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

자녀 교육의 길라잡이 <젠틀맨 만들기>

(사진/국내 언론사 통신원으로 활동하는 권은정씨는 영국 교육현장을 두루 살피고 있다.)

얼마전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다이애나에 대해 한국 사람들, 특히 남자들 이 호감을 갖기란 쉽지 않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왕세자비가 됐다가 이혼한 뒤 다시 백만장자와 데이트하는 그런 여성에 대해서 본능적인 저 항감같은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그를 사랑한다. 그는 솔직하고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왕세자비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전의 왕실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 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도 그랬다. 아버지인 찰스는 왕실의 법도에 따 라 아이들에게 스코틀랜드 옛성에서 사냥이나 낚시, 승마 등을 즐기는 법 을 가르쳤다.

반면 다이애나는 아이들을 런던으로 데려와 시내 영화관에 데려가 <쥐라 기 공원>을 보여주며 팝콘을 사주고 맥도널드에 가서 햄버거를 먹이기도 했다. 컴퓨터 게임도 실컷 하게 하고 놀이공원에 가서 함께 물미끄럼을 타기도 했다.

이것은 왕실의 법도가 아이들에게서 앗아갈 수 있는 인간미와 감성을 길 러주기 위한 배려였다는 것이다. 영국인들은 이런 다이애나의 소탈한 교 육 철학에 매력을 느낀다. 이제껏 왕실의 사람들은 국민들 앞에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목석과 같은 존재였다. 이런 다이애나의 왕실에 대한 반항을 영국에서는 ‘다이애나 혁명’이라 고 부른다.

영국의 옥스포드에서 국내 언론사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권은정씨가 지은 <젠틀맨 만들기>는 영국의 교육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다이애나와 같은 유명인의 교육 이야기뿐 아니라 평범한 영국인들에게 교육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다. 영국의 교육이 어떻게 건강한 영국 시민을 길러 내고 있는가를 일화들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밴버리 블루코트 스쿨의 미시즈 저스티스 선생님은 아무런 대가 없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이다. 지은이가 작은 읍인 밴버리에 처음 갔을 때 저스티스는 이 ‘낯선 동양인’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내 가 밴버리에 처음 와서 겪었던 그 외로움을 (저 동양인에게) 똑같이 겪게 하지는 않으리라.” 세상이 남과 함께 살아야 하는 곳이라면 바로 이런 마음이 필요한 것 아닌가. 어떻게 낯선 사람을 보고 자연스레 도와야 한 다는 마음이 일어날까. 영국인들은 이런 배려까지 어려서부터 가르친다. 꽁지머리를 하고 한쪽 귀에만 귀고리를 한 존은 유복한 중산층 집안에서 자라나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그리스, 파키스탄, 중국을 다니며 영 어강사를 하고 그 나라들의 문화를 배웠다. 영국으로 돌아와서는 런던대 학에서 중국정치학을 공부하고 BBC방송국에 다녔다. 그런 그가 지금은 제 3세계 자원봉사기구에서 일하고 있다. 왜 존은 그렇게 살까. 이런 자유로 움과 이타적인 태도도 교육의 힘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교수인 마틴 도어는 자신의 네 아들을 가르칠 때 절대로 “이것을 해 라, 저것을 하지 마라”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상담자, 조 언자로서 아이들과 대화한다. 심지어 부모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라고만 이야기한다. 결정은 아 이들에게 맡긴다. 그것이 바로 관대하고 사려깊고 조용하고 인내심있는 영국 신사 교육의 전형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김규원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