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진단

그 없던 달러가 우르르르

지난 15일부터 시작된 개미군단들의 ‘장롱 속 달러’ 투매는 환율안정에 큰 구실을 했다. 장롱 속의 달러가 집중적으로 흘러나온 지역은 서울 강 남. 강남소재 금융기관 지점에는 1만∼2만달러씩 환전하는 개인고객들이 쏟아진 가운데 백만달러(우리 돈으로 약 15억원) 이상의 거액을 들고 오 는 손님들도 상당수 있어 직원들이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잇따랐다. 외환 은행의 한 관계자는 “강남의 한 지점으로 1백80만달러가 들어온 것이 최 대 규모”라면서 “환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환차익을 얻자는 심리가 결 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디에 그렇게 많은 달러가 숨겨져 있 었는지 놀랍기만 하다”고 말했다. 한은 국제부의 한 간부는 “제2금융권 의 강남지역 한 지점에서도 한 개인고객이 1백20만달러를 가져왔다는 얘 기를 들었다”면서 “나라 전체가 달러부족으로 부도위기를 맞고 있는 시 점인 것을 감안하면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에서 는 15∼16일 이틀간 장롱 속에서 기어나온 자금이 3억∼4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들 자금 중에는 기업들의 달러 비자금도 포함 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15일 피크를 이룬 환전러시는 17일부터 한풀 꺾 였지만 아직도 개인들이 상상 외로 많은 달러를 장롱 속에 가지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시중은행의 한 환전담당 직원은 “달러를 많이 갖고 있는데 앞으로 환율이 어떨 것 같냐고 전화로 물어본 뒤 찾아오지 않은 손님들도 많았다”면서 “아직도 환율이 한번은 2천∼3천원까지 가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1일 제 1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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