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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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0일 겨울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개봉 행진이 시작 됐다. 디즈니가 지난 13일 일찌감치 창고에서 먼지를 털어낸 <인어공주> 를 다시 내걸었고, 이번 주에 20세기 폭스의 <아나스타샤>와 영국 S4C의 <곡스>, 내년 1월1일에 홍콩 전영공작실의 <천녀유혼>, 10일에 미국 OAA 사의 <양배추인형의 클럽하우스>가 뒤를 잇는다. 한국의 겨울 영화시장이 각국의 만화영화 전시장이 돼버린 것.
올 애니메이션계의 최대 화제작은 만화왕국 디즈니에 도전장을 낸 20세기 폭스의 첫 작품 <아나스타샤>. 디즈니가 <아나스타샤>의 개봉관수를 줄이 고 김빼기 작전을 위해 부랴부랴 한주 먼저 <인어공주>를 바닷속에서 불 러냈을 만큼 폭스의 도전은 위협적이었다. 1918년 러시아혁명기에 몰락한 니콜라이 황제의 딸 아나스타샤를 역사에서 살려낸 폭스는 역경을 이겨내 고 자기 뿌리, 가족을 찾아가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소녀 영웅으로 탈바 꿈시켰다. 요란한 음악, 화려한 안무 등 미국식 뮤지컬 틀에 갇힌 마지막 황녀는 사회주의에 이어 자본주의에 의해서 두번째 비운을 맞은 셈이다. 만화시장의 선두 탈환을 위해 역사의 진실을 뒷전으로 차버린 데다 왜곡 까지 하는 자본의 탐욕은 가증스럽지만, 와이드스크린을 가득 메운 디즈 니풍의 화면짜기와 첨단 애니메이션 기술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부모가 함께 보면서 어린이들에게 보충설명을 곁들이는 것이 좋을 영화다.
<곡스>는 영국이 자랑하는 클레이(진흙)애니메이션의 전통을 잇는 작품. 보기만 해도 우스운 막내둥이 곡스 등 원시인 가족을 주인공으로 해 석기 시대의 인류학적 보고서를 질펀한 웃음 속에 풀어놓았다.
<영웅본색> <황비홍>의 감독 서극이 컴퓨터애니메이션으로 새로운 승부수 를 둔 <천녀유혼>은 디즈니로 대표되는 서양식 만화영화와 다른 동양식 애니메이션이다. 고대 중국의 기담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겨 낸 지고지순한 사랑의 힘을 홍콩 특유의 무협과 귀신영화풍으로 변주했다 . 인물 작업 등에 한국과 일본이 힘을 보탠 동양 3국의 합작품. 디즈니 만화가 느끼할 만큼 미끈하고 기름진 데 반해 동양화풍의 선과 색감이 산 뜻하다.
<양배추인형의 클럽하우스>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극장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품. 인형이나 물건을 움직이지 않은 채 장면마다 촬영해 이어 비추면 움직임의 환영을 주는 촬영기법이다. 1980년대 탄생해 화제 를 뿌리며 팔려나간 ‘양배추 인형’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정의 소중함 을 얘기하는 ‘뉴 키드’‘클럽하우스’‘스크린 테스트’ 3편을 엮었다.
정재숙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1일 제 18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