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사람이야기

예술의 세계를 여는 ‘열쇠’

서울 사간동 화랑 거리 윗동네에 깜찍한 문화공간이 또 하나 생겼다. ‘ 아트 스페이스 끌레’(02-734-7752). 삼청동 총리 공관 건너편 골목에 들 어선 ‘끌레’는 사진작가이자 화가인 문순우(51)씨가 15년을 별러서 마 련한 공연장 겸 카페다.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예술하는 사람들이 사통팔달로 서로의 분야를 넘 나들며 함께 작업하는 풍토가 참 부러웠어요. 그런 바탕이 어디서 나오나 눈여겨보니 바로 카페문화였습니다. 허름한 지하실 좁은 바닥에서 끊임없 이 얘기하고 공연하고 비판하고 또 연구하고. 그렇게 어우러져 예술정신 속에서 뒹굴다보니 뛰어난 안목과 창조력이 저절로 벼려지더군요.”

‘끌레’는 프랑스어로 열쇠라는 뜻. 예술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끄 르는’ 곳이란 바람으로 붙였다. 문씨는 앞으로 이 공간을 멤버십 제도로 운영해 회원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열쇠를 하나씩 나누어줄 계획도 세워놓았다.

12월17일 밤 8시, 끌레가 문 여는 날을 기념하는 공연이 열렸다. 문씨가 한때 공연기획사를 할 때, 첫 무대로 꾸몄던 타악기 연주자 김대환씨가 북채를 들고 나섰다. 알음알음으로 모여든 문씨의 친구들과 예술 애호가 들이 발 디딜 틈없이 들어찬 이 자그마한 지하실은 갑자기 세상을 소리 하나로 조율하는 큼직한 사원처럼 변했다. 동서양의 온갖 타악기들을 신 들린 듯 두드리는 김씨의 연주를 바라보던 문씨는 “평생의 꿈이 이뤄졌 다”고 지인들의 손을 잡았다.

“60, 70년대 저희가 젊은이였을 때만 해도 좋은 말씀을 해주실 스승들을 뵐 장소가 있었어요. 명동의 청자다방에 가면 공초 오상순 선생이 정물처 럼 앉아 계셨고, 청동시대로 자리를 옮기면 박인환 선생이 붙박이처럼 풍 류를 읊으셨지요. 재수 좋은 날이면, 그 분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었습니 다. 지금은 그런 나눔의 공간이 없어요. ‘끌레’가 그런 구실을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찻집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전부 털어넣어 한달에 두번쯤 온갖 장르의 예 술들을 버무린 콘서트를 열겠다고 밝힌 문씨, “이곳에 와서 신나게들 놀 아주십시오”라는 게 인사다.

정재숙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1일 제 1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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