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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고비, DJT로 넘다

(사진/고비고비 때마다 노익장 3명의 DJT연대는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님으로써 김 당선자를 정상에 올려놓았다.)

김대중 정권이 탄생하는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5월 국민회의 대통령 후보로 당선된 이후 12월18일 투표일까지 7개 월 동안 김대중 당선자에게는 위기와 고비가 줄을 이었다. 수십차례의 이 런 위기와 고비를 극복하고 마침내 김대중 대통령이 탄생된 것이다. 뛰어 난 선거전략과 위기대처능력이 김대중 대통령을 만드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 셈이다.


건강론에 경륜론으로 맞서

이런 고비마다 결정적 병풍역할을 한 것은 DJT(김대중+김종필+박태준)연 대였다. 색깔론이 제기될 때는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막아주고, 경제 난이 쟁점화됐을 때는 박태준 자민련 총재가 나서 김 후보의 경제적 능력 을 부각시켜줬다.

김 당선자의 첫 고비는 지난 5월 국민회의 후보 경선과정에서부터 시작됐 다. ‘김대중 불가론’이 설득력을 가지면서 당내에선 패배의식이 팽배했 다. 국민회의 비주류에서는 김대중 후보를 대신할 제3의 후보를 내세울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김 당선자는 당내의 이런 패배의식을 DJP연대 가능성을 제시하면 서 돌파해나갔다. 당내 경선에서의 압도적인 승리 이후에는 당내의 비주 류를 적극적으로 포용함으로써 당의 안정을 이룰 수 있었다. 여권이 분열 된 이후에도 국민회의가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놓은 것이다.

그뒤 지난 7월 당시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대회 이후 지지도에서 이회창 후보에 20% 안팎으로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국민회의 당내에는 패배감이 휘돌았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가 정치쟁점화되 면서 이 후보의 지지도가 급락하고 김대중 후보의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런 기쁨도 잠시. 김 당선자는 한나라당의 DJ비자금설 공격으로 금권정 치의 상징이라는 공격을 받으면서 또다른 위기를 맞았다. 한나라당에서는 DJ비자금설을 터뜨리며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정축재와 연관시키 며 검찰의 수사를 촉구하는 등 총공세에 나섰다. 선거운동에 들어와 최대 의 위기에 직면한 김 당선자는 “날조된 자료”라며 반격에 나섰으나 힘 이 부쳤다. 그때 자민련이 나서 국민회의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국 검찰 이 비자금설 수사를 사실상 중단함으로써 김 당선자는 비자금설 공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DJT연대를 통해 대선국면의 전환을 시도했으나 일부 부정적 여론에 가려 초기에는 고전을 맛봐야 했다. 지지도도 다소 떨어지는 등 예기치 않은 위기를 맞기도 했다.

여기에 김 당선자의 건강과 색깔론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격이 쏟아졌다. 한나라당이 김 당선자에 대한 건강론을 제기하자 경륜론으로 맞서며 이를 극복해갔다. 김 당선자는 “인생의 경륜은 70대가 돼야 무르익는다”며 고령의 부정적 요인을 ‘안정감’으로 바꿔놓는 데 성공했다. 김종필 명 예총재도 DJT연대의 경륜을 내세우며 김 당선자를 옹호했다. 또다른 마지 막 고비는 역시 색깔론이었다. 안기부와 한나라당은 김 당선자에 대한 색 깔론을 막판에 제기하기 시작했다. 월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의 서신 을 공개하면서 김 당선자의 사상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이때 김 종필 명예총재가 구세주처럼 나타나 “안기부와 한나라당이 다시 색깔론 을 일으키려는 구태를 저지르려 하고 있다”며 색깔론방어의 최전방에 나 섰다. ‘보수원조’인 김종필 명예총재의 엄호사격으로 색깔론의 망령에 서 벗어날 수 있다.


마지막 위기 ‘IMF재협상론’

국제금융기구(IMF) 구제금융사건 이후 한동안 오르던 김 당선자의 지지도 는 IMF재협상 주장 이후 일부 언론과 한나라당의 집중적인 공격으로 또다 시 위기를 맞았다. 외환위기의 책임이 김대중 후보에게 있다는 역공에 김 당선자의 지지도가 주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당선자는 “IMF협상의 기본원칙은 준수할 것”이라며 “재협상은 추가협상을 의미한다”고 한발 뒤로 물러서는 유연한 전술을 보였다. 이어 IMF재협상으로 묻혀버린 경제 파탄론을 정치적 쟁점으로 계속 부각시켰다. 여기에 박태준 총재도 “5년 동안 경제를 부도낸 김영삼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심판하자” 며 김 당선자를 측면지원하면서 DJT의 경제회생능력을 부각시켰다. 결국 고비고비 때마다 노익장 3명의 DJT연대는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냄으로 써 김 당선자를 정상에 올려놓았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1일 제 1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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