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경제의 몰락과 혼돈 이론

황병하/ 문학평론가·광주여대 교수

요즘 자주 듣게 되는 혼돈(카오스) 이론에는 ‘나비 효과’와 ‘프랙털 구조’라는 게 있다. 카오스 이론은 명칭만을 놓고 보면 자연계의 현상이 너무 혼돈스러워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으로 오인될 수도 있다. 그러 나 핵심개념들 중 하나인 ‘결정된 혼돈’(deterministic chaos)에서 볼 수 있듯 이 이론의 중추는 그것의 반대편에 서 있다.

‘나비 효과’와 ‘프랙털 구조’

‘결정된 혼돈’이란 피상적으로는 혼란스러워 보이는 어떤 현상 속에 기 존의 설명체계(유클리드 기하학)로는 포착되지 않는 복잡한 구조의 질서 가 숨어 있음을 암시한다. 바로 이러한 혼돈 아닌 혼돈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게 ‘나비 효과’와 ‘프랙털 구조’라는 것이다.

‘나비 효과’란 카오스 이론가 에드워드 로렌츠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명증하게 경구된다. “베이징 하늘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임으 로써 뉴욕의 기상이 쾌청에서 폭풍우로 바뀌어질 수 있다.”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기상학과 관련하여 제시된 이 학설은 두 가지 관점에서 매우 의 미심장하다.

첫째, 자연계에 일어나는 변화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발점에 있으며 둘째, 아주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거대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카오스 이론을 문학에 도입한 문학연구가들은 많은 문 학작품에서 아주 작은 사건, 정황 하나가 작품 전체구조에 파급되는 치명 적 결과를 자아내는 ‘문학적 나비 효과’를 자주 지적해 보이곤 한다. 구름, 산맥, 해안선 등이 예로 제시된 ‘프랙털 구조’ 또한 유사한 관점 에서 카오스 이론의 핵심을 보여준다. 그들에 따르면 어떤 산맥에 속해 있는 각개의 산봉우리 모양은 산맥 전체의 형상과 거의 일치한다. 같은 맥락으로 꾸불꾸불한 해안선의 한 부분을 잘라 확대시켜 보면 그것은 전 체 해안선의 모양과 기이하리만치 흡사하다. 이것은 금세 프랙털 구조가 한때 여러 분야에서 즐겨쓰던 용어인 ‘대우주’ ‘소우주’ 개념과 매우 근사해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경제가 결정적 파국에 이르게 되면서 카오스 이론의 이러한 개념들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사회라는 게 자연계의 반 영이니까 혹 그것에 카오스 이론의 ‘나비 효과’나 ‘프랙털 구조’를 적용시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도대체 이 파국의 진원지는 무엇이 었을까? 텍사스에서 폭풍이 일도록 한 아마존 상공의 한 마리 나비처럼 그것은 정말로 사소한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별 생각없이 써버린 10만원의 술값이나 옷값, 한차례의 해외여행, 대통령이 자신의 개인적 감정에 휩쓸려 내린 작은 결정 하나, 또는 당장 의 곤란함을 면하고자 어느 장관이 한 외환보유고에 대한 거짓말….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마 수많은 피해를 부르는 폭풍우와 비 견되는, 우리 경제의 몰락을 일으킨 그러한 나비들이 주로 정책을 결정하 고 실행하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었으리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프랙털 구조’를 우리 사회의 분석잣대로 가져가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프랙털 구조가 증명해 보이는 것처럼 만일 부분이 전체 를 반영하고 있다면 결국 우리를 몰락으로 이끌어 간 것은 우리 개인, 가 정, 직장, 지역사회, 국가 모두의 탓이라는 뜻 아닌가? 우리는 우리가 왜 파탄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근원적 요인을 잘 안다.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나비인 부정부패. 부패는 일부 무분별한 소비를 낳고, 그것은 불 건전한 환경을 조성하게 되고, 나머지 또한 비슷한 유형의 소비를 욕망하 게 되고, 결국 그들마저 부패에 손을 대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 아닌가?

폐허 속 도약을 위하여

카오스 이론의 요체는 이제까지는 혼돈으로 보였던 어떤 현상들 속에 숨 어 있는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인 새 법칙을 발견해 내는 데 있다. 그것은 좀더 입체적인 구조에 대한 이해를 가능케 해준 컴퓨터라는 새로운 매체 의 탄생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 사회 또한 상당 부분 획일과 독선으로 뒤꼬인 군사정권에서 벗어나 다원화 시대에 들어서 있다. 이미 우리 사회를 보는 다양하고 상이한 눈들이 생겨나 있 고, 그것들은 계속 확장되는 추세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우리 사회를 나락으로 끌고 간 ‘나비’와 ‘프랙 털 구조’를 분석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 아닌가. 또한 그렇다 면 우리는 그러한 과거의 파괴적 전철을 분쇄하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고통스런 자기성찰과, 인고를 요구하는 재건 정신의 새로운 발판 아래서, 마치 2차대전 이후의 독일, 좀더 최근에는 중미의 멕시코가 이룩했던 것과 같은 그런 폐허 속에서의 도약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