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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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도화지 한가운데 큼직하게 아빠의 얼굴을 그렸다. 그 옆에 빨간 크레파스로 서툰 글씨지만 ‘사랑하는 아빠’라고 써 넣었다. 도화지 아 래에는 알록달록한 튤립과 해바라기를 그렸다. 햇님이 아빠 머리 위로 길 게 햇살을 뻗친다. 성수(5)가 막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 아빠 어깨 위에서 무등을 타며 놀던 뒷동산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자, 아빠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이다. 성수의 아빠는 3년 전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무시무시한 죄 목으로 잡혀가 지금 안동교도소에 갇혀 있다.
성수가 그린 그림이 연하장으로 만들어졌다. 민가협이 올해 처음으로 성 수와 다른 양심수의 아이들 6명이 그린 그림들을 모아 연하장으로 만든 것이다. 그 그림들에는 엄마 혹은 아빠의 석방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맑은 눈빛이 담겨 있다. 두메(5)도 도화지의 절반을 초록색으로 칠했다. 그리 고 파란색 크레파스로 구름 몇 조각을 그렸다. 아빠의 판소리를 들으며 누워 잠들곤 하던 미륵사지 석탑 바로 옆 잔디밭이란다. 어떤 아이는 “ 꿈속에서 나는 까치로 변해 아빠한테 날아갔어요”라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꽃도 나무도 구름도 울고 있어요”라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성수 엄마는 학원강사다. 저녁 늦게 들어오는 엄마를 기다리며 성수는 심 심풀이로 매일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린다. 미술학원 한번 가본 적도 없 는데 그렇게 익힌 그림솜씨가 제법이라고 주위의 칭찬이 자자하다. 두메 는 2년 전 양심수 후원행사에서 처음 크레파스를 집어든 게 그림과 인연 을 맺는 계기가 됐다. 가끔씩 그리지만 미술대회에 출전하는 단골손님이 됐다.
“아빠와 함께 꽃동산에 놀러가고 싶어요. 내년에 새집으로 이사가는데 아빠가 안 계셔서 서운해요.” 아빠 이야기를 꺼내자 성수의 깜찍한 얼굴 에 그늘이 생긴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두메는 입을 꼭 닫고 빙그레 웃기 만 한다.
크리스마스 카드 낱장 7백원, 한묶음(8장) 5천원. 연락처 민가협(02-763- 2606).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1일 제 189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