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문학

대중적 학술서 <테오의 여행>

올 서울대 논술시험은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우화소설 <어린 왕자> 가운데 한 대목을 예문으로 내놓아 화제가 되었다. 왕자와 여우가 만나는 장면을 제시하고, 개인과 개인 사이의 정서적 유대 관계 형성을 중시하는 현대의 사회적 조건과 개인 노력의 한계 극복 방안을 밝히라는 물음이었 다. 철학 전공 교수들로부터 좋은 문제라는 평가를 받은 이 논술의 주제 는 소설이 품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넓고 결 많은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인류 문명사를, 또는 철학을 소설로 풀어내는 일은 ‘보기’가 ‘읽기’ 를 밀어내고 있는 현실에서 사라지는 독자를 붙잡는 하나의 꾀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미래의 독자들을 생각하면 더 절실하다. 학술서보다는 쉽게 읽히는 소설의 얼개를 빌려서라도 영상매체와 경쟁해보겠다는 것이 이런 책들이 내거는 명분이다. 물론 이 명분이 상업적 술수니, ‘손쉬운 독서 조장’이니 하는 부정적 평가를 다 막을 수는 없다.

이번주 서점에 나란히 선보인 <르네상스인 미켈란젤로>(어빙 스톤 지음· 성로 옮김, 까치 펴냄)와 <테오의 여행>(카트린 클레망 지음·양영란 옮 김, 동문선 펴냄)은 소설로 읽는 문명사라 할 수 있다. 겨울방학 독서시 장을 겨냥한 두툼한 분량의 두 책은 출판계의 한 흐름으로 자리잡을 ‘소 설로 읽는…’의 조짐을 읽게 한다.

<르네상스인…>은 <빈센트 반 고흐>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어빙 스톤이 르네상스기의 대 조각가이자 화가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그 시대를 그린 전기 소설이다. 1961년 처음 출간됐을 때 제목 <고뇌와 환희>는 찰 턴 헤스턴이 미켈란젤로 역을 맡았던 영화의 제목이 되었다.

소설은 자화상을 그리는 소년 미켈란젤로로부터 출발해 연대기적 서술로 나아간다. 문예부흥기 수많은 천재들을 배출한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을 미켈란젤로의 영욕을 따라 흘러가는 이 장편소설은 통속적인 표현들 속에 예술가의 고뇌에 찬 내면과 이 시대가 성취한 문화의 환희를 그려낸다. “그린다는 것은 하느님이 아담에게 숨을 불어넣어주시는 것과 마찬가지 다. 미술가의 외적 호흡과 모델의 내적 호흡이 합해져서 종이 위에 제3의 생명을 창조하는 거야. 그게 바로 사랑의 행위야. 그걸 통해서 세상의 모 든 것이 태어난단다.”

실제 인물들의 세부 묘사가 미술사적 사실에 비추어보면 허구인 부분도 있다. 그러나 꼼꼼하게 자료들을 뒤지고 피렌체나 로마에서 살면서 시대 분위기와 미술가들의 열정을 복원한 작가의 노력은 이 책을 르네상스를 이해할 수 있는 충실한 보조자료로 자리매김한다.

<테오…>는 2년 전 현암사가 펴내 지금까지 꾸준하게 팔리고 있는 <소피 의 세계>를 떠오르게 한다. 두 소설 다 청소년이 주인공이고, 그를 인도 하는 주변인물과의 내밀한 접촉(대화나 편지)을 통해 앎의 세계로 나아가 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일종의 성장소설이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불치병에 걸린 14살 천재 소년 테오는 고모와 함께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묻기 위해 종교의 발원지로 여행을 떠난다. 테오는 이 순례의 길에서 만 난 성직자들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그런데 남자 없이 어떻게 아기를 낳 을 수 있었죠, 마리아가?” “하느님을 믿나요?”

공부하기 위해 떠난 이 여행으로 테오가 허무는 건 종교와 세상을 가르고 있었다고 본 경계다. 아이는 그 벽을 뚫고 삶과 화해하게 되고, 결국 육 체의 병을 뛰어넘는다.

<테오…>를 쓴 카트린 클레망은 정신분석학으로 철학교수 자격을 얻은 프 랑스의 저술가. 전문적 지식을 지닌 필자가 많은 프랑스 출판계가 내놓을 수 있는 대중적 학술서의 한 모범을 <테오…>는 보여준다.

정재숙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1일 제 1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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