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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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그룹간에 영위업종을 교통정리하는 ‘빅 딜’(Big Deal, 대규모 거래 )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돈되는 사업은 물불을 안 가리고 뛰어들었던 사업다각화 전략은 국제통화 기금(IMF) 시대에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IMF는 당장 재벌들의 차입경 영과 문어발식 사업확장에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돼 온 계열사 상호지급보 증 및 출자 금지를 요구하며 사실상 재벌 해체를 꾀하고 있다. 이제 살릴 건 살리고 포기할 건 하루빨리 포기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재벌들 이 IMF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룹간 빅 딜 이 합리적으로 추진될 경우 자연스럽게 업종전문화가 촉진될 것이라는 기 대도 크다.
자동차 골머리 앓는 삼성이 가장 적극적
최근 삼성, 현대 등 주요 그룹들은 재계가 자율적으로 산업 구조조정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제시했다. 중복투자 가 심한 분야를 중심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에 힘과 자원을 몰아주는 교통 정리를 하자는 것이다. 전경련의 한 간부는 “중복투자와 과당경쟁으로 공멸하기보다는 전략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함께 살아남는 것이 이 바람직 하다는 데 5대그룹들이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가장 적극 적인 그룹은 자동차사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삼성.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최근 “삼성자동차가 다른 기업을 인수할 수도, 다른 기업에 넘어 갈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재계가 전경련을 통해 재벌간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는 것은 그룹의 간판기 업들을 대상으로 한 ‘취사선택’이 결국은 그룹총수들간의 담판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판단 때문이다. 일부 그룹에서는 “그룹 총수들의 독단적인 경영행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전경련의 구조조정 작업이 자칫 담합으로 비쳐질지 모른다”며 우려하는 의견도 있 지만 대세는 아니다. 부실을 견디다 못해 아예 쓰러지거나 외국인에게 헐 값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전경련 안 에서는 내년 1월8일로 예정된 신년 회장단회의에서 재계의 원칙적 입장이 발표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구조조정 대상은 재벌들간의 과당경쟁과 수요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는 분 야가 모두 망라될 전망이다. 1차적으로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는 자동차, 반도체, 정유, 가전, 석유화학, 중장비, 유통, 철강 등이 꼽히고 있다. 5 대그룹들도 전경련이 우선적으로 다룰 분야로 자동차, 조선, 반도체, 석 유화학, 중장비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의 경우 쌍용그룹이 그룹경영에 큰 부담을 안겨왔던 쌍용자동차를 대우그룹에 넘긴 것은 빅 딜의 서막일 뿐. 삼성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문 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둘은 모두 홀로서기에는 어려운 입장이다. 삼성 은 총 10조원으로 예상되는 투자비 조달에 애를 먹고 있고 법정관리를 신 청한 기아도 IMF가 산업은행을 통한 정부출자와 공기업화 방안에 부정적 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는 대로 어차피 새로운 해법이 모색돼야 할 형편 인 것이다.
반도체는 삼성, LG, 현대가 모두 가격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에서 IBM과 기술제휴로 신규진출을 선언했던 동부가 사업추진을 3개월 유 보하기로 했다. 정유는 SK, LG, 쌍용, 한화, 현대 등 5개그룹이 난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 16일 한화그룹이 한화에너지에 대해 해외 석유 메니저와 합작을 하거나 아예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발표해 구조 조정이 임박한 상태다. 빅 딜의 상대가 국내기업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 여주는 대목이다. 한화의 한 임원은 “국내기업에 매각하려고 해도 현 상 황에서 마땅한 임자가 나서겠느냐”며 “앞으로 외국기업을 상대로 한 전 략적 제휴나 매각을 추진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철강의 경 우 이미 쓰러진 한보철강과 삼미특수강, 기아특수강의 인수업체 선정문제 와 현대가 고로제철소 건설을 계속 강행할지 여부가 관심거리다.
정부와 금융기관도 빅 딜 환영
정부와 금융기관도 기업들의 한계사업 매각과 기업간 사업분야 맞교환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대우의 쌍용자동차 인수가 성사되는 과정에도 정부와 금융기관이 깊숙이 개입했다. 정부는 기업간의 M&A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다른 기업을 인 수합병하기 위한 의무공개매수 주식수를 완화하고 계열사 출자한도를 3년 간 유예하기로 했다. 또 인수업체에 각종 금융·세제상의 혜택을 주는 구 조조정 특별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곽정수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1일 제 18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