부'를 넘겨받은 것이다. 당장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신탁통치로부 터 경제주권을 되찾아와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지역간 통합과 계층간 통합도 김대중 정권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번 대선결과에서도 나타났듯이 지역주의적 투표행태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이 완화됐다고 할 수 있으나 지역주의의 골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김대중 정권에는 계층간의 문제도 또다 른 과제로 남아 있다. 서울의 강남 등 이른바 부유층지역에서 김 당선자 가 저조한 득표를 한 것은 기득권층의 김대중 정권에 대한 우려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기득권층에 대해 김대중 정권이 어떻게 접근해나갈 것인지가 관심이다.

김대중 정권이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공동정권임에도 두당의 의석이 전체 의석의 과반수인 1백50석에 훨씬 모자라는 1백21석에 불과하다는 점도 정 치적 안정과 관련해 우려되는 대목이다. 김대중 정권이 여소야대의 정치 적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면서 정치적 안정을 이룰 것인지가 당면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자민련과 약속한 내각제 개헌을 둘러싼 정 치적 이해관계가 조기에 부상할 경우 엄청난 회오리에 휩쌓일 수도 있다.

우리는 5년 전 화려하게 출발했던 김영삼 정권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 고 있다. 그러나 5년 만에 국민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김영삼 정권의 말로 도 보고 있다. 김대중 정권도 과거 김영삼 정부 때처럼 기대를 받으며 탄 생했다. 그러나 정권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가혹하리만치 엄중했다. 앞으 로 김대중 정권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1일 제 1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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